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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13> 국내 선교 100주년 구세군 한국 사령관

세밑 혹은 연말을 상징하는 색으로 빨강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는 산타의 빨간 제복과 구세군의 빨간 냄비를 연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구세군의 제복과 빨간 냄비는 연말 자선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매년 익명 기부의 아름다운 창구 역을 하는 구세군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구세군을 자선 단체로 알고 있거나, 구세군이 한국 기독교의 한 교파임을 알고 있다 해도 그중의 일부는 소위 ‘이단 종파’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왼손도 모르게 실천하는 사랑
자선냄비에 담긴 뜻입니다

그래서 이번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공존 정신의 참뜻을 되새기고, 구세군의 봉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또 구세군은 어떤 곳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한국구세군(대한본영)의 전광표 사령관을 만나보기로 했다.







1. 구세군에 대한 이해와 오해



구세군은 산업혁명의 후유증으로 발생한 심각한 사회적 위기를 기독교 정신으로 구제하기 위해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설립한 교단이다. 우리나라에는 선교를 시작한 지 올해로 100주년이다. 한국구세군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주요 멤버며, 전국에 205개의 영문(교회)과 708명의 사관(성직자), 그리고 12만 명의 병사(신자)가 있는 개신교 주요 교파 중의 하나다.



Q 구세군이 성립하게 된 배경은 루터의 종교개혁처럼 기성 종교에 대한 ‘반동’으로 보기는 어렵죠?



“원래 구세군을 만든 윌리엄 부스는 감리교 목사 출신이에요. 그런데 그가 교회에 갈 때마다 당시 교회에서 귀족석과 일반석이 나뉘어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해요. 그가 생각하기를 사회에서는 몰라도 하느님의 성전에서마저 귀족과 평민의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고, 그래서 시정을 요구하면서 빈민층 신자들을 귀족석에 앉혔다고 해요.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죠. 그래서 그는 ‘거리 전도’에 나섰고, 그것이 오늘날 구세군의 정신이 되었어요.”



Q 구세군은 장로교와 달리 ‘웨슬리안’에 속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웨슬리안에는 감리교·성결교·구세군·나사렛 등이 있고, 정기적으로 웨슬리 선교대회를 열죠. 한국 개신교는 보통 ‘칼빈’과 ‘웨슬리’로 나눌 수 있는데 장로교가 칼빈이라면 나머지가 웨슬리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순복음’도 웨슬리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웨슬리에 가깝죠. 교세로 보면 한국에서는 전 세계 장로 교회의 50%가 한국에 있을 정도로 장로교의 교세가 크지만 외국에는 웨슬리가 많아요. ”



(웨슬리안은 극단적인 ‘신본주의’를 반대하며, 성서적 해석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운동을 주창한 ‘신학 운동’을 지지하는 그룹을 가리킨다. 웨슬리 운동은 먼저 영국에서 출발했고 이후 미국 등으로 퍼져나갔다. 이 운동은 다른 교파와 ‘3위 일체론’과 ‘원죄의 인정’등 중심 교리에서 다른 점은 없으나, 다만 ‘신을 믿지 않는 자는 선을 택할 능력도 없다’고 보는 비현실성 대신, 은혜는 모든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인류는 누구나 하느님에게 응답할 수 있고 응답해야 한다고 본다. 또 예수의 십자가 대속 역시 ‘믿는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향한 것이므로, 스스로 저버리지만 않는다면 신자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Q 통상 웨슬리안들이 청빈과 봉사를 다소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기는 하지만, 유독 구세군이 구령사업(복음 전도)만큼이나 사회사업에 큰 비중을 두는 것은 신흥 교파의 입장에서 빨리 교세를 구축하고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나요.



“하하… 그건 아니에요. 구세군의 사회사업은 목적이 없는 실천이에요. 성서에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말하고 있고, 또 그것은 예수님의 일이기도 하지요.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를 위한 일을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데, 교회가 그들을 위해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 구세군은 1908년 우리나라에 선교를 시작한 이래 성경대학·육아사업소·서울후생원 설립을 필두로 1928년 자선냄비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구세군 병원 건립과 한국전쟁 전후 무료 급식소, 양로원 건립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최근까지도 노인·아동·여성·장애인 복지관 건립과 노숙인 쉼터, 푸드뱅크 설립 등 숨가쁜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고 있다.)







