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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윤문식“마당놀이판 첩은 둬도 더블 캐스팅은 안 되지”

그가 주로 맡는 배역은 방자 혹은 문지기다. 너무 친근한 이미지라 사진만큼은 근사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찍자고 했다. 빨간색 줄무늬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쩜! 새신랑 같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그의 왈. “나도 얼릉 새 장가 가야 하는디, 그 싸∼가지 없는 자식놈이 먼저 간다고 설쳐.” 겉을 변신시켜도 뼛속 깊게 새겨진 ‘코믹 유전자’는 어쩔 수 없는 법. 윤문식(65)씨는 그랬다. 언제나 입담 구수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서민적 풍모를 지켜온 그가 올해로 데뷔 40년째다. 떠들썩하게 알려도 될 일이지만 “죽을 날 얼마 안 남았다고 동네 자랑할 일 있어”라고 말한다. 의미를 찾아 보려 쿡쿡 찔렀지만 그와의 인터뷰는 그 자체가 만담이요, 시트콤이었다.
28년간 마당놀이에 빠짐없이 출연해 부부로 오해 받기도 하는 김성녀(윗 사진左)·윤문식 커플. [극단 미추 제공]


#“겸손하게 생겨 감사하다”

그는 충남 서산 출신이다. “나랑 딱이재. 그래봬도 내가 서산 홍보대사여.” 그가 살던 마을엔 TV는커녕 라디오가 한 대 있었다. 가끔씩 순회공연 오는 여성 국극이 최고 볼거리였다.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가 봤어. 그걸 나와서 못 본 아줌니들에게 그대로 흉내냈지. 다들 내가 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들 했어.” 소년시절부터 끼가 다분했나 보다. “배우가 안 됐으면 아마 무당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어려서도 남사당패가 오면 내가 더 신나서 뛰어 다녔응께.”

서산 농림고를 다녔다. 가을철 수확기가 되면 학교에 축제가 열렸다. 그는 소희극을 했다. 그냥 원래 있던 희곡을 갖다 쓴 게 아니었다. 학생들이 실습시간에 재배한 고구마 등을 교사들이 몰래 빼돌리는 것을 절묘하게 풍자했다. 학생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를 본 교장 선생님이 그를 따로 불렀다. “넌 배우 자질이 충분하니, 서울로 올라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라.” 그 얘기를 접한 홀어머니의 반응. “이눔아, 배우는 아랑 드롱, 그레고리 펙, 신성일 같은 사람이 하는 겨. 니가 배우를 해? 동네 개들이 웃겠다.”

그도 욱하는 성질이 있었다. 하고 싶은 걸 막자 가출을 했다. 동두천 미군 부대에서 구두를 닦아 돈을 모으고 연기학원을 다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냈다. 경쟁률 17 대 1.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가니 줄이 길었다. “진짜로 기막히게 생긴 연놈들만 왔더라고. ‘안 되겠다’ 싶어 발길을 돌리려는데, 딱 나처럼 생긴 두 명이 눈에 들어오는거야. 그게 박인환·최주봉이야.”

그의 계속된 설명. “따지고 봐봐. 그 무렵 연극 전공한 무리 중에 아직까지 활동하는 건 나랑 그 두 놈들뿐이라고. 미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잖아. 겸손하게 생긴 덕분에 티내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거지.”

#고민하고 묵혀 관객을 붙잡다

1969년 극단 가교의 ‘미련한 팔자대감’이 데뷔작이다. 전국 70여 개 군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다. “그때부터 이미 마당놀이 할 운명이었던 거지.” 이후 조역만 맡던 그가 데뷔 16년 만에 처음 타이틀롤을 맡게 됐다. 바로 ‘플란다스의 개’에서 개를 연기한 것. “한여름에 밍크털을 뒤집어 쓰고 2시간을 개처럼 기어다녔어. 갓 결혼한 마누라가 처음 보러 와선 창피했는지 ‘당장 그만두고 복덕방이나 해’라며 얼마나 쏘아대던지.”

방송 등에선 감초로만 나오지만 그는 마당놀이 분야에선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 불릴 만큼 잔뼈가 굵었다. 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오는 20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텐트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심청’까지, 28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왔다. 2800여 회 공연도 모두 출연했다. “연극 삼청교육대지. 이쪽 사람들 지독혀. 낮에 링겔 꽂고 저녁에 공연하는 게 허다해. 우리끼린 ‘첩은 둬도 더블 캐스팅은 안돼’라고들 말해.”

그는 유독 성적 농담을 많이 했다. “성적 비유만큼 사람들 귀에 쏙 박히는 게 없어. 겉으론 폼잡아도 속으론 관심이 많고 이해하기 쉽다는 거지. 난 연극하면서 관객 전혀 무시하고 자뻑에 취한 놈들이 가장 한심해. 왜 여자도 성감대를 건드려야 자빠뜨릴 수 있잖아. 관객도 가려운 데를 긁을 줄 알아야지, 가르치려고 들면 안돼.”

그의 아내는 지난달 세상을 떠났다. 당뇨 등으로 쓰러져 무려 15년이나 병원에 있었다. “막상 떠나고 나니 마누라가 하늘에서 보는 것 같아 나쁜 짓 더 못하겠더라고.” 처음으로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연극평론가 구히서씨는 윤씨를 가리켜 “셰익스피어 연극을 해도 윤씨가 나오면 한국 사람이 쓴 것으로 오해할 만큼 오묘한 색깔을 낸다”고 평했다. 윤씨는 차가 없다. “그 시간에 버스 타고 다니면서 생각하는 게 더 나아”라고 말한다.

“뉴튼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게 사과 떨어지고 9년 뒤라잖아. 모든 게 공짜가 없어. 평상시에 늘 그 생각을 붙잡고 묵혀야 뭔가 나오는 거라고.” 배우보단 광대로 불려지고 싶다는 윤씨의 생명력은 어쩌면 이런 보이지 않는 일상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윤문식과 마당놀이=1981년 “서양의 몸짓을 흉내 내지 말고 한국적 놀이를 부활하자”고 연출가 손진책, 배우 김성녀·김종엽 등과 의기투합한 것이 마당놀이의 시작이었다. 첫 작품 ‘허생전’에서 윤씨는 산적 두목의 조역이었으나 대본을 100% 따르지 않고 관객의 반응을 살펴 곧바로 무대화시키는 현장성으로 인기를 끌자 두 번째 작품부터 주역으로 발탁됐다. 출범 무렵 마당놀이는 일종의 해방구였다. 판이 벌어진 서울 문화체육관은 문전성시였고,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줄을 서서 표를 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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