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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安保理외교 진두지휘 박수길 유엔대사

요즘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할머니배우」 줄리 앤드루스가 화제다.환갑의 나이로 뮤지컬『빅터.빅토리아』에서 20대역의 주연을맡아 젊은 배우들 뺨치는 정력적인 연기를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뉴욕에는 그녀 못지않은 또 한명의 사람이 있다 .한국의 박수길(朴銖吉)유엔대사.원래도 「극성」으로 소문났지만 한국이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되면서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제네바 대사일 때는 눈치 안보고 『쌀 수입개방 불가피성』을 처음 터뜨려옷을 벗어야 할뻔 했던 장본인.이젠 우리의 유엔안보리 외교를 진두지휘하는 야전군 사령관 자리를 맡았다.휘하의 외교관들은 죽을 맛이다.각오는 했으나 朴대사가 시키는 시집살이는 정말 고달프다.시도 때도 없이 회의를 소집해가며 들볶는다.그래도 분위기는 흥분돼있다.처음 해 보는 안보리 이사국 행세가 오히려 고달픔을 압도하고 있는 모양이다.유엔 외교가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한국이 처음 비상임이사국이 됐으니 거수기 노릇이나 할 신출내기로 치부했는데 의외로 자기 목소리를 내며 딱딱거린다는 것이다.

AFP통신은 한때 미국 팝계를 휩쓸었던 10대 보컬 그룹인 「뉴 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별명을 붙이기까지 했다.한국의 유엔외교가 안보리 참여를 계기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朴대사를 통해 알아보자.

만난사람=이장규 뉴욕 특파원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처럼 공관원들을 들볶으면 어쩝니까.

『언제 우리가 안보리라는 것을 해봤어야지요.공관원들에게 미안하게는 생각하지만 경험이 쌓일 때까지는 당분간 모두가 몸으로 때우면서 대처해나갈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지난해 가을부터인원도 늘리고 열심히 준비해오지 않았습니까.

『아이고,턱도 없는 이야기예요.막상 유엔 안보리라는 곳을 들어가보니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골치아픈 곳이더라구요.적당히 강대국들의 눈치나 보면서 2년 임기를 때우려면 몰라도 명실공히 안보리 이사국다운 목소리를 내려면 정말 치 밀한 준비와원숙한 외교능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너무긴장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긴장이 안될 수 있습니까.안보리가 시작되는 날이 닥쳐오니 정말 잠이 안 옵디다.엉뚱하게도 며칠동안 야뇨증이 계속되는 바람에 병원신세까지 졌지요.

그러나 막상 회의가 시작되면서 정신없이 돌아가니까 저절로 낫더라구요.아플 겨를도 없습니다.』 -안보리 때문에 직원들은 잠이 모자랄 지경이라는데 朴대사는 괜찮으신가요.

『나야 원래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니까 잠은 문제가 안됩니다.

보통 오전1시쯤 잠자리에 들어 5시면 일어나니까요.그러나 하루종일 회의에 시달리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래도 맨해튼의 새벽거리를 누비는 아침 조깅은 여전하겠지요. 『그게 안됩니다.전날밤 직원들이 준비한 각종 보고서와자료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아침 출근 전밖에 없어요.안보리 회의에 대리 출석을 시킬 수도 없고 결국 내가 직접 예상문제를시험공부하듯 예습해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겨날 수가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고생은 돼도 안보리 이사국이 된 이후로 유엔 안에서 한국외교관들의 주가가 많이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물론이지요.나 스스로도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분쟁당사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국 대사나 외무장관과의 양자회담은하루에도 대여섯번씩 열리기 일쑵니다.대부분 저쪽에서 만나달라는것이지요.또 만나보면 잘 봐달라는 부탁이 대부 분이에요.』 -안보리 회의장에 비상임이사국으로 처음 참석했을 때의 소감은….

『솔직히 말해 격세지감에 가슴이 저렸습니다.불과 5년전만 해도 유엔가입을 못해 본회의장에조차 못들어 가는 신세였는데 지금은 유엔의 아랫목 차지인 안보리 회의장에 당당히 앉게 됐으니 말입니다.』 -회의장에 직접 앉아보니 안보리가 정말 국제평화와안전에 관한 문제들을 놓고 실제로 격론을 벌이는 자리이던가요.

『밖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직접 겪어보니 훨씬 더 심각하더라구요.강대국끼리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과 유엔 사무총장 사이의 감정적인 충돌까지도 그대로 노출되는 유일한 현장이 바로 안보리 회의장입니다.

TV로 중계되는 공식회의는 요식절차에 불과합니다.문을 닫아 걸고 비공개로 거의 날마다 열리는 협의회에서 모든 각본이 다 쓰여지니까요.』(지난 1월상순 뉴욕일대에 50년만의 폭설이 내려 유엔 전체가 문을 닫았는데도 유독 안보리의 비공식 협의회는예정대로 열렸다.회의장은 15개 이사국 외에는 일절 출입금지다.심지어 분쟁당사국의 외무장관들을 불러 증언을 청취할 때도 외부인 출입금지 전통 때문에 안보리 대사들이 아예 다른 방으로 옮겨 이들의 증언을 듣는다) -비상임이사국 입장에서 아무리 기를 써 봤자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들이 좌지우지하는 곳이 안보리 아니겠습니까.