Q 대개 종교 기관의 복지사업은 선교 활동의 일환인데, 구세군에서는 그것을 선교를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종교에서 복지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러니 그 당연한 일 외에도 종교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많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약자와 소외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지요. 저는 예수를 가장 닮은 분이 바로 ‘후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는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셨고, 후드는 처음부터 음지에서 사회복지를 실천했으니까요.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돌로 치라’고 하신 것처럼, 교회는 높은 데보다 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존재지요. ”



Q ‘사랑’ 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교회에서 ‘선교와 복지’는 병행되어야 하는 것인데, 왜 다른 종파나 종교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을까요.



“세계 구세군에는 공통의 슬로건이 있어요. ‘마음은 하느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모금조차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전통이 생겨났고, 그래서 자선냄비는 누구든 언제든 쉽게 익명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의 도구와 징표가 되었어요. 왼손도 모르게 사랑을 실천하는 그 마음을 구세군의 냄비를 통해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니 참으로 값진 일이지요. 그래서 자선냄비에 돈을 넣을 때는 금액이 큰 수표를 접어서 안 보이게 하거나, 큰돈을 작은 돈으로 감아 적은 금액처럼 보이게 넣는 분도 많았지요. 그것이 구세군의 정신입니다. ”



Q 이건 좀 다른 질문이지만, 한국에서 장로교의 교세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마 장로회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교를 시작한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나라는 장로·감리·성결·구세군 순으로 선교를 시작했으니까요. 장로회는 총회장만 100~200명이 될 정도로 교파 숫자도 그만큼 많아요. 하지만 웨슬리안은 대개 그렇지 않지요. 이유는 장로교는 의견이 다르면 갈라져 나가도 또 다른 이름의 장로교지만, 구세군은 나가면 구세군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



Q 우리나라에서 구세군의 교세가 적지만, 대신 교회 내의 이견이 적고 단일한 전통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구세군은 영국의 지시를 받고, 또 한국구세군은 본영의 지시를 받고 있어요. 또 각 성직자들은 ‘전근 제도’가 있지요. 게다가 조직이 준군대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효율적인 측면도 많아요. 전근제도의 경우만 해도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교회 성장을 위해 더 노력하게 되지만, 성직자가 자주 전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교회 성장에 대해서는 노력을 덜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세속적 기준으로 교세를 확장하는 데는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있어요. ”



Q 말씀을 듣고 보니 마치 가톨릭 교회의 조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왜 하필이면 군대 조직을 모방했을까요. 그 점이 일반인의 오해를 불러오거나, 혹은 포교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요.



“원래 구세군은 감리교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감리교도 ‘감독제도’가 있지요. 교회가 직급을 나누어 일하는 전통이 웨슬리안에 있는 셈입니다. 더구나 구세군이 유독 군대식 조직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형식을 제거하고 빠른 실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군대 조직처럼 보여 다소 어색할 수 있겠으나, 우리 구세군의 군대 개념은 성서에서 마귀와 사탄을 정복하는 하느님의 군대이기 때문에 사실은 더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지요.”



(사실 구세군의 군대식 조직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도 누구나 교회에 출석하면 구세군이 될 수 있다. 다만 성직자가 되려면 구세군 사관학교의 7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성직자들은 임관 후에는 군인처럼 ‘정위’ 계급장을 달고, 이후 15년을 사역하면 ‘참령’이 되며, 그 위로는 부정령·정령·부장·대장 순으로 직급이 높아지지만, 그 수가 아주 적다. 즉 대부분의 성직자 계급은 거의 같고, 그 위로는 천주교의 주교나 교회의 총회장과 같은 고위 성직자가 있다는 점에서 호칭만 다를 뿐 체계는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대장은 전 세계에 단 한 명이 있고, 우리나라 구세군의 전광표 사령관은 직급이 부장이다.)



Q 구세군에서 사관이 되기 위한 과정이 꽤 길더군요. 일반 신학대학 과정과는 좀 다르던데요?



“2년간의 공동체 생활 이후 또 5년간의 외부 과정이 진행됩니다. 또 우리는 선교와 사역이 동일해서 목사와 전도사가 따로 있는 일반 교회와는 다르기 때문에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하죠. 특히 ‘복지사’는 자격이 필요하니까 이후에도 복지사 자격을 얻기 위해 다시 공부하는 경우도 있지요. ”



(구세군 사관학교는 2년간의 합숙 훈련, 임관 이후 2년간의 신학 논문 심사, 3년간의 선교 신학대학원을 거쳐야 과정이 끝난다. 일종의 신학대학과 대학원 과정인 셈이다. 이러한 구세군의 사관학교 과정은 천주교의 신학대학처럼 심도가 상당하다는 평을 얻고 있다. 때문에 구세군에서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상당한 신앙과 노력의 결과물인 셈이다.)



