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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모든 정부가 모든 부문에 참견 나설까 봐 걱정”

만난 사람 = 김영희 대기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박사가 건국 60주년 기념 세계 지도자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했다. 그는 지금 한국에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 정서의 분출보다는 국내외적으로 신뢰를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대표적 지식인의 한 사람인 그는 지금의 금융위기에 관해서도 정치경제학의 입장에서 통찰력 깊은 글을 쓰고 있다. 포럼이 열리고 있는 신라호텔에서 그를 만나 금융위기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견해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미국의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右)가 3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김영희 중앙일보 국제전문대기자와 대담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이번 금융 위기의 주범으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꼽히는데 일반인의 도덕적 해이와 경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는 공범 아닙니까.

“금융위기의 궁극적 원인은 정부의 붕괴입니다. 복잡한 붕괴의 뒷면에 숨어 있는 기본적 요인을 보면 아이디어의 붕괴라는 게 있어요. 레이건 시대 이후 미국 정치는 시장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집착했어요. 그건 정보기술(IT)이나 노동시장 같은 부문에선 맞는 말이지만 금융 부문에선 달라요.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속았거나 틀렸죠. 복잡한 파생상품 시장은 정부의 통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위기가 불황과 호황을 반복하는 경제의 순환 중 불황의 하나인가요, 아니면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건가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고 봅니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휩쓸고 간 1997년이나 2001년의 불황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서 시작해 세계를 30년 동안 지배해 온 시장 중심적인 아이디어가 이제 종말을 고하고 좀 더 진보주의적인 세계 질서가 도래한 거죠. 적어도 미국 정치에선 확실히 그래요. 권력의 추가 확실히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다고 봅니다.”

-레이건이나 대처 식 시장경제에 대한 케인스주의의 반란이라는 성격은 없습니까.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 방향의 과잉수정(overcorrecting)의 위험도 경계해야 해요. 지금의 현실에서 진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문제는 금융 부문에 있어요. 역사적으로도 금융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전체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례를 자주 봐 왔어요. 하지만 자유주의 경제의 다른 측면들은 아직 제 가치를 충분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전 세계의 모든 정부가 모든 부문에 참견하겠다고 나서는 일이 생길까 걱정입니다. 모든 부문에서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갈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해요.”

-이번 금융위기의 후폭풍으로 신브레턴우즈 체제의 등장과 함께 사회문화적·문명사적, 혹은 도덕적 혁명이 일어나진 않을까요.

“맞습니다. 미국의 경우 절약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청교도 윤리가 중요한 것이었는데 지난 십여 년간 이것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소비하고 미리 끌어다 써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년간 미국인의 가구 저축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죠. 이번 사태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한국인도 다른 아시아 국가처럼 과거에는 열심히 저축하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그동안 미국화가 진행돼 버렸어요. ”

-이번 사태가 국제사회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추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봅니까. 미국은 유럽연합(EU)·브릭스(BRICs)·러시아 등과 다극 체제를 형성하게 됩니까.

“미국의 영향력은 이미 추락했습니다. 과거 20년간 미국은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시장 경제를 세계에 확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미국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외교에서 부시 행정부 이후 미국이 자유의 수호자라는 신뢰를 잃었는데 거기에 경제적 리더십의 추락까지 겹친 건 큰 불행입니다.”

-10월 13일자 뉴스위크 칼럼에서 레이거노믹스와 자유 민주주의라는 ‘미국 브랜드’의 두 축이 금융위기로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무엇이 그것들을 대신할 걸로 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지금 세계의 특성은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등 소위 말하는 네오 리버럴(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세계 지도자들이 꽤 있죠.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진지한 미국의 대안으로 받아들이진 않아요. 가장 가능성 있는 것이 중국 정도인데, 중국의 부흥은 러시아나 이란처럼 에너지 가격 상승 한 가지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경제 현대화와 기술개발 등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모델은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복제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중국도 그렇게 믿진 않고요. 앞으로 수년간 레이건 모델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고 많은 아이디어가 백가쟁명을 벌일 것입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여러 측면에서, 사회·문화적으로 볼 때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의 인물이라고 생각되는데 오바마 현상, 오바마 신드롬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 질문의 전제에 동의하지 못하겠군요. 공화당이 그동안 오바마는 ‘우리’와 다르고, ‘보통’ 미국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캠페인을 펼쳐 왔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현재 대부분의 미국인은 다양한 인종적 구성으로 이뤄진 대도시에서 자랍니다. 조그만 시골 도시에 사는 기독교를 믿는 백인은 자신이 진정한 미국인이라고 믿을진 몰라도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오바마는 진정한 미국의 현재 모습을 더 잘 대변하고 있는 후보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제 딸은 예일대학에 다닙니다. 예일 같은 미국의 엘리트 대학 학생의 20~30%는 유색인종입니다. TV를 봐도 경제학자나 사상가, 평론가들을 보세요. 백인이 주류가 아닙니다. 미국을 이끌어 가는 주력 세력이 달라졌다는 얘기입니다. ”

-그런 측면에서 오바마가 당선된다면 이를 미국의 사회적·문화적 혁명에 비교해도 될까요.

