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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의 세계도시 건축 순례] 12. 美 캘리포니아 소크 생물학연구소 <끝>

바다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비움의 마당’은 시시각각 다른 표정을 짓는다. 왼편의 실험동과 오른편의 연구동 사이에 침묵으로 펼쳐진‘비움의 마당’은 투명한 하늘 벽으로 우주를 열기도 하고(上), 석양으로 붉게 불타며 장엄한 절대 공간을 열어젖히기도 한다.

1974년 3월 17일, 미국 뉴욕 기차역에서 한 노인이 심장마비로 죽은 채로 발견됐다. 행려병자로 간주된 이 노인의 주검은 인근 시체안치소에서 사흘 동안 머문 후에야 그가 20세기 최고의 사색적 건축가로 불린 루이스 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인도의 아메다바드에 짓고 있던 인도경영학대학 공사 현장을 방문하고 귀국해 필라델피아 집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루이스 칸, 20세기 건축가 중 가장 메시지가 강한 건축가인 그는 1901년 에스토니아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어릴 적 미국 필라델피아에 이주한 후 예술가인 부모님의 영향 아래 일찍이 건축에 입문했지만 그가 건축계에 이름을 알린 때는 나이 50이 넘어서였다. 그러나 20세기 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한 그의 건축과 이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영성과 시심에 가득 차 있었으며, 그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건축의 질서를 발견하고 정제된 빛으로 만든 침묵의 공간을 통해 우리의 근원을 되묻게 한 구도적 건축가였다.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 솟은 국회의사당은 칸의 빛과 침묵이라는 주제어가 화려하게 만발한 걸작 중의 걸작이다. 세계 최빈국의 수도 다카였지만 그곳은 칸의 건축을 갖게 됨으로써 현대 건축의 성지 자격을 얻을 정도였다. 그 건축 속에 서서 신비에 가득 찬 그의 건축 언어들을 음유하다 보면 어느덧 우리는 시인이 되고 성자가 된다.

그러나 더욱 나를 감동시킨 그의 건축이 있으니 캘리포니아 남부 라호야라는 마을에 있는 '소크 생물학연구소'이다. 나의 근본을 묻게 한 그 건축은 부동의 교과서로 나에게 남아 있다.

1959년, 폴리오왁신을 개발한 조나스 소크 박사는 샌디에이고의 라호야 지역에 생물학 연구소 설계를 칸에게 의뢰하면서 과학과 인간이 결합하는 건축과 장소로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칸은 소크 박사가 가진 건축에 대한 혜안에 감명을 받고 대단한 작가 의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이 설계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칸은 부지 규모의 결정에서부터 관여하기 시작해 수없이 많은 스케치를 해야 했고, 소크 박사와 토론을 통해 몇 번이고 수정하곤 했다. 소크 박사가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 수도원에서의 감동을 얘기하면 그는 다시 그 곳을 방문해 경험을 설계에 반영하기도 했고, 티볼리의 아드리아누스 궁전에서 몇 부분을 인용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후 62년에 비로소 최종안이 만들어졌다. 태평양에 면한 절벽 위가 부지인 이 연구소의 본관은 가운데 포플러나무가 가득 차 있는 마당을 두고 연구동과 실험동, 두 개의 건물로 분리돼 설계됐고, 인근에 숙소와 집회시설까지 계획되었다.

그럼에도 이 건축을 가장 특징적으로 결정지은 사건은 공사 중인 65년에 일어났다. 본관 골조가 완성돼 가고 있던 그 즈음에도 칸은 두 건물 사이에 놓인 마당의 디자인을 결정하지 못하다 그해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루이스 바라간의 건축전시회를 보고, 조경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듯 보인 그에게 이 마당의 디자인에 관해 자문해줄 것을 요청했다.

바라간은 멕시코의 건축가였다. 찬란한 마야와 아스테카 문명을 가졌지만 제국주의에 의해 멸망당하고 방황의 역사를 전전하던 멕시코는 20세기에 이르러 사회혁명을 통해 정체성을 회복하려 안간힘을 쓰는, 결코 간단치 않은 역사를 가진 나라다. 이 나라에서 수도자적 삶을 살며 멕시코의 슬픈 영혼을 담는 건축에 몰두하던 바라간에게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80년에 수여된다.