Q 구세군은 노방선교(路傍宣敎)의 전통 등으로, 잘 모르는 분들로부터 혹시 이단 종파가 아닌가 하는 오해도 받고 있는 것 같은데요.



“과거에는 극히 일부에서 그런 오해가 존재했었지만, KNCC나 웨슬리안 활동 등 각 교파와의 연합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곡해는 소멸되었지요. 특히 노방선교는 구세군의 전통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노력에 비해 효과가 적은 방식이기는 하지만 예수께서 광야에서 설교를 하셨듯이, 후드가 길거리에서 소외자들에게 복음을 전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



(포털에서 검색을 해보면 이런 오해성 질문이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구세군의 노방선교 전통은 오래된 선교 수단이다. 하지만 모르몬교·여호와의 증인 등 성서 해석에 엄격한 원리주의적인 교파들도 노방선교의 전통을 유지하는 덕분에, 원래부터 노방선교의 전통을 가진 구세군도 비슷하다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Q 구세군은 천주교의 ‘영성체’나 개신교의 ‘성만찬’ 같은, 성체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것처럼 엄격한 성경 해석이 특징인데요?



“신앙인은 당연히 성서에 있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지요. 하지만 성만찬의 경우에는 지금은 금기가 아니에요. 일전에 시청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새벽 기도회 때 저도 성만찬에 참여했지요. 과거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신자들도 참여하는 분이 많을 거예요. 꼭 만찬식을 하라 말라가 아니라 전에는 만찬과 같은 의식보다는 사랑은 나누는 것이며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 더 큰 의미라고 여겼던 거지요. 뭐랄까. 만찬 의식과 같은 외피적 의식에 대해서는 의식 그 자체에 얽매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지요. 지난번 기도회에 참석한 신자들은 만찬 의식에 참여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



(구세군의 주일예배는 신자들끼리 보는 예배와, 신자나 비신자가 함께하는 예배가 형식이 다르다. 이를테면 전자의 경우는 엄숙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합창이나 브라스 밴드가 나오기도 하는데 흥겨운 축제 분위기다.)



Q KNCC의 회장을 유독 구세군 사령관께서 많이 맡으시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KNCC는 장로교의 통합과 감리교, 구세군, 기장, 성공회, 복음교회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각 교파에서 회장을 돌아가면서 맡게 되는데 다른 곳은 총회장이 여러 명일 수 있지만 구세군은 사령관이 한 명이니 자주 맡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겠죠. ”



Q 한국 구세군의 초창기 선교는 농촌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영국인 허가드(Robert Hoggard) 정령 일행이 한국에 와서 구세군 선교를 시작할 당시에 이미 장로·성결·감리교가 와서 도시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 때문에 구세군은 도시 중심보다는 선교가 부족한 농어촌에 주력했지요. 또 그것이 구세군의 정신과도 맞고요. 심지어 병원도 다른 교파가 대도시에 지을 때 구세군은 충북 영동에 병원을 세웠어요. 충청, 전라, 경상의 의료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운 셈이지요. 그런데 병원이 경제력이 열악한 농촌 지역에 있고, 또 구세군은 진료비가 없으면 끝까지 받으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늘 적자운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사례를 두고 젊은 후배 사관들은 가끔 ‘정신적으로는 훌륭하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하다못해 ‘병원을 대전에라도 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구세군의 정신인 셈이죠. ”



Q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일반인이 구세군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구세군의 봉사나 자선 활동에 대해서는 무한의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 미국에서 한 독지가가 구세군에 15조원을 기부한 일이 있었지요. 조건부 기부를 한 것인데 그것은 지역사회를 위해 센터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죠. 이분이 가장 신임할 수 있는 곳을 구세군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곳에 가보니 수영, 농구, 치유센터 등 많은 시설이 있더군요. 목적에 맞게 시설을 세우기는 하였으나 문제는 그것을 운영하려니 적자 운영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미국 구세군에서는 그 적자를 충당하면서도 즐거워하더군요. 이런 정신이 신뢰의 원천이지 않을까요. ”



Q 구세군은 복지 사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만 현실 문제에 대한 참여 의식이 부족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각에서는 교세가 적은 성공회에 비해 구세군의 위상을 키우지 못한 이유를 그것으로 들기도 하던데요.