“네, 그렇게 봅니다. 달라진 미국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가 지금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고요. 이번 선거에선 젊은이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도 참고할 만 합니다. 젊은이들의 투표율이 이전 대선 때보다 훨씬 높아질 겁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미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바마가 당선되면 중도우파적인 정책을 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전망하는데 동의합니까.

“대다수 유럽 국가보다는 미국이 아무래도 사회적인 이유로 보수적이죠. 하지만 사상의 추는 왔다갔다 합니다. 1920년대 공화당이 미국을 장악하다가 뉴딜정책으로 유명한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 전체가 약간은 왼쪽으로 갔다고 봐야죠. 그 후 50년 동안 미국 사회를 민주당이 지배하다 70년대 후반 이후 다시 사회가 보수화 돼 공화당이 30년간을 지배해 왔죠.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다시 반대 쪽으로 사상의 추가 움직일 수도 있는 겁니다.”

-미국 유권자에게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뭡니까.

“지금은 경제 위기가 거의 100%라고 봐야죠. 외교 정책이 둘째로 전락했지만 세계는 복잡하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의 앞에 놓인 도전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후쿠야마 박사를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까.

“네오콘과는 몇 년 전에 결별했습니다. 이라크전을 지지하는 그들의 방식이 경솔하고 분별없다고 생각해서요. 네오콘은 긍정적 유산과 과거를 망각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세계를 바꾸려 했어요. ”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이라크를 포기합니까.

“이라크의 누리 알말리키 정부가 미군의 주둔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단계적으로 철군하고, 이라크는 이라크인의 손에 맡길 겁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100% 철군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바마가 되면 매케인보다는 철군 속도가 더 빨라지겠죠.”

-부시는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이식해 평화를 실현하려는 ‘민주 평화’에 실패했는데 오바마는 자본주의 경제의 이식을 통한 ‘경제 평화’의 정책을 쓸까요.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민주 평화의 정책이라는 전제에 동의할 수 없어요. 부시는 민주주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량살상무기(WMD)를 없애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어요. 대량살상무기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나중에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합리화한 거죠. 경제적 평화보다는 좋아하지 않는 나라들도 국가적 실체를 인정을 해주고, 대화와 포용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네오콘은 싫어하는 국가들을 고립시키고 그들과 상대하지 않으면 냉전 시대처럼 이들이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되질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외교 정책은 실패한 것이 됐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요.

“북한의 지금 정권 아래서는 비관적입니다. 북한 사회는 총체적으로 붕괴됐어요. 근대화는커녕 국민을 먹이기도 힘듭니다.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카드가 핵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를 매우 성공적으로 이용했죠. 북한이 빈곤에서 탈출하고, 외자 유치를 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북한의 현 정권은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핵에 대한 원칙뿐만 아니라 외부 세계에 대한 대응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데 아직 그런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 같지 않아요.”

-딕 체니를 비롯한 네오콘이 현재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치고 있나요.

“북핵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란과의 간접 협상을 하고 있고, 팔레스타인과 대화를 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적어도 최근 4년 동안의 영향력은 과거보다 크게 줄었다고 봅니다. 네오콘은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이란과 전쟁을 벌이고 싶어하지만 이것도 물 건너 갔습니다. 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 이라크전 때보다 현저히 후퇴했다고 봐야 겠지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최지영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프랜시스 후쿠야마(56)=일본계 3세로 현재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교수다. 코넬대(고전학)와 예일대(비교문학)를 졸업했으며,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2년 “이데올로기 대결의 역사는 자유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한 『역사의 종언』을 발표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힘의 외교를 주장하는 미국의 네오콘(신보수파)에게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라크전을 전후해 네오콘과 결별했다. 2006년 출간한 『기로에 선 미국』에서는 “네오콘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과도한 군사적 수단을 동원했다”고 비판했다. 최근에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96년 자신의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그는 아시아 주요 국가 가운데 한국을 중국과 함께 ‘저신뢰 국가’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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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