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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던 바다가 솟구쳐 사람 삼켜”

4일 보령 죽도에 너울성 파도가 덮칠 당시 갓바위 부근의 모습이 인근 횟집에 설치된 CCTV에 촬영됐다. 너울이 일기 직전 카페 난간 아래쪽 바닷가에 낚시꾼들(왼쪽 사진 점선 안)의 모습이 조그맣게 보인다. 잠시 후 덮친 큰 파도에 바닷가에 있던 사람들이 휩쓸려 사라졌다. (오른쪽 사진) [보령=연합뉴스]
“5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덮치다니….”

충남 보령시 죽도 선착장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고명래(67)씨는 “느닷없이 천둥과 벼락이 치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4일 낮 죽도에서 너울성 파도 사고가 날 당시에는 연휴를 맞아 나들이에 나선 낚시꾼과 관광객이 평소보다 많았다. 주민 김기덕(45)씨는 “잔잔하던 바다에서 TV에서나 보던 거대한 파도가 일더니 낚시꾼과 관광객들을 삼켜버렸다”며 “파도가 친 뒤 10분 정도 지나자 평상시처럼 잔잔해졌다”고 설명했다. 파도에 휩쓸렸다가 구조된 김혜곤(32·충남 천안시)씨는 “선착장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바다로 휩쓸려갔다”며 “피할 틈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다”고 말했다.

◇사전 예보 없어 큰 피해=피해자들은 미처 대피할 기상특보나, 미리 준비할 징후가 전혀 없었던 탓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보령 앞바다에 평소보다 높은 파도가 예상된다는 예보를 내렸으나 특보는 발표되지 않았다. 실제로 파고는 1m 이하로 낮았으며, 바람도 초속 3~4m로 세지 않았다.

이로 인해 죽도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던 낚시꾼들은 특별한 징후조차 예측하지 못한 채 변을 당했다. 조승원 보령시 재난안전과장은 “죽도는 썰물에도 물이 빠지지 않아 평소에도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너울성 파도가 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전지방기상청 관계자는 “사고 당시 보령 지역에 높은 파도를 일으킬 만큼 바람이 강하게 불지 않았고, 만약 바람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았다면 파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파도가 높았던 원인들을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실종·부상자 수 오락가락=4일 밤 12시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모두 9명. 하지만 실종·부상자 수는 관련 기관의 집계가 서로 달라 정확한 인명 피해규모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태안해경은 보령시 죽도 해안가를 덮친 큰 파도로 9명이 사망했으며, 중상 2명을 포함한 14명이 구조돼 모두 23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다. 하지만 충남도 재해대책본부는 사망 9명, 부상 27명으로 파악했으며, 보령시청에서는 사고 초기 49명이 파도에 휩쓸렸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 죽도 방파제와 선착장에 몇 명의 관광객과 낚시꾼이 있었는지 정확한 파악이 어려운 데다 목격자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행이 한꺼번에 실종됐거나 혼자 관광 또는 낚시를 하다 실종된 사람의 경우는 파악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태안해경과 충남도 재해대책본부는 실종자가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야간에도 수색작업을 계속했다. 해경은 실종자 수색에 경비정 21척과 순찰정 3척, 민간 구조선 7척, 잠수부를 동원했다.

◇‘어버이날’ 초청받고 갔다 변 당해=너울 사고로 남편 박종호(36)씨와 아들 성우(5)군을 한꺼번에 잃은 강모(32·여)씨는 보령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정신을 잃었다. 강씨는 “우리 남편, 아들 좀 살려주세요”라고 오열해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박씨 부자의 시신은 이날 오후 9시쯤 대전의 한 장례식장으로 운구됐다. 박씨 부자는 휴일을 맞아 죽도로 여행을 왔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최성길(63)씨 부인 오모(58)씨는 남편과 동생 이육재(46)씨를 동시에 잃은 슬픔에 넋이 나간 듯 아산병원 안치실 바닥에 주저앉아 “우리 남편 어디 갔어, 남편 좀 불러주세요”라고 통곡했다. 최씨는 “어제 가족들이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고 오늘은 바닷가에서 생선을 잡아 회를 떠먹자고 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흐느꼈다. 최씨는 어버이날을 맞아 ‘놀러 오라’는 딸의 초청을 받고 아내, 처남과 함께 3일 보령에 온 뒤 이날 처남과 죽도로 낚시를 갔다 변을 당했다.

충북 청주에서 부부동반 모임으로 보령을 찾았다가 남편 김경환(44·청주시 공무원)씨를 잃은 오모(41)씨는 병원 입구에서 “안돼, 안돼”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남편 이름을 불렀다. 사고 전날 아버지·큰아버지·고모부와 보령에 왔다 사고를 당한 박주혁(15)군의 어머니는 구조대원들이 아들의 시신을 바다에서 건져내자 오열했다.


보령=신진호 기자

◇보령 죽도=원래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던 섬이었으나 간척농지 개발을 위해 보령시 신흑동과 남포면 월전리를 잇는 총연장 3.7㎞의 남포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보령 8경’의 하나로 지정 관리될 정도로 경관이 빼어나다. 총면적 0.6㎢에 현재 4가구에 1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사망자 명단(9명)

▶박종호(36·충남 연기군 금남면 용포리)▶박성우(5·박종호씨의 아들)▶김경환(44·충북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추창렬(45·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추승빈(9·서울시 성북구 길음2동, 추창렬씨의 조카)▶최성길(63·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죽림리) ▶이육재(46·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빈암리, 최성길씨의 처남)▶박선규(48·경기도 수원시)▶박주혁(16·경기도 수원시, 박선규씨의 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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