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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② 안동 건진국수

안동 건진국수는 대표적인 ‘안동 양반님네’ 음식이다. ‘수중군자(水中君子)’로 불리는 기품 있는 생선인 은어를 달여 낸 육수에 가늘디 가는 국수를 말고 실고추, 애호박, 파, 계란 흰자위와 노른자위 등 오색 고명을 얹는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면을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맛도 맛이려니와 쓰인 재료와 말아 내놓는 국수의 품위가 남다른 ‘귀족국수’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조옥화 할머니와 며느리 배경화씨가 어른 키만한 홍두깨로 국수를 밀고 있다.
건진국수는 헛제사밥·간고등어·식혜와 함께 안동의 4대 향토음식으로 꼽힌다. 한데 안동에서도 이 국수를 맛볼 데가 없다. 김준식 안동문화원장은 “20년쯤 전에는 간혹 파는 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가를 맞출 수 없어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금 그나마 건진국수의 맥을 이어가는 곳은 안동소주 기능 보유자인 조옥화(87)씨 집과 안동 장씨 종가 정도다.

하는 수 없이 조옥화 할머니를 찾아가 건진국수 맛을 보여 줄 수 있겠느냐고 청했다. 그는 10년 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생일상을 차려낸 전통 음식의 명인이다. 할머니는 그러마고 흔쾌히 응낙했다. 그리고 대뜸 어른 키만 한 박달나무 홍두깨부터 챙겨 들고 나왔다. 홍두깨 모양부터 범상치가 않다. 이 댁의 며느리들로 이어져 내려온, 건진국수를 밀어 온 홍두깨라고 했다.

“내가 18세에 시집왔으니 이 홍두깨는 내 손에서만 70년째야. 시어머니께 물려받았는데, 130년은 족히 됐을 걸. 여름 되기 전 울타리에 애호박이 주렁주렁 달릴 때, 그때부터 국수철이야. 옛날에는 하루 한 끼는 국수라 거의 매일 반죽을 밀었지.”

할머니는 며느리 배경화(57)씨와 함께 한옥 마루에 앉아 반죽을 밀면서 말했다. 국수는 우선 밀가루와 콩가루를 3대 1의 비율로 섞어 반죽한다. 면발은 최대한 가늘게 썰어내는 게 노하우다. 어느새 홍두깨에 말린 반죽은 종잇장처럼 얇아졌다. “반죽을 하다가 문 밖에서 손님이 한 명 더 들어오면 한 번 더 밀었지, 그러면 양이 한 그릇 더 늘어요. 건진국수야말로 반가 식객의 요깃거리였지.”

할머니는 종잇장처럼 얇게 민 반죽을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더니 썰어내는데, 70년을 이어온 칼질이 일품이다. 며느리가 썰어놓은 국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늘다. 거의 공장에서 뽑아낸 소면 굵기다. “면발의 굵기는 그 집안의 음식 솜씨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게 할머니의 설명이다.

건진국수의 결정판은 육수다. 낙동강에서 잡은 은어를 달여 낸다. “예전에는 은어가 흔했어. 하회마을 가기 전 함개라고 있는데, 은어못이라 부를 만큼 은어가 많이 잡혔지.” 은어는 비린내가 적고, 특유의 수박향 덕분에 민물고기 중 최고로 쳤다. 예부터 “기침이 심하면 은어 사 먹으러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관지에 좋다. 조선 영조 3년에 축조된 안동석빙고에 낙동강 상류에서 잡은 은어를 사철 보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은어는 여름이 시작되기 전인 6월이 돼야 잡힌다. 그래서 이번에는 냉동 은어를 쓸 수밖에 없었다.

사골국물처럼 뽀얀 은어육수에 산초·계피·후추를 뿌려 비린내를 거두고 삶아서 건져 놓은 국수를 말아 오색 고명을 얹으니 국수가 완성됐다. 여기에 집간장에다 파·마늘·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맵게 만든 양념장을 더한다. 국수 한 그릇에 집안 아낙들의 내력까지 담아내는 것이다.

흔히 보는 ‘안동국시’는 뭘까

우리가 흔히 거리에서 만나는 안동국시는 건진국수가 아니라 안동에선 누름국수라 부르는 것에 가깝다. 건진국수는 반가의 국수였던 반면, 끓는 멸치장국에 면과 채소를 삶아낸 누름국수는 서민들의 국수였다. 안동사람들은 “누름국수는 막국수와 다름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를 안동국수라 부르는 것은 국수에 콩가루를 섞는다는 점 때문이다.

서울에도 흔한 안동국시집에서 건진국수를 하지 않는 이유는 우선은 은어가 값이 비싸고 요즘은 구하기 힘든 탓이다. 한데 김준식 안동문화원장은 또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과거 지방의 식문화의 교류는 혼삿길과 벼슬길로 이어졌다는 것. 며느리를 들일 때 사돈의 음식이 들어오고, 벼슬에 오른 지방사람이 서울로 가며 지방음식이 서울로 전해진 것이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고립을 택한 고집스러운 안동 양반들 때문에 안동 반가의 음식이 타 지방으로 전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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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