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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한국현대사>37.金佐鎭장군 암살 밝혀지는 배후

새로운 증언과 자료들이 발굴되면서 청산리전투를 지휘했던 백야(白冶)김좌진(金佐鎭)장군의 암살전모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최근에는 암살의 배후보다 암살의 동기 내지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특히 김좌진장군이『일제와 결탁,변절했기 때문에 암살』됐다는 증언과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김좌진장군이 암살당한 것은 1930년 1월24일 하얼빈 중동로(中東路)산시참(山市站)근처에 있는 집앞이었다.범인은 현장에서 잡히지 않았다.
한족총연합회(위원장 김좌진)사회장으로 치러진 김좌진장군 장례식에서 암살범은 고려공산청년회의 일원이며 재중(在中)한인청년동맹원 박상실(朴相實)이라고 발표됐다.朴은 약 1년전부터 김좌진이 운영하던 정미소에서 일하던 인물이었다.이날 낭 독된「고김좌진장군선생약력(故金佐鎭先生略歷)」은 김좌진의 동료들이 대부분 모인 자리에서 발표된 것이기 때문에 당시 주변인물들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이 기록에도 암살배후에 대해서는언급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김좌진 장례식때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이강훈(李康勳.前광복회장)은『암살의 하수인은 박상실』이라며 배후인물로 김봉환(金鳳煥)을 지목했다.한족총연합회에서 활동했던 정화암(鄭華岩)도 김봉환을 배후로 지목했다.김봉환은 김일성(金 一星)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적이 있어 한때 북한의 김일성(金日成)이 김좌진 암살범이란 설이 나돌기도 했다.그러나 김봉환이 북한의 김일성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최근 중국측 자료와 증언이 공개되면서 박상실의 실체가 확인돼암살의 배후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김좌진을 암살한 사람은『조선공산당 아성(阿城)총국에서 파견한 무장공작대원 공도진(公道珍)』이라는 것이 중국학계의 대체적인 결론이다.
1930년초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 선전부장이었던 양환준(梁煥俊)의 증언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공도진이 김좌진을 암살했다.공도진은 나와 함께 자란 친구다.나는 그가 김좌진을 암살했다는 사실을 당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책임비서 김 백파(金伯波)와 1931년초 당사자인 공도진을 만났을 때 직접 들었다.』김좌진 암살범이 공도진이라면 그와 박상실은 어떤 관계인가.김동화(金東和.연변대)교수는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한다.박영석(朴永錫.건국대)교수도 박상실과 공도진을 동일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면 암살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공도진은 누구인가.아마공도진이라고 하면 잘 모르겠지만 이복림(李福林)하면 중국 조선족의 항일투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일지 모른다.공도진은 1930년대에 주로 이복림이라는 이 름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그는 1928년부터 조선공산당 청년동맹에서 활동했고,김좌진 암살 후에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해 중공당아성현위 서기(中共黨阿城縣委 書記)로 활동했다.그는 한국에서는 김좌진 암살범으로 지탄의 대상이지만 중국에서는 항일열사의 반열에 올라있다. 박상실과 이복림이 동일인물이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암살의 배후도 드러났다.20년대 후반 만주지역에는 화요파,서울.상해파,ML파등 3파의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서로 대립했다.박상실은 화요파 소속이었다.즉 화요파 만주총국(책임비서 김백 파)의 지시로 김좌진 암살이 실행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는 문제가 남아 있다.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김좌진장군 암살을 지시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가장 쉬운 대답은 민족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의 대립과 갈등이 김좌진장군의 암살을 불러왔다는 것이다.정화암은『공산당은 해림(海林)을 근거로 한 한족총연합회가 공산당의 활동과 사상 전파에 많은 지장을 주는 데다 아 예 기반마저굳혀가자 겁을 먹고 한족총연합회의 우두머리인 김좌진을 죽이기로결정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박창욱(朴昌昱.연변대)교수는『김좌진이 반공산주의적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이전까지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자고 주장했고 북만주에서 명망있는 민족독립운동가 김좌진에 대한 처단을 엄중한 문제없이 경솔하게 내릴 수는 없다』는 반론 을 제기했다.
朴교수가 얘기한「엄중한 문제」가 바로 최근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김좌진의 변절여부」다.중국학계 일부에서는 몇년전부터 김좌진이 일제와 결탁해 변절했기 때문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의 암살결정은 정당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
양환준은『김좌진이 공산당인들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일제경찰에제공해 주고 그 대가로 활동대금을 받았기 때문에 암살했다』고 증언했다.ML파 공산당 조직에서 활동했던 지희겸(池喜謙.前 연변대교수)도『김좌진이 하얼빈 일본영사관 경찰부장 마쓰시마와 밀담후 공산당원을 많이 죽였으니 만약 화요파에서 죽이지 않았더라면 우리 ML파에서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증언은 김좌진 암살 당시 공산당측에서는 계파와 관계없이 김좌진이 일제와 내통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좌진장군이 일제와 내통했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임이 명백하다.현재 20년대 중반이후 김좌진장군 관련 자료가 가장 많이 소장돼 있는 곳은 중국 헤이룽장(黑龍江)省「당안관」이다.여기에 소장돼 있는 김좌진과 신민부(新民府)자료들 을 검토한 전정혁(全正革.遼寧省新賓滿族自治縣文化館)은『김좌진장군이 일제와 협력해 민족을 반역했다는 증거자료는 없다.오히려 일제가중국군벌들에 압력을 행사하면서까지 김좌진을 잡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가를 보여주는 자료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김좌진이 일제와 협력했다는 주장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독립운동史 汚點 그러면 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간부들은김좌진이 일제와 내통했다고 확신하게 되었는가.이와관련,『김좌진의 암살은 일본 하얼빈 영사관의 사주에 따라 일제의 밀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서재춘(徐在春)의 주장이 주목된다.그의 주장은 김좌 진장군의 연락병으로 활동했던 부친 서귀남(徐貴男)의 회고에 기초한 것이다.이강훈도『김봉환이 하얼빈 영사관 경찰에 매수돼 암살을 지시했다』고 비슷한 증언을 했다.김봉환이 김좌진암살 직전 하얼빈 일본영사관에 체포됐다 석방됐고,후에 완전 히변절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암살 당시 일제의 밀정이었다는 확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그러나 김좌진 주변인물들은 일제의 모략에 의해 김좌진 암살이 이루어졌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증언과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김좌진 암살은 일제경찰과 결탁한 김봉환이 상부조직에『김좌진이 일제에 매수돼 공산당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보고했고,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김좌진암살을 결정.지시했음을 추측가능케한다.
항일독립운동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사건중 하나였던 김좌진 암살은 민족주의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의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일제에 의해 조작된 거짓 정보에 공산당 조직이 속아넘어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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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