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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권짜리 조선 때 백과사전, 170년 만에 세상구경

필사본으로만 전해오다 170년 만에 출간되는 책이 있다. 요즘 책 400~500쪽 분량으로도 총 40권이 될 예정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서유구(1764~1845)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중·고교 때 교과서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 ‘이용후생학파’의 대표적 저서이지만, 이 책이 당시 113권(52책) 분량으로 편집된 방대한 역저임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집필 당시 손으로 써 책으로 묶었다. 완간 뒤 목판본 등으로 인쇄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출간되지 못한 비운의 명저다.

전북대 HK(인문한국) 쌀·삶·문명연구원(원장 이정덕)은 『임원경제지』의 첫 부분인 『본리지(本利志)』 (전3권, 원본 권1~권13)를 출간하며, 향후 10년 간 총 40권 완역에 나선다고 21일 밝혔다. 정명현씨 등 소장학자 40여 명이 번역에 매달렸다. 독지가의 후원과 전북대의 20억 원 규모 예산 지원에 힘입어 이 방대한 저작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쉽지 않은 출판은 소와당이 맡았다. 임원경제지는 국내에 4종의 필사본만 남아있다. ‘임원(林園)’이란 제목 때문에 흔히 ‘농사와 관련된 책’ 정도로 생각하지만, ▶천문 ▶의학 ▶건축 ▶예술 ▶요리 등 모든 영역을 망라한 ‘백과전서’다.

농업은 조선사회의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고, 모든 것이 농업을 중심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임원경제지』가 다루는 분야는 ‘농업’의 범위를 뛰어 넘는다. 근대의 문턱에 선 19세기 조선의 지식인이 바라본 삶과 지식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저작이라고 하겠다. 조선 후기 소론의 대표적 학자인 서유구는 정치적 풍파를 겪고 관직에서 쫓겨나 시골 농장에 은거하며 30년 간 이 책을 집필했다. 다루고 있는 학문 분야나 분량에 있어 『임원경제지』는 영국의 브리태니커 사전(1771년, 총 3권)이나 프랑스의 백과전서(1772년, 본문 17권)를 압도한다. 19세기 조선의 지적 능력이 서구에 뒤지지 않았다는 한 증거이기도 하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백과사전적 편찬 방식 때문에 중국 등 외국 문헌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는 원전 전체를 읽지 못한 무지의 소치”라고 『임원경제지』의 가치를 평했다. 원전 인용과 저자의 견해를 함께 실어, 당대 조선인들이 지식을 어떻게 인식하고 배치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문명의 지도와 같은 책이라는 것이다.

책은 텍스트뿐 아니라 각종 농기구의 공학적 구조, 토지 구획 방식 등에 대한 그림과 도표까지 담고 있다. 고랑과 이랑의 너비, 성인 1인 당 1년 곡식 소비량 등까지 세부적으로 조사·수록한 ‘실학 정신’이 집약된 책이기 때문이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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