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장성택과 포스트 김정일 (3)

북한이 9일 제 12기 최고 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재추대하고, 1998년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을 11년만에 개정했다. 그리고 김정일 3기 체제를 정식 출범시켰다. 제12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역시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사진) 노동당 행정부장이 국방위원회 국방위원으로 처음 선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선군정치를 모토로 내걸면서 2012년에 강성대국의 꿈을 꾸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 이후의 북한 권력구도 재편의 시금석을 놓고 있다는 암시를 대내외적으로 던져 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김정일 위원장이 경제발전과 체제안정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선제포석으로 북한의 내정과 행정 그리고 정보에 달통한 장성택 행정부장에게 국방위원의 자리까지 맡게 한 것은 이제 김위원장이 장부장에게 군부통제까지 자신을 대신하여 관리담당토록 새로운 임무와 힘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이는 북한 내부의 권력이동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의 3회에 걸친 기고를 통해 장성택 급부상의 의미와 인간 장성택에 대한 해부,그리고 향후 포스트 김정일 체제를 전망해본다.


장성택과 포스트 김정일 (3)

김정일 이후의 북한의 후계구도와 관련하여 장성택의 최근 행보는 분명해진 것 같다.그는 과거처럼 김정일의 세 아들을 제치고 자신이 곧장 포스트 김정일 시대의 북한을 이끌어 나가려는 행보를 취하기보다는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옹립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한때 장성택은 김정남을 차기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우기 위해 김정일과 김정남 두 사람 모두를 상대로 설득작업에 나선적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김정일에게는 장남인 김정남을 서서히 후계구도에 올려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설득을, 그리고 김정남에게는 왜 북한의 최고책임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여전히 북한의 차기 구도에 관해서는 장남 김정남에게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김정남이 권력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이후 장성택의 후계구도 역할론은 김정일의 뇌졸중 회복과 더불어 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되기 시작했다.

과거 북한의 후계구도와 관련하여 장성택이 김정일에게 김정남을 후계자로 거명했을 때 김정일은 “왜 분란의 소지가 있는 문제를 들고 나와서 또 소란스럽게 하느냐”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후계문제 논의를 원천봉쇄했었지만, 2007년 이후엔 이 문제와 관련하여 김정일이 침묵을 유지하거나 조금씩 수긍해 나가는 태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2007년 장성택은 김정남을 싱가포르에서 만나 아프리카로 데리고 여행을 갔다 왔다. 이 두 사람의 여행에서 장성택은 김정남으로 하여금 북한의 최고 지도자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도록 설득했다고 한다.

장성택은 왜 세 아들 중 김정남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옹립하고 나섰던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의 권력체계가 남존여비, 장자우선이라는 가부장적 유교문화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50년 동안 유지되고 존중되어온 유교문화와 정서를 외면한 채 후계자를 내세울 수 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권력이 태생적으로 정당성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차남인 김평일 보다는 장남인 김정일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옹립된 이치와 꼭 같다는 입장이다.

둘째, 자신의 정적이었던 고영희의 두 아들 중의 한 아들이 후계자로 옹립될 경우, 장성택은 자신이 숙청 1호의 대상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셋째, 고영희의 두 아들들은 북한 사회내부에서 “아직 멀었어. 그 쪽은
시간이 필요해” 라는 평가처럼 후계자로 내세우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점이다.
넷째, 김정남과 장성택은 같은 시기에 고영희로부터 정적으로 간주되어 배제되어 왔었다는 동병상린의 입장에 처해 있고 두 사람은 김정철과 김정운의 세력에 대해서는 서로 협력과 연대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장성택이 김정남을 적극 옹립하고 나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78년경이었다. 장성택이 김정일로부터 총애를 받았을 때 김정일이 가끔 장성택을 파티에 부르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까 장성택도 김정일의 파티 초청을 흉내 내면서 외교부 간부들 중 자신의 측근들을 불러 놓고 1주일에 한 번씩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김정일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여러 차례 계속되자 정치보위부에서 김정일에게 이런 사실을 직보하고 말았다. 김정일이 대단히 화를 냈다고 한다. 김정일은 장성택을 불러 놓고 “네가 뭔데 내 흉내내가며 연회하느냐. 이 땅에서 세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는 장성택을 강선제강소로 쫓아냈다. 평양에서는 두 시간 정도 가는 곳인데, 강등 시켜서 작업반장으로 보냈다. 작업반장이면 평민이다. 장성택은 여기서 2년여를 고생했다고 한다. 넘어져서 불에 데기도 했다고 한다.