『중국대사왈 「안보리 의결과정에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불평을 가끔 합니다.자기네는 상임이사국인데도 불구하고 감쪽같이따돌림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지요.

얼마전 멕시코대사가 해준 말도 재미있어요.「멕시코는 60년대비상임이사국을 딱 한번 했는데 그 이후로는 결코 안보리에 안들어가는 것이 기본 외교 정책방향」이라는 겁니다.강대국의 압력에시달리느니 차라리 안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였습니 다.그러니 한국의 입장도 쉬울리 있겠습니까.』 -너무 나서거나 주장이 강하면미국같은 큰 나라가 싫어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우렵니다.대부분의 경우 미국과 보조를 맞추어 왔고 또 그래야 우리의 국익에도 부합되니까 크게 문제될 건 없습니다.그러나 이해가 상치되는 데도 불구하고 미국을 무작정 따라갈순없는 것 아닙니까.

그동안은 직접 부닥치지 않고 피해올 수 있었으나 이젠 안보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앉았으니 적당히 넘어갈 수도 없게 됐습니다.리비아 제재문제만 해도 미국의 입장은 강경일변도지만 리비아와의 경제관계를 감안하면 우리 나름의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동맹권과의 협조관계도 상당히 달라졌다면서요.

『그렇습니다.안보리 안에는 칠레.인도네시아.이집트 등이 주도하는 별도의 비동맹협의회라는 비공식 모임이 있는데 이들과 어떤관계를 유지하느냐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긴밀한 관계를 유지키로 방향을 정했는데 현재까지는 성과가 매우 좋은 편입니다.그들도 자기네 모임에 한국이 참석하는 것을 대환영하구요.물론 큰 나라들이 좋아할 일은 아니지요.어려운 줄다리기입니다.』 -이제 안보리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 파악됐을 터인데 한국 입장으로서는 무엇이 가장 절실한 문제라고 보십니까. 『세계의 골치아픈 일만 모조리 안보리에 상정되는 만큼강대국끼리의 파워 싸움은 사사건건 불꽃을 튀깁니다.이 틈새에서한국이 그런대로 입지를 마련해나가려면 무엇보다 정확한 정보력이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물론 안보리 터줏대감인 상임이사국들의 안보리를 운영하는 오랜노하우(비결)와 경험을 따라갈 수는 없지요.그러나 한국 나름의귀와 눈이 있어야 사안에 따라 순발력 있게 대처하고 말발도 설게 아닙니까.』 -어떻게 정보를 수집합니까.

『서울 외무부의 안보리 전담반은 물론이고 공관마다 안보리 담당이 있어 필요한 정보를 즉각 받아볼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지요.아마도 안보리 때문에 각 공관들도 전보다 일이 무척 많아졌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유엔대표부만 아니라 한국의 전체 외교관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나가야 비로소 안보리에서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는이야기도 됩니다.』 -요즘 안보리의 현안은 무엇입니까.

『복잡한 일거리가 하도 많아 관련되는 나라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이라크 제재문제를 비롯해 옛 유고사태,유엔군 파병문제로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일촉즉발의 부룬디와 동슬로베니아 사태,그루지야 내분,크로아티아 인권문 제,무바라크이집트 대통령 암살기도 사건등 20가지에 가까운 현안이 뒤얽혀돌아갑니다.』 -그 중 한국의 발언이 구체적으로 먹혀든 경우도있습니까.

『앙골라 사태에 대해 기존 합의사항을 촉구하는 의장 공식서한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한국 주장을 그대로 반영시켰어요.공병대 2백여명을 파견하고 있는만큼 정치적인 촉구에만 그칠게 아니라 지뢰제거작업을 선결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장,적극적 인 호응을 받았지요.』 -안보리에 진출해 남의 나라 문제 해결에만 에너지를 쏟아부을 순 없는 것 아닙니까.비상임이사국 2년을 활용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는 방안은 없겠습니까.

『우선 안보리에 진출한 자체가 상당한 전쟁억지력을 행사한다고믿습니다.안보리 이사국이 외부로부터 침공당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그러나 한국으로서는 안보리 외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한반도평화인 만큼 보다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나가야 지요.그런 뜻에서 상징적 차원에서라도 안보리 회의를 유엔본부를 떠나 서울에서개최하는 방안도 추진해볼까 합니다.전에도 키프로스 등지에서 안보리 회의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경기는 마라톤인데 1백 달리기처럼 계속 전력질주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지요.경험도 없는데다 처음이니 모두 비상체제로 대응하는 것입니다.이제 대충 감을 잡아가니 좀 나아지겠지요.그러나 안보리 이사국이 된 이상 이전같은 대응으로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안보리 담당직원들은 언제든지 달려나올 수 있도록 유엔본부 근처에 집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오후6시가 다 돼서야회견이 끝났는데 朴대사는 곧바로 보좌관을 불러 회의소집을 지시했다.안보리의 내일 회의 참석에 관한 대책회의다.회의가 끝날 때쯤 되면 아침시간의 서울과 입을 맞춰야 하고 그런 다음에는 또 만찬 약속이 기다리고 있다.안보리 이사국이 된 나라의 유엔대사는 우선 건강하지 못하면 엄두도 못낼 자리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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