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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일본 미술의 발자취 한눈에

뜻밖의 기회였다. 3일간의 도쿄(東京) 미술관 답사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16일,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과 미술사학과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답사팀과 함께 마지막 일정으로 도쿄예대 미술관을 향했다. 상설전을 보겠거니 하던 일행을 맞이한 것은 예상치 못했던 특별전 '근대 일본의 회화 재고'(20일까지)였다. 도쿄예대 미술관과 도쿄도(東京都)현대미술관 두 곳에 나뉘어 선보인 이 전시는 일본의 100년 근.현대미술을 총정리하면서 작품 600여점을 망라한 큰 규모였다.



'근대 일본의 회화 再考'展

도쿄도현대미술관 들머리부터 벽면을 가득 메운 도쿄미술학교 졸업생들의 자화상. 맨 위 가운데에 망건을 쓰고 한복을 입은 유학생 고희동의 얼굴이 보인다.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는 곧 서구화를 의미했다. 로큐메이칸(鹿鳴館)에서 왕실 주최로 열리는 기상천외한 서양식 무도회를 즐기던 일본의 지도자들이 한편으론 서양의 주요 도시에서 열린 세계박람회를 통해 오리엔탈리즘의 체취를 물씬 풍기는 일본문화의 이미지를 심고 있던 때다.



근대화의 추진과 니혼진론(日本人論)으로 대변되는 20세기 전반 일본의 상황은 미술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도쿄미술학교를 배경으로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본화의 근대화와, 파리 유학파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를 중심으로 한 서양화의 토착화가 주류를 이뤘다.



도쿄예대의 전시가 그 서론이라면 본격적인 '모던'의 추구는 도쿄도현대미술관에서 펼쳐졌다. 벽면을 가득 메운 도쿄미술학교 졸업생들의 자화상 중에는 한복을 입은 고희동 선생의 모습이 타지에서 만난 친척처럼 우리를 반긴다. 당시의 학생 습작 중 김관호의 등 돌린 여인 누드를 쏙 빼닮은 하라 부쇼(原撫松)의 누드화와 나혜석의 모작(模作) 논란이 있는 구메 게이치로(久米桂一郞)의 남성 누드가 얼른 눈에 들어온다. 김관호는 고희동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했다. 1916년 최우등으로 졸업하던 해 졸업작품인 '해질녘'이 일본 문부성 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차지한 당대의 스타였다. 춘원 이광수가 '미술계의 알성급제(謁聖及第)'로 격찬했던 그 수상작이 빠져있는 것이 아쉬웠다.



관학파.낭만주의.인상주의.신인상주의.야수주의.입체주의.구성주의.초현실주의 등을 망라해 마치 뷔페 식단을 보는 듯했다. 이들 20세기 전반의 작품들에서 몸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처럼 서구의 사조에서 자신들의 미술언어를 발견하고자 한 일본 화단의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몸서리쳐지는 역사를 담은 전쟁기록화의 방을 지나면 제2차 세계대전 뒤 맥아더의 미군정과 뒤이은 안보시대 이후로 펼쳐지는 실험기가 보인다. 일본 미술의 정체성 추구와 함께 국제적 도약을 위한 몸부림은 전후 아방가르드의 실험들로 이어진다.



모노하(物派) 코너의 이우환의 작품을 예외로 하고, 20세기 후반기로 넘어가면 한국전쟁을 계기로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사조들이 일본이라는 우회로를 거치지 않고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공유했던 근대미술은 각기 독자적 방향을 틀게 된다. '미술수첩' 등 일본의 미술지를 통해 이어지던 한.일 간의 미술교류는 우리시대에 와서 보다 빈번한 전시와 정보 속에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근대야말로 일본과 우리가 공유하는 '서양화'의 시작이다. 전쟁을 겪고도 남아있는 작품의 양이나 보존 상태, 장르의 다양함 등이 미술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마치 백과사전을 정리하듯 서양의 미술사조를 착실히 공부해 온 20세기 전반의 일본 미술이나 이후의 국제적 성격의 전위미술,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작품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풍미하는 형식의 추구는 보였으되 가슴 저미게 삶의 표현이 묻어나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이지은(미술사학 박사.명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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