그는 수상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아름다움을 빼앗긴 인간의 삶은 가치가 없다. 고독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만이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한다. 고독은 좋은 반려이며 내 건축은 고독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는 이들에게 맞지 않다… 나는 이러한 미적 진실이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건축을 한다."

그런 바라간이 66년 초 칸의 요청에 따라 소크연구소 현장을 방문해 콘크리트로 지어지고 있는 두 건물과 그 사이에 진흙으로 덮인 마당,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태평양을 보며 묵상에 잠기다가 칸에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뭇잎 하나 식물 하나도, 꽃 하나라도, 심지어 먼지 하나라도 이 마당 안에 두지 마십시오. 완벽히 비운 이 마당은 그 두 건물을 결합시켜 그를 통해 바다의 수평선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라간의 이 생각은 전통적 정원의 분위기를 원한 소크 박사에게는 그리 탐탁한 제안은 아니었지만 칸은 바라간의 개념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오랫동안 칸은 그 비움에 대한 개념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 데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과정을 또한 자랑스럽게 회상하곤 했다고 한다.

소크연구소 건축에서 이 비움의 마당은 가장 본질적 요소다. 시각에 따라 변하는 태양과 그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의 농도와 깊이에 의해, 변하는 계절에 따른 하늘의 색깔에 의해, 기후에 따른 바다와 하늘의 변화하는 표정에 의해 비워진 마당은 수시로 다른 표정을 갖는다. 그리고 방문하는 이들의 주장과 관념에 의해, 거주하는 이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변하는 기쁨.노여움.사랑.즐거움에 의해 채워지고 또 비워진다.

이 마당은 더불어 무한히 열려 있으며, 때로는 어두운 색으로 변한 하늘의 벽으로 닫혀진다. 아마도 일몰의 시간이면 태평양의 수평선은 불타는 벽으로 나타날 것이며, 하루의 이 마지막 시간이야말로 칸이 줄곧 추구해온 절대 공간, 본질적 공간에 가장 근접해 있는 건축의 장엄미일 것이다. 실로 이는 비움이 갖는 절대미학이었으니 수천년 동안 채우기를 목표 삼아온 서양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비움, 이 용어는 이제 서양의 현대건축에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건축의 키워드가 돼 있지만, 이는 본디 우리 선조들의 상용어였으며, 우리의 옛 도시와 건축의 바탕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비움은 추방해야 할 구악이 되었고, 채우기에 몰두한 나머지 우리 도시는 악다구니하는 한갓 조형물과 건조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우리의 삶과 공동체는 그래서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좋은 건축과 건강한 도시는 우리 삶의 선함과 진실됨과 아름다움이 끊임없이 일깨워지고 확인될 수 있는 곳이며, 그것은 비움과 고독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바라간과 칸은 믿었다. 물신의 탐욕이 과도히 지배하는 이 시대에 잃어버렸던 우리의 고독을 다시 찾아 이를 마주하고 우리의 근원을 다시 물을 수 있도록 비워진 곳, 그런 비움의 도시가 결국 우리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 소크연구소 마당은 이에 대한 바라간의 선언이었고, 칸의 증명체였던 것이다. 그렇다, 도시와 건축의 아름다움은 채움에 있지 않고 비움에 있다.

나는 이 생각으로 지난 6개월간 이 귀중한 지면을 소비해 왔다. 이념의 도시가 갖는 광기를 증언하고 자본의 도시가 갖는 횡포를 고발하려 했으며, 권력의 도시와 건축이 내뿜는 독기를 기록하려 했다. 서양 건축의 껍데기로 지어지는 우리의 신도시들을 통박하고 도시는 부동산의 집합이 아니라 문화며 삶터임을 강조하고자 했지만, 돌아보면 글의 오류와 부족함이 하염없이 부끄럽다. 졸렬한 글 재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의 귀중한 삶을 위협하는 이 시대 우리 도시와 건축의 야만성을 참지 못한 게 몹쓸 만용으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다시 간절히 전하고 싶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것을….

승효상 <건축사무소 '이로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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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