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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교육이 경쟁력이다 <중> 조용한 한국의 교실

한국의 초·중·고교 수업시간은 조용하다. 교사는 진도 나가기 바쁘고, 학생은 입을 다문 채 받아 적기만 한다. 50분짜리 수업시간을 쪼개 학생에게 비판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토론수업을 하는 교사도 있다. 하지만 전국 1만1000개 초·중·고의 40만 교원이 그런 노력을 하기란 어렵다. 한 반에 40명이 넘는 과밀학급, 짧은 수업시간(45~50분), 꽉 짜인 수업진도가 토론수업을 막는다. 매년 80명 이상을 미국 대학에 보내는 대원외고도 토론수업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대학생이 돼도 토론에 약하다. 토론수업을 실험 중인 학교에서 우리 교육의 현실을 짚어 봤다.

서울 수유초등 6학년 8반 학생들이 14일 박완서의 책 『자전거 도둑』을 주제로 모의재판을 하고 있다. 이 반 학생들은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 토론수업을 한다. [조문규 기자]

#1. “모르고 한 행동이므로 무죄입니다.” “아닙니다. 어쨌든 훔친 것입니다.”

14일 서울 수유초등학교 6학년 8반 독서·토론수업. 문영이(39) 교사가 『자전거 도둑』(박완서 저)을 읽고 주인공 수남이의 행동이 도둑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모의재판을 진행했다. 변호사 역을 맡은 이송미(13)양이 재판장인 이예슬(13)양에게 “수남이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법적 근거를 대주십시오”라고 질문했다. 재판장과 변호사, 피고인, 증인 간 토론이 이어졌다. 29명의 학생은 재판을 지켜보며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했다.

같은 시간, 다른 반의 한국사 수업은 조용했다. 교사가 ‘세종대왕’의 업적을 설명하자 30명은 듣기만 했다. 윤석명(53) 교감은 “토론수업을 하기엔 학급당 학생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손동욱(13)군은 “선생님 얘기를 듣고 있는 게 편한데 손들고 물어보려니 쑥스럽다”고 했다.

#2. 같은 날 대원외고 1학년 7반 국어시간. 김성현 교사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설명하는 슬라이드를 펼치자 학생 35명이 받아 적는다. 김 교사는 “‘연잎에 밥싸두고 반찬을랑 장만 마라’란 구절이 말하는 것은 ‘간편하고 소박한 생활을 뜻한다. 사자성어로는 ‘안분지족’ ‘단사표음’”이라고 설명했다. 설명 시간은 30분. 김 교사는 수업시간 15분을 남겨놓고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가수 마야의 대중가요 ‘진달래꽃’을 비교하며 “마야의 노래가 순수한 의미의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느냐”며 토론하도록 했다. 금방 수업이 끝났다. 하원정(17)양은 “선생님이 토론 주제를 제시하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하지만 일반 수업은 진도 때문에 토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왜 입을 다무나=전국 초·중·고교는 정부가 정한 국민공통 교육과정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국어·영어 등 교과목 수업시간(대부분 50분)도 붕어빵처럼 똑같다. 특히 입시 일정에 맞춰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토론수업을 하기가 버겁다. 학급당 학생 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초등학교의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26.7명이다. 하지만 농어촌 지역을 포함한 단순 평균에 불과하다. 서울 목동·노원구 등 일부 지역은 40명을 넘는다. 50분 수업에 40명이 토론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김영정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글로벌 미래 인재는 남과는 다른 창의력이 중요한 경쟁력의 포인트”라며 “비판 의식과 상상력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제안은 대입 앞에선 힘을 못 쓴다. 2년 전 대학들이 논술 시험 비중을 높이자 초등학교까지 논술 바람이 불었다. 시험에 상관없이 표현력과 창의력, 비판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대입 논술이 시들해지자 학교 논술수업도 관심이 적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0월 ‘서울 중·고교생 토론대회’를 열었다. 토론문화를 활성화한다는 취지였다. 서울 송곡고 나영주 교사는 “토론수업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논리력을 키워 주는 출발점”이라며 “초등학교부터 표현력을 키워 줘야 대학생이 되면 영어로도 비판적 토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김동원 교육과정기획과장은 “수능 과목을 줄이고 학교장이 교과과정을 자율로 운영할 수 있게 되면 토론 중심 수업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진·임현욱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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