“한때는 KNCC 등을 통해 현실 문제에 대해 강한 어필을 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러지 않고 있어요. 예를 들어 지난해 ‘사학 파동’의 경우 당시 KNCC에서는 머리를 깎고 삭발하면서까지 반대에 앞장선 교파도 있었어요. 그때는 오히려 한기총에서 앞장서기도 했고요. 하지만 우리는 ‘시시비비’의 입장이었죠. 사학 문제에 있어서도 잘못된 것이 부분적으로 있다면 그것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또 그것을 고치고자 무조건 개악을 하는 것 역시 마땅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합리적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종교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Q 일반인에게 구세군의 상징은 냄비 모금함인데, 올해의 모금액 추이는 어떻습니까.



“모금 기간이 불과 24~25일밖에 안 되지만, 이 모금은 천재지변이나 기타 어려움을 겪은 많은 이웃에 큰 도움이 되지요. 그래서인지 올해 경제위기 속에서도 기부액이 30% 정도 늘었습니다. IMF 때도 그랬는데, 오히려 어려울 때도 줄지 않은 셈이지요. 보이지 않는 곳에 온기를 보태려는 우리 국민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촛불처럼 밝혀진 것이죠. 감동적인 일이에요. ”



(자선냄비 행사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빈민과 러키 해안에 배가 좌초해 생긴 1000명의 난민이 살아가는 참상을 보고 구세군과 조셉 맥피 경위가 오클랜드 부두에 큰 솥을 내건 다음 ‘우리 다같이 이 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쓴 데서 출발했다. 지금은 107개국에서 종소리가 울리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28년 12월 25일 서울 명동 거리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Q 그러고 보니 자선냄비가 등장한 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 요즘의 자선냄비가 과거에 비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시대에 따라 자선냄비의 성향도 달라지죠. 내가 젊을 때만 해도 거리에 서 있으면 춥고 눈 내리는 날 모금이 늘어났어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추우면 빨리 지나가려고 줄어들지요. 지금은 날씨가 좋아야 모금도 잘 돼요. 또 예나 지금이나 어린 아이들이 많아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 아이의 고사리손으로 직접 모금함에 넣게 하거든요. 베푸는 사랑을 직접 느끼게 하려는 것이지요. 몇 년 전부터는 기업이 큰 액수를 기부하기도 하고요. ”



Q 신자들은 자신의 헌금과 자선 등으로 거둔 돈을 교회보다 사회봉사 쪽으로 과도한 지출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까.



“일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구세군의 정신에 동의한 신자들이니 당연하게 생각하죠. 지금도 우리 구세군의 모든 교회에는 병설 시설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어느 곳에 있건 지역사회를 위한 작은 일을 의무적으로 한 가지 이상씩 해야 합니다. 작게는 공부방이라도 해야 하지요. 이것은 우리의 전통입니다. ”



Q 구세군이 선교 100주년을 맞았는데 비신앙인이 종교인에 대해 가지는 아쉬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지금도 교회가 복지나 사회활동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더 해야 하죠. 구세군은 ‘최소 절반 이상은 영혼에 대한 구원만큼이나 사회적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꼭 우리 구세군이 아니더라도 기성 종교가 그 점에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지 않나 합니다. ”



(구세군은 개신교의 여러 교단 중 하나다. 그런데 이 특정 교단이 80년째 거리에서 공개적인 자선모금을 하고 있다. 대개 이만하면 한 번쯤 누군가가 모금액의 사용처나 회계의 투명성 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시비를 걸 만도 한데 구세군의 모금에 대해서는 일절 그런 말이 없다. 과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단순히 구세군 본부에서 모금액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관리를 해왔기 때문일까. 이번 인터뷰에 그 해답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마치며



오늘도 교회의 첨탑은 곧 하늘에 닿을 만큼 점점 더 높이 치솟고 있지만, 영혼의 안식을 얻지 못해 거리를 헤매는 어린 양들은 점점 늘고만 있다. 인터뷰를 마친 저녁 북악스카이웨이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붉은 십자가들의 대열, 그 위로 구세군의 배지에 새겨진 ‘S’(Salvation·구원)라는 글자가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려는 수퍼맨의 S처럼 어렴풋이 겹쳐지며 진정한 구원의 길을 묻는 어린 양들의 마음을 시리게 한다.



박경철 donodonsu@naver.com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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