80년 2월 16일 관저에 김경희가 들어왔다. 김정일의 첫 부인 성혜림은 “고모, 고모부 없이 고생이 많구려.” 하며 위로했다. 당시 김경희는 중앙당 국제부 과장이었다. 김경희는 “잘못 했으면 처벌받아야지요.”라고 말했다. 성혜림은 그렇게 말하는 김경희의 속마음을 읽었다. 성혜림은 김정일에게 “이제 고생을 많이 해서 반성도 많이 했을 테니 고모부를 불러 옵시다.”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아니야, 더 고생시켜야 돼. 그냥 놔 둬”라고 퉁명스럽게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성혜림은 관저 보좌관인 이창원 관저 운수과장을 강선제강소로 보냈다. "가서 정남이 고모부를 모셔 오라"고 지시했다. 관저에서 김정일과 가족들이 식사하는데 장성택을 데리고 왔다. 성혜림이 김정일에게 말하지 않고 부른 것이다. 관저에 오는 도중 자기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왔는데,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장성택은 김정일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김정일은 인사를 받고도 별 말이 없었다. 성혜림에게 “에이그, 당신도 참 극성이구려.”라고 한마디 했다.

장성택은 김정남의 어머니인 성혜림이 풀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식사하면서 술이 몇 잔 들어가자 김정일은 장성택에게 “너도 한 잔 해라, 그리고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고 하면서 술을 컵에 따라 주었다. 장성택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후 장성택은 곧 조직지도부 당원등록 과장이 됐고 82년에는 청년사업부 부부장을 했고 곧 부장이 됐다. 장성택은 장기도 잘 두고 주패(트럼프)도 잘 하는 등 잡기에도 능하고 아코디언 연주는 기막히게 잘 했다고 한다. 이후부터 그는 김정일 관저에서 하는 측근자 파티에 계속 들어왔다.강선제강소로 하방 조치된 장성택을 결정적으로 구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이었다. 장성택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김정남을 옹립하고 나선 이유가 짐작되는 대목이다.

김정일이 뜻하지 않게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주변 국가들은 일제히 김정일의 역할을 누가 할 것인지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정보당국은 재미있는 분석을 내 놓았다. 미국 정보기관에서는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대리인을 내세우거나 사망할 경우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 정보기관은 최근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세 가지의 경우로 나눠 상황별로 권력승계와 북한 내부의 안정성 지속 여부를 분석했다. 먼저 미국 정보기관은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정신적 장애가 아닌 신체적 장애만 있거나 ▶무력화 (의식불명)의 장기화 그리고 ▶사망등 3가지 경우로 나눴다.

미 정보기관은 우선 신체적 장애만 있을 경우 자신의 매제인 장성택 행정부장과 실질적인 부인 역할을 하고 있는 김 옥 국방위원회 과장을 최소한의 권한을 가진 ‘대리인’으로 내세워 배후 조종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판단의 근거로 김정일이 중요한 결심을 할 때 자문 역할을 하는 참모 그룹들을 활용하지 않고 있으며, 각종 정책이 개인 비서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또한 대리인이 생길 경우 김정일은 외교정책과 안보 문제에만 직접 개입하고 나머지 사안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미 정보기관은 전망했다.

