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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성의 How are you] 아시안 게임 4관왕, 유진선 “라켓은 내 운명”

한국의 테니스 전성기는 1980년대 초~90년대 초라는 것이 정설이다. 테니스 인구야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더라도 당시 일반인들의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동작이 큰 발리 자세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헤어밴드와 눈에 띄는 목걸이, 그리고 화려한 서브 앤 발리. 유진선(47)은 지금의 이형택과 비견되는 테니스 스타였다. 당시 아마추어 선수로 프로대회 출전이 제한돼 있어 ATP 랭킹 포인트를 쌓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당시 세계랭킹 178위까지 기록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KAL컵, 아시아서키트, ITF 서킷 등 그가 참가하는 아시아권 대회의 우승 트로피는 이변이 없는한 그의 차지였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테니스 천재'는 29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코트를 떠났다. 테니스계로서는 너무나 아까운 조기 은퇴였다.



그는 지금 다시 테니스 라켓을 잡고 이제는 '테니스 꿈나무'를 키우는데 모든 힘을 바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지금 그의 신분은 동원대 레저스포츠학과 교수와 수산물 유통업체 '용궁'의 서울지사장이다.

 

아시안게임 4관왕

 

'유진선'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86년 아시안게임 4관왕 타이틀이다. 남자단식, 복식, 혼합복식,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당시 최다관왕 자리에 올랐다.



당시 한국 남자테니스 대표팀의 멤버는 송동욱, 노갑택, 김봉수 등으로 그야말로 짱짱했고 그중에서도 유진선은 기둥이었다. 특히 김봉수와 짝을 이뤄 출전한 남자복식에서 중국의 류슈화-마커친 조와 3시간 14분의 혈투 끝에 2-1로 승리한 경기는 한국테니스의 명승부 중 명승부로 남아있다.



3세트 세트스코어 6-6에서 끝내기 점수를 따내며 17-15가 되는 상황은 하이라이트였다. 당시 방송중계가 너무 길어지자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를 끊으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연락이 와 한바탕 소동 끝에 중계가 이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밝힐 수 없는 은퇴의 진실

 

유진선은 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1년 뒤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본인은 "평생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얘기"라며 지금도 속시원히 내막을 터놓지 않지만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뭔 일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당시 남자 테니스는 은메달 2개로 극히 부진했다. 유진선은 "당시 (90년)봄에 대표 선발전 할 때 후배들을 위해 나가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혔지만 협회의 설득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주장도 맡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성적이 안 좋을 수밖에 없는 일이 분명히 있었다. 당시 누구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고 나라도 의사 표시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유진선이 밝힌 당시의 상황 설명이다.



유진선은 또 "회의감도 들었다. 라켓이 아니라 다른 걸로 과감하게 내 삶을 변화시켜보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다시 라켓을 잡고

 

당시 그는 방송과 CF에 곧잘 등장했다. 말 솜씨가 연예인 뺨 쳤기 때문이다. 2년 가량 말 그대로 '아무 생각없이' 놀던 그는 94년 육상스타 장재근과 함께 KBS TV의 '별난세상, 별난 사람'을 진행한다. 방송 초보가, 처음으로 한 방송이 어렵다는 생방송이었다. 당시 박일경 PD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유심히 봐왔다. 함께 일해보자"고 해 승낙했다.

 

4년간 방송을 하던 그는 98년 미국 플로리다에 갔다가 주니어 테니스 스쿨인 '닉 메이시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우연히 일하게 됐다. 바람 쐬러 간 길이었지만 테니스가 운명인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코치로 잠깐 일하다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99년 입국해 주니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한국의 닉 메이시 스쿨을 만들고 싶은 포부였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선수들을 키워 놓으면 실업팀 등에서 빼가는 것이다. 당시 계약같은 것이 관행화 돼있지 않은 상황이라 속수무책이었다. 배신감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이후 2003~2004년 중국 테니스 대표팀 감독을 맡다 2005년 한국으로 다시 와 주니어 선수를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터전을 다지기 시작했다.

 

테니스 학교를 만드는 것이 꿈

 

그는 올 여름에 워커힐 호텔에서 테니스 캠프를 연다. 실내코트 1면, 야외 코트 2면에서 숙식까지 제공하며 테니스를 가르치는 과정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테니스 스쿨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대표로 얻은 명예와 국민적인 사랑을 테니스로 되돌려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다. 이 결정에는 후배들에게 롤 모델이 돼야겠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테니스 교본도 올해 안 출간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올해 안에 인생의 반려자를 맞이하게 될 것 같다"는 유진선은 "국가대표였던 나는 테니스를 하는 젊은이들의 미래의 꿈일 수 있다. 그 의무를 충실하게 해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길러내고 싶다"고 말했다.





박수성 기자 [mercu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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