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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경쟁력을 말한다 ⑤ ‘해외서 한 학기 학점 따기’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

 서울 이문동 한국외국어대 본관에는 ‘외대를 만나면 세계가 보인다’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55년간 한국 외교·무역의 ‘입’과 ‘귀’가 되는 인재를 키워온 자부심을 축약한 말이다. 본관 2층 박철 총장 집무실 책상에는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다. 박 총장은 “오후 10시까지 근무해도 일에 끝이 없다”며 “기축년 소띠생인데 일복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박 총장은 “45개 외국어를 가르치는 유일한 사립대의 강점을 살린 글로벌 인재를 키워 세계에 내보내겠다”며 “언어와 실무지식에 능통한 인재들이 지구촌을 누비면 국가 경쟁력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어 2~3개 못하면 ‘우물 안 바보’ 되는 시대 아닌가”



만난 사람 = 양영유 교육데스크



 -5년 안에 전체 학부생에게 외국 대학 학점을 따게 한다는 계획이 신선하다.



“외국어 2~3개를 모르면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안 바보’가 되는 시대다. 입시에서 의대와 법대가 인기가 높지만 의사나 변호사 중 해외로 진출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언어가 안돼 외국 환자를 못 받고, 기업들도 대부분 외국인 변호사를 채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의학·법률은 물론 경영·기술·비즈니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외국어는 국가 경쟁력의 기본이다. 외국어 전공뿐 아니라 글로벌 경영대·자연대·공대·로스쿨 등을 겸비한 외대가 먼저 할 수밖에 없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방안은.



“2006년 2월 취임할 때 세 가지를 공약했다. 첫째는 6개월씩 해외연수를 보내는 7+1제도, 둘째는 학부생의 두 가지 전공(이중 전공) 의무화, 셋째는 두 개 이상 외국어 인증제 도입이다. 7+1제도를 통해 재학생 전원에게 해외 경험을 쌓도록 할 계획이다. 2007학년도 입학생부터는 이중 전공과 외국어 인증은 졸업 필수 조건이 됐다. 영어 인증제는 원래 시행해왔는데 올해 영어 점수가 미달돼 졸업 못한 학생이 330명 된다.”





-7+1제도가 독특하다.



“정규 8학기 중 한 학기는 외국 대학에서 학점을 따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 전공에 맞춰 해외 대학을 소개해 주고, 한 학기 학비를 장학금으로 돌려준다. 지난해는 1000여 명이 이 제도를 활용했다. 올해는 15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재학생 1만5000명의 10% 수준이다.



“5년 내에 3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 해에 30%씩 4년이면 120%이므로 재학생 전원이 해외로 나가는 셈이 된다. 7+1뿐만 아니라 외교통상부·KOTRA 인턴, 한국국제협력단 같은 해외봉사단, 단과대별 단기연수까지 합하면 현재도 2000명이 넘는 학생이 해외로 나가고 있다.”



-재원은 어떻게 확보하나.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주로 교비나 발전기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취임 이후 발전기금으로 220여억원, 프로젝트 자금으로 330여억원 등 550여억원을 모금했다. 하지만 사립대로서 한계가 있다. 정부가 조금만 도와주면 좋을 텐데….”



-세계 유일의 사립 외국어대인데 정부 지원이 없나.



“외국어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에 학생을 내보내는 브릭스(BRICs) 사업, 인문학 지원(HK) 사업 등에서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외대에는 국내 유일의 아프리카·중동·동유럽 발칸·남아시아 연구소가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 지역에 젊은이를 보내 개발을 하고 난리인데 우리는 손을 놓고 있다. 급하게 투자하려면 돈이 10~20배는 더 든다.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것 아니겠나.”



-해외 외국어대는 어떤가.



“세계 주요 국가들은 정부가 외국어대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외국어대(43개 언어), 일본 도쿄외국어대(26개 언어), 미국 국방외국어대(25개 언어)도 모두 국립이다. 전공 언어 숫자로만 봐도 한국외대는 프랑스와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다. 국가의 모든 언어교육을 사립대가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대학들과 경쟁하려면 우수 학생을 뽑는 일도 중요하다.



“최근 대입 자율화 논란이 뜨거운 걸로 알고 있다. 자율화에 따른 책임은 대학에 있다. 외대는 큰 변화가 없다. 2012학년도 입시에서 수시와 정시 비율을 현행 52% 대 48%에서 55% 대 45%로 조정할 계획이다. 수시모집은 통합교과형 논술, 학생부, 어학성적, 외국어 능력 등을 측정하는 심층면접 등 다양한 요소를 적용하겠다. 논술은 외대 특성에 맞게 영어지문을 활용하고, 올해부터는 영어 쓰기 항목 추가를 검토할 예정이다. 정시모집은 수능과 학생부로 선발하는 현행안을 유지한다.”



-영어 쓰기가 논란이 일 수 있다.



“영어지문은 교과 과정 내에서만 출제한다. 답안에 간단한 것은 영어로 쓰게 하겠다는 얘기다. 옛날식 본고사나 사교육을 유발하는 문제는 절대 출제하지 않는다. 외대 들어오면서 영어 못하면 문제 아닌가.”



-정부가 영어 공교육 강화를 추진 중이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1997년부터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3학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1학년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외국어를 배우면 모국어 구사능력이 떨어진다고 걱정하지만 그건 기우다. 언어학자들은 8~10세에 2~3개 언어를 습득할 능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은 스페인어와 카탈루냐 두 가지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학교 발전을 위해선 교수의 책임과 역할도 크다.