그러나 노동당과 군 원로들은 김정일의 장애 발생 이후 처음 몇 개월 동안만 대리인을 인정할 것이고, 상태가 지속될 경우 후계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내다 봤다. 특히 김정일이 사망할 경우의 북한통치구조는 집단지도체제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고위 군사 지도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장성택 행정부장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집단지도체제 구성원들은 지난 수 십 년간 김정일과 그 부친인 김일성에게 충성을 해 왔기 때문에 김정일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집단지도체제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면 북한 통치에 대한 연속성과 정당성이 유지 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 역할은 김정일의 세 아들 중 하나가 아닌 장성택 행정부장이 맡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이유로는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이 아직 김정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차남인 정철과 삼남인 정운은 아직 20대로, 경험이 부족하고 북한 주민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북한의 지배이데올로기는 국가 건국 초기에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의해서 세워졌지만 김일성의 지배가 정립된 이후부터는 김일성주의에 의해서 통치되어 왔었다. 그리고 김정일 시대에 와서는 김일성-김정일 주의가 통치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아 가면서 지금은 김일성 김정일의 왕조체제로 지배구조가 틀 지워졌다. 북한에서의 김일성과 김정일은 그 자체가 국가이고 체제이며 북한인 것이다. 수령이 중심인 수령체제가 북한인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 이후의 권력승계자도 김 씨 일가에서 나올 가능성이 많다. 만일 김 씨 일가의 자식들이 어려서 승계를 할 수 없는 상황이면 장성택 등 제3자에 의한 과도적 승계도 불가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일성에 비해서 김정일의 권력은 매우 많이 약화되었다. 김정일은 어떤 측면에서는 김일성의 유훈과 후광으로 통치와 정권연장을 해 나가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김정일 이후의 세대에게 있어서 김 씨 가문의 영향력이 급속히 떨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만일 장성택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등극한다면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점진적으로 개혁 개방의 조치를 앞당겨 나가면서 북한이 안고 있는 경제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쪽으로 자신의 리더십을 공고화 시켜 나갈 것이다. 김정일의 세 아들들이 북한을 이끌게 되었을 경우에는 경제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여 지지 않는다. 전 세계가 지금 1930년의 대공황과 같은 경제위기를 맞고 있을 때, 세계 모든 나라에서 지도자의 첫째 조건으로 꼽는 요인은 다름 아닌 누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남한과 북한도 경제권을 쥐는 사람이 국가운영의 헤게모니를 잡아 가고 있다. 이는 곧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남북한 모두에서 대통령이 된다는 점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북한에서 차기 지도자로 급부상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은 친 김정일가(家)여야 하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장성택은 이런 점에서도 최적임자로 꼽힌다.

장성택은 그동안 두 번에 걸친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한번은 하방조치에 가까운 징계를 당했고, 다른 한번은 직무정지를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는 나이에 상관없이 중국의 부도옹(不倒翁) 등소평처럼 정적들이 쳐 놓은 바리케이드를 걷어 내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실권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는 신의주 경제특구 등을 포함하여 북한의 경제를 새로운 개혁개방으로 이끌 액션플랜을 주도해 왔다. 그는 어떤 측면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갖고 있다는 점과 정치적 시련기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의 역학관계와 시대의 흐름이 그를 필요로 해서 불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는 중국의 등소평과 닮은 점이 많다. 그가 북한을 새로운 개혁개방의 시대로 이끌 북한판 개혁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김정일- 장성택 관계는 어떤 권력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인가. 지금의 흐름으로 본다면 김정일-장성택의 권력관계는 중국의 등소평-강택민, 강택민-주용기, 후진타오-원자바오와 같은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정치적 주석은 김정일이 맡고 그 아래서 실질적인 행정총리로서 장성택이 내각을 이끌고 나가는 김정일-장성택의 역할 분담이 조금씩 이뤄진 쪽으로 두 사람의 권력관계는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장성택은 2002년 경제시찰팀으로 남한에 왔을 때 매일 밤마다 숙소에서 폭탄주를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2005년 6월 북측을 방문한 남측의 통일부장관을 만난 김정일은 “장 부(부)장이 남조선에서 폭탄주를 너무 먹고 몸을 버리는 바람에 한 동안 쉬도록 했다”고 밝혀 이미 그의 복귀는 예고되었었다. 고혈압, 고지혈증을 치료하기 위해 러시아 크렘린 병원을 왔다 갔다 한 장성택이 김정일 이후 북한의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일까. 그가 킹으로 등극할 것인지 아니면 킹메이커가 될 것인지에 따라 북한의 운명은 물론 한반도의 정치지형도 달라질 것 이다. 김정일 이후 북한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예측하는데 있어서 장성택의 존재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끝>

필자 장성민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북한정치를 연구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세인트존스대학 국제문제연구소에서 '현대 영국과 국제문제'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미국 듀크대 국제문제연구소에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연구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초대 국정상황실장과 16대 민주당 의원을 지냈다. 의원시절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로 활약중이다. 저서와 역서로 '전쟁과 평화: 김정일 이후, 북한 어디로 가는가' '전환기 한반도의 딜레마와 선택"9·11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등이 있다.


장성택 부상이후 북한을 어떻게 볼것인가



①장성택, 김정일 이후 킹인가,킹메이커인가

②장성택의 숙청과 부활

③장성택과 포스트 김정일 (3)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