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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한국현대사>33<김일성명령서>3.

북한의 6.25 남침전쟁 계획과정에서 당시 북한정권의 민족보위상이던 최용건(崔庸健)이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전쟁자체를 반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물론 아직까지 여기에 대해 권위있게 증명해주는 결정적 1차자료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용건이 전쟁기간에 민족보위상직을 그대로 유지했던 점,일제시기 김일성(金日成)과 최용건의 밀접한 관계등을 고려해 볼 때 전쟁기간에 최용건이 최고지도부내의 결정과정에서 소외돼 있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에서 망명한 인사들에 따르면 최용건이 전쟁개전에 신중론을제기하고,미국의 개입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몇몇 자료들에 따르면 1950년 초에 김일성이 소집한 북한정권의 수뇌부회의에서 최용건은 신중론을 제시했다.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해 들어오면 큰 어려움이 닥칠 것이므로 이 점에 대한 결론을 내린뒤 남침계획을 다시 토론하자고 발언했다 는 것이다.
이러한 신중론에 대해 김일성은 크게 화를 내면서 『민족 보위상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겁이 많아서야 어디에 쓰겠느냐』고 면박을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증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하더라도 한국전쟁개전을 논의하는 북한 최고수뇌부회의의 분위기 정도는 반영한다고볼 수 있다.
그러나 최용건이 개전에 대해 신중론을 개진했다고 해서,또는 김일성의 비판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최고수뇌부에서 배제됐다고 보는 것은 확대 해석이다.최용건은 개전이 결정되자 곧 김일성의노선에 동조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유엔군이 인 천에 상륙하자김일성이 북으로 후퇴하면서 최용건을 후방방어총사령관으로 임명한사실을 주목해야 한다.죽느냐,사는냐의 절대절명의 시기에 방어전선의 최고간부로 최용건을 임명했다는 것은 김일성이 그를 얼마나신뢰하고 있는가에 대한 뚜렷한 증거다.
한국전 개전결정때 북한최고지도부내의 갈등이 단순히 전쟁에 대해 동의한 상태에서 방법론적인 대립이었는지,아니면 전쟁 자체에대한 반대.찬성 차원의 대립이었는지가 분명하게 구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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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