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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7·7 선언과 민족 공동체 통일

20년 전 오늘, 정확히 1988년 7월 7일 발표된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바로 그 ‘7·7 선언’은 냉전의 막이 내리는 세계사의 획기적인 변화와 이에 순응하여 새로운 남북관계를 찾으려는 우리의 노력을 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통일로 향했던 그때의 희망과 흥분은 맥없이 사그라졌으며 불투명해진 남북관계의 앞날에 대한 걱정만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시계(視界)가 흐려질 때일수록 조급하게 활로를 찾으려 헤매기보다 과거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며 행진의 연속성과 그 방향의 타당성에 대해 숙고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7·7 선언이 나오던 88년 여름은 곧이어 열릴 88 올림픽 때문에도 평화와 화해에 대한 기대로 부풀고 있었다. 전 세계가 참여하는 화해 마당의 잔치에서 주인공이 된 한국인은 직선된 대통령과 여소야대의 국회로 상징되는 민주화의 성공으로 한껏 높아진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기에 민족통일로 향한 새로운 노력을 전개해야겠다는 국민적 합의 조성은 당연한 결과였다.



자주·평화·민주·복지의 원칙에 입각하여 남북 간의 상호 교류·개방·협조, 특히 교차승인을 전제한 국제사회에서의 협조를 제시한 7·7 선언은 곧바로 새 통일 방안을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국회에서 여야가 함께 통일특위를 중심으로 국민의 의견을 수렴, 89년 9월 발표된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은 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7000만 동포가 참여하는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려는 남북 공동작업의 청사진이었다. 곧이어 남북 기본합의서가 91년 말 채택되었고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을 하지 아니하고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함으로써 우리 민족은 물론 국제사회에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큰 기대를 안겨주었다.



90년대 초 냉전 종료에 발맞추어 이렇듯 긍정적으로 출발했던 남북관계 개선과 민족 공동체 건설로 향한 드라마가 채 2년도 가기 전에 긴장과 불신의 어두운 터널로 되돌아가 오늘에 이른 경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지금에 와서 어느 한쪽의 책임을 따져보는 부질없는 수순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북한의 두 가지 불행한 선택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공산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와 개방정책을 실험하는 선택을 한사코 회피했다. 둘째, 북한은 체제의 안전을 담보하는 가장 효과적 방법으로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결정했다. 이러한 북한의 폐쇄성과 모험성으로 아직도 분단된 한반도는 세계사의 예외 지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 몇 주일 영변 원자로 냉각탑의 폭파를 포함해 북한이 택한 일련의 결정은 단순히 6자회담의 재개뿐 아니라 남북관계의 시곗바늘을 혹시 20년 전으로 되돌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未練)을 갖게 한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개방과 비핵화를 결심해 남북이 함께 한반도를 세계사의 중심 무대로 끌고 갈 수 있다면 민족의 장래를 위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북한의 통미봉남 정책이 개방과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북·미 간의 국교 정상화를 이루려 한다면 바로 20년 전 완결됐어야 할 교차승인이 실현되는 것으로 우리는 이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남북관계에 대한 의연한 자세와 국민적 합의를 견지하려면 지난 20년간의 대한민국 통일정책 기조는 연속성과 일관성을 꾸준히 지켜왔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미 지적한 대로 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은 광범위한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것이며 이를 토대로 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은 민족에 대한 엄숙한 약속이었다. 국민의정부에서 추진한 햇볕정책도 북한 측이 긴장을 풀고 유연성을 발휘하도록 유도하려는 방법론이고, 이를 통해 실현하려는 목표는 어디까지나 국민이 합의한 민족 공동체 건설을 통한 7000만 동포의 기본권과 복지의 확보며, 통일의 달성이라 볼 수 있다. 역대 정권이 북측과 합의한 구체적 사안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많았지만 북한의 개방과 비핵화를 통한 상호협력 체제를 만들어 가겠다는 목표나 방법에는 국민적 분열보다 합의가 우세했다. 분열로 보이는 사안이나 경우가 있었다면 그것은 정치적 이념이나 이해관계가 통일 논의나 정책을 오염시킨 결과로서 좌우의 양 극단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국민은 통일정책과 방향에 대한 폭넓은 합의를 지켜온 셈이다. 우리에겐 동포가 처한 극심한 어려움에 즉각적인 이웃돕기로 공동체의 의무를 이행하는 무언의 합의가 이뤄져 왔다.



새 정부라고 꼭 새 통일정책을 입안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햇볕정책, 남북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뒤늦게나마 이행하는 실천 전략을 조용히 가다듬는 데 주력하기 바란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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