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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소련은 일제때부터 김일성을 키웠다”

1946년 8월 28일 북조선공산당과 신민당이 합당한 북조선노동당 창당대회 주석단. 오른쪽부터 레베데프 소련군정 정치사령관 소장, 김두봉 신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김일성 북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박정애 북조선여성동맹위원장, 발라사노프 소련군정 정치고문.
평양주둔 소련군정의 지시에 따라 1945년 10월부터 러시아어를 제1외국어로 지정해 가르치는 북한의 학교<上>. 1951년 10월 숙청되기 직전에 가족과 함께 한 박헌영 북한 부수상 겸 외무상. 그는 비서였던 윤례나와 49년 8월에 재혼했다.
비록 - 평양의 소련군정
김국후 지음, 한울,
400쪽, 2만2000원

북한정권 수립 60년을 맞아 그 탄생의 비밀을 파헤친 책이다. 최근 들어 해방 직후 북한 정치사에 대한 연구가 극히 부진했기에 매우 반갑다. 한국현대사 연구의 ‘르네상스 시대’였던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이후 이 분야 연구 성과는 가뭄에 콩 날 정도였다. 이 책 출판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북한 정치사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길 기대한다.

이 책은 92년 저자와 중앙일보 여러 기자들이 쓴 『비록-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상·하)의 후속편 격이다. 저자는 해방 직후 평양 주둔 소련군정의 정치장교, 구소련 망명 북한군·정 고위 인사 등의 증언과 구 소련의 국방성 문서 등을 토대로 당시의 역동적인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발품을 많이 팔아 쓴 책이기에 눈에 띄는 자료와 새로운 증언들도 많다. 전편이 출간된 지 1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 책은 앞선 작업에 견줄만한 탄탄한 기록과 증언으로 읽는 이에게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이 책은 소련의 ‘한반도 민주기지’ 설치 계획과 제88특별정찰여단의 실체, 김일성에 대한 스탈린의 관심, 소련군의 평양 입성 과정에서의 일본군 무장 해제, 해방 초기 김일성과 박헌영의 관계, 박헌영 대신 김일성을 선택한 소련의 의중, 조만식 선생의 최후, 춘원 이광수 등 남북인사들의 최후, 소련군의 감시를 받은 연안계 김두봉, 제2차 남북 지도자 연석회의 등 새롭고도 흥미로운 많은 비화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것은 88여단의 성격과 관련, 장래 해방 조선의 지도자로 김일성에 대한 소련의 관심이 1942년부터 있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김일성이 소속된 빨치산부대가 88여단으로 흡수된 직후부터 그가 소련군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치·군사 지도자로 양성됐다고 보고 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일성은 철저하게 소련에 의해 주조된 지도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당시 88여단은 만주에서 활동하던 중국과 조선인 빨치산 부대원들에게 소련이 제공한 피난처의 성격이 컸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점에서 향후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에 대한 박헌영의 인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흥미롭다. 저자는 대체로 두 사람 사이가 미묘한 정적 관계였다는 기존의 인식을 깨고 있다. 박헌영이 1946년 3월 26일 UP통신 기자에게 전했다는 발언은 “김일성이 민족의 영웅이며,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창설될 때, 대통령으로 내세우면 지지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방 직후 김일성과 박헌영이라는 공산당의 거두들이 어떤 관계에 있었는 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많은 비화들은 또 다른 각도에서 학문적 논쟁의 확산과 사실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북한 정치사의 역사적 진실의 영역에 대한 탐구가 끝나지 않았으며, 지속돼야 한다는 중대한 과제를 던져주는 것이기도 하다. 남북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는 오늘, 새로운 해방전후사 연구에 대한 촉매제로 이 책이 기여하길 기대한다.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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