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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강1만리>12.중국연극의 귀족 곤극

강소성(江蘇省)남경(南京)시 곤극원 객석은 7월의 불볕더위를 깔고 앉아 무대를 응시했다.무대위에서는 석소매(石小梅)와 호금방(胡錦芳),두 여배우가 열연중이다.여도사(女道士)와 서생의 사련(邪戀)을 그린 『옥잠기(玉蠶記)』중 「금도(琴 挑:거문고로 마음을 떠보다)」대목.

소매끝이 올라가며 섬섬옥수가 드러난다.무심한듯 살짝 구부려 치켜든 손가락 하나.임을 향한 일편단심이 담겨있다.소쩍새 울음같은 노래가 이어진다.애절한 사랑가다.곧이어 으레 숨을 끊는 절규를 기대하던 객석엔 실망감뿐이다.극은 끝내 지 독하리만큼 철저한 절제속에서 마감된다.눈물을 자극하는 절규나 과장된 몸짓은 없다.있다면 「누에가 실을 토해내듯 부드러운 절규」와 완벽히 정련(精鍊)된 동작과 소리뿐이다.이 동작과 소리는 하나의 선율이 되어 끝없이 이어진다.마치 객석 에 한점의 쉼표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듯이.

제1부 중국문화의 원형을 찾아서

「어떤 동작도 춤이 아닌 것이 없고(無動不舞),어떤 소리도 노래가 아닌 것이 없다(無聲不歌)」는 곤극(崑劇).그 명성 그대로다. 『한마디로 곤극은 중국고전극의 집대성입니다.300여 지방전통극이 대부분 곤극의 영향을 받았고 청나라 중엽에 생긴 경극의 뿌리도 곤극입니다.』 강소성 곤극원의 전임원장이자 탐사단을 위해 공연을 안배해준 호기(胡忌)교수의 말이다.胡교수는 20대에 『송금잡극고(宋金雜劇考)』를 저술해 학계를 놀라게 했고 그후 『곤극발전사』를 내놓아 곤극사의 태두로 불리는 대학자.문화혁명때 흑 룡강성(黑龍江省)으로 하방(下放)돼 돼지를 치면서도 남몰래 곤극의 창을 흥얼거릴 정도로 연극에 푹빠져 「희미(戱迷:연극에 미친 사람)」라 불리기도 했다.

『곤극은 단순한 광대놀음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있습니다.경극을능가하는 중국 제일의 무대예술이죠.』 곤극은 강소성 곤산(崑山.지금의 蘇州)의 가락에서 비롯됐다.부드럽고 우아한 강남노래의특징을 고스란히 지닌 곤산가락은 16세기 중엽 북방의 전통음악마저 흡수해 세련미를 더한다.이 가락을 사용한 곤극은 명.청(明.淸)■에 크게 유행 했다.

탐사팀의 주공평(周鞏平.상해희극연구소)교수는 『곤극은 양자강주변의 넉넉한 자연환경에서 발달한 다양한 예술중 음악.문학.무대예술이 어우러진 것』이라며 그 특징으로 『남.북방가락의 완벽한 조화』를 들었다.

공연이 이루어진 강소성곤극원은 중국 곤극의 대표적 극단.중국최고의 배우에게 주어지는 매화장(梅花奬) 역대 수상자 21명중6명이 이 극단 출신이다.성진삼(成進森)원장은 『청나라말기의 원로배우들로부터 이어져온 걸출한 연기력이 자랑 거리』라고 귀띔했다. 오후8시에 시작한 공연은 두시간이 넘게 진행됐다.옴니버스식으로 짜여진 이날 공연의 첫 작품은 『당마(당馬)』.송나라장군과 여걸의 힘겨루기 얘기다.구르기.넘기.뛰기.차기등 같은 무술동작이라도 다른 전통극처럼 화려하거나 박진감 넘치 는 모습은 아니다.오히려 발레동작을 연상케 하는 깔끔하고 세련된 움직임이다.전통 무술극도 곤극에서는 이미 완벽히 춤으로 녹아들었음을 알게 한다.

두번째는 『십오관(十五貫)』중의 「아서를 찾아 점을 봐주다(訪鼠測字)」는 대목.매화장 수상자인 황소우(黃小牛)와 임계범(林繼汎)의 콤비 코믹연기가 압권이다.점쟁이로 변장한 판관이 유도신문을 통해 범죄사실을 밝혀낸다는 이 전형적인 명판관과 멍청이 살인범 얘기는 특히 50년대 곤극부흥의 선도적 역할을 했다. 다음은 이날 공연의 백미 『옥잠기』의 한대목 「금도」.절제와 조화란 곤극의 특성을 극대화한 레퍼토리다.여주인공의 신분이도관(道觀)에서 수도중인 여도사라 보통 여인역보다 더한 감정절제가 요구되고 따라서 두 남녀의 사랑표현도 극히 제한된다.고도의 상징과 함축만이 관객에게 호소하는 유일한 출구인 셈이다.매화장 수상자로 지난 93년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는 석소매.호금방의 연기는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중 국 연극의 「귀족」으로 불리는 곤극엔 서툰 감상이나눈길을 끌기위한 기교따위는 아예 끼어들 자리가 없다.그 자리를고아한 선율과 함축된 동작이 대신한다.

명.청대 사대부와 귀족들이 곤극의 창과 연기에 매료돼 앞다퉈작품을 쓰고 심지어 직접 화장을 하고 출연까지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귀족과 사대부들의 애호는 곤극의 성격을 보다 품위있고 세련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이처럼 민중 의 가락에서 시작해 사대부에 의해 꽃을 피우고 노소귀천없이 즐기는 예술장르가 됐다는 점에서 곤극은 「넉넉함」으로 대변되는 양자강문화의 전형적 모습을 가졌다.

그러나 최근의 곤극은 대부분의 지방전통극이 그렇듯이 생존 자체에 위기를 맞고있다.하룻밤 자고나면 두배로 늘었다는 가라오케가 판치는 오늘의 중국 현실에서 느리고 우미한 가락의 곤극은 아무래도 속도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입맛과는 동떨어 져 있기 때문이다. 성진삼원장은 말한다.

『화려한 기예도,반짝이는 웃음도 곤극엔 없다.젊은 관객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우리에겐 믿음이 있다.그것은 민족의 가락을 두르고 전통의 몸짓으로 옷을 입은 예술은 민족과 함께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믿음이다.』 ▧ 다음은 「무릉도원도의 고향-장가계(張家界)」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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