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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일본인과 개 출입금지 ?

엊그제의 일이다. '맞짱 뜨는 여자' 권명아가 독도 이야기 끝에 자신이 찍은 사진을 한 장 보여준다. 신촌의 한 술집 앞에 걸린 '일본 사람과 개 출입금지'라는 팻말 사진이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마땅한 술집을 찾다가 그 팻말을 함께 보았다니 두 사람이 동시에 느꼈을 민망함은 미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그 술집뿐이 아니란다. 일본의 관광객이 많이 찾는 홍대입구의 옷가게에는 친절하게 일본어로 '일본인과 개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여러 군데 걸려 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실상 이 '출입금지'의 문법은 별반 새로운 게 아니다. 상하이(上海)의 영국 조계 공원 입구에 걸린 '중국인과 개 출입금지', 1968년까지 런던대 앞의 펍에 버젓이 붙어 있던 '아일랜드인과 개 출입금지', 미국 남부의 한 상점 앞에 걸렸던 '흑인과 애완동물 출입금지' 등의 팻말은 그것이 '제국'의 문법임을 잘 드러내 준다.

상인들이 '출입금지' 팻말을 내걸면서 그것이 제국의 문법이라는 점을 의식했는지는 모르겠다. 구 제국을 바라보는 이들 구 식민지인들의 시선에 제국에 대한 욕망이 담겼는지 혹은 제국에 대한 통쾌한 보복심리가 작동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아마도 민족주의를 팔아 매상을 올리겠다는 상술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한다.

따지고 보면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도 오십보백보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향해 떠나는 한겨레 호의 승선구 앞에 '일본인 진입금지'라는 큼지막한 입간판 사진을 찍어 전송한 유력 통신사나 그 사진을 받아 버젓이 올린 중앙 일간지들의 시각이 이들 상인보다 더 나을 것은 없다.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들의 상업적 민족주의는 금방 그 얕은 바닥을 드러낸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회의적이고, '새 역사교과서'의 일본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일본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일본인들도 출입금지의 대상인가? 4년 전 '새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을 0.039%에 불과한 미미한 것으로 만든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도 출입금지의 대상인가?

내가 이 팻말에 전율하는 이유는 더 근본적인 데 있다. 단일한 '일본 국민'을 만든다는 '새 역사교과서'의 목표에서 보듯이 일본의 민족주의자들은 모든 일본인을 통일된 의지를 지닌 하나의 일본인으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런데 이 팻말은 일본과 일본인의 복수성을 부정하고 모든 일본인을 하나로 묶음으로써, 단일한 일본 국민을 만든다는 일본 우파의 목표에 반사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가 우경화를 주도하는 일본의 민족주의와 적대적 공범 관계를 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요컨대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는 모든 한국인과 일본인을 단일한 의지를 지닌 집합체로 상정한다는 점에서 민족을 단위로 사유하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위험한 것은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가 행한 행위의 의도나 결과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해 있는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단지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가게에서 술을 못 마신다거나 옷을 살 수 없는 차원에 그친다면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갈등이 첨예화될 때 그 사소함이 지그문트 바우만이 '범주적 살해'라고 이름붙인 인종학살(genocide)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모든 유대인의 가슴에 다비드의 노란 별을 달게 했을 때, 홀로코스트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피해자는 아무 잘못도 없이 단지 어느 민족 범주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고 또 가해자는 그런 이유로 집단학살을 정당화한다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임지현 한양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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