“경쟁시스템을 도입했다. 전임강사가 5년6개월 만에 정교수가 될 수 있도록 한 고속승진제가 대표적이다. 올해 대상자가 나오리라 본다. 논문 업적 등에 따라 수당을 차등 지급하고, 국제학회 참가 교수에게는 1년에 세 번까지 참가비를 지원한다. 연봉이 3000만원까지 차이가 나 선의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교수들이 피곤해야 학교가 발전한다고 하지만 교수들이 피곤해하지 않는 것 같다(웃음). 지난해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 의대 없는 종합대학 2위, 인문사회 부문 교수당 논문 편수 2위를 하면서 교수들이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용인캠퍼스에 영어마을을 만든다고 들었다.



“올해 설계에 착수해 내년 11월 완공할 예정이다. 용인시가 조성비를 대고 운영은 외대가 한다. 영어마을이 너무 많다는 지적도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는 ‘세계문화마을’을 만들 계획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각국 언어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명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박물관과 공연장도 조성한다.”



-215일간의 직원 노조 파업을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관철했다. ‘돈키호테’ 배짱이라는 말이 있다.



“(웃으며) 대학이 잘되려면 학생과 교수도 중요하지만 행정직원도 잘해야 한다. 2006년 아픔이 있었지만 교훈도 얻었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2007~2008년 국가고객만족도 3위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성과급제를 실시해 동기부여를 했다. 직원들의 분발도 필요하다.”



-외대는 ‘최초’ ‘유일’이란 말이 많이 따라붙는다.



“유엔평화대학 석사 과정 개설과 특이언어 전공도 최초이고 유일하다. 외국인 교수 비율이 30%가 넘는 것도 우리 학교뿐이다. 전임교수 600명 중 외국인 비율이 지난해 기준으로 31.2%다. 외국인 교수 비율 30%, 원어 강의 30%, 해외 교환학생 30%를 달성하려는 ‘30·30·30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 학부·대학원·한국어문화교육원에 외국인 학생이 1600여 명 있다. 외국인 학생도 전체 정원의 30%까지 늘리려고 한다.”



-송도 제3 캠퍼스 조성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가.



“이문동 제1 캠퍼스, 용인 제2 캠퍼스에 이어 송도는 제3 캠퍼스다. 2012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통·번역센터와 2000여 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한국어문화원, 국제비즈니스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외국인 학생도 많이 유치해 글로벌 캠퍼스로 키울 계획이다. 한국 속의 해외 대학인 셈이다. 서울 강남구 자곡동 21만 평 부지도 장기적으로 제4 캠퍼스로 조성할 계획이다.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데 학교 용지로 풀리면 가능할 것이다.”



정리=이종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동고와 한국외대 스페인어과를 졸업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85년 한국외대 스페인어과 교수로 부임해 2000년 미국 하버드대 로망스어학부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2006년 2월 총장에 취임했다. 4남1녀 중 넷째로 맏형인 박강수씨도 배재대 총장을 지냈다. 스페인 소설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국내 최초로 완역했으며, 스페인 정부 문화훈장 기사장을 받았다. 2006년 215일간의 노조 파업을 ‘무노동 무임금’ 원칙으로 해결해 ‘2008년 협상 대상’을 수상했다. 애창곡은 ‘베사메무초’.






45개 언어 강의 개설

세계서 셋째로 많아




 한국외국어대에는 다른 대학이 쫓아가지 못하는 강점이 있다. 국제 무역과 외교의 첨병이 되는 인재를 키우는 외국어 학과다. 올해는 몽골어과(정원 20명)와 우크라이나어과(정원 20명)를 신설했다. 기존 터키어과도 아제르바이잔어를 추가해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로 개편했다. 학생들의 전공 외국어가 45개로 늘어난 것이다. 프랑스 이날코대학(93개)과 러시아 므기모대학(53개)에 이어 세계 셋째 규모다.



1980년대 개설한 폴란드어·루마니아어·체코슬로바키아어·헝가리어·크로아티아어 등 동유럽어 전공 과는 글로벌화의 ‘효자’다. 삼성을 비롯해 동유럽에 진출한 기업에 현지 언어·역사·문화·경제에 밝은 인재를 공급해 왔다. 한국외대는 해외 대학·언어연구소와 손잡고 학생들의 연수를 돕고 있다. 루마니아어와 헝가리어 전공 학생들을 위해서는 해당 국가 초청 장학생제를 운영 중이다. 스칸디나비아어과에서는 스웨덴 현지에서 직접 언어를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매년 10여 명을 뽑아 현지 체험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스웨덴 공보원에서 제공하는 단기 어학연수 프로그램과 장학금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어과에서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어, 투르크메니스탄어를 가르친다. 옛 소련연방 해체 이후 독립국가로 세계 무대에 등장한 중앙아시아 지역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지난해 용인 캠퍼스에 문을 연 통·번역대학도 경쟁력을 갖추었다. 영어·독일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중국어·일본어·태국어·아랍어·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통·번역하는 데 필요한 소양을 가르친다.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할 예비 통·번역사를 키운다.



중국어대와 일본어대도 단과대학으로 만들었다. 박철 총장은 “중국과 일본에 정통한 경쟁력 있는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별도 단과대를 신설해 체계적인 교육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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