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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한국현대사><스티코프비망록>2.

9월총파업과 10월폭동을 두달 앞둔 1946년 7월 남북 좌익세력의 새로운 판짜기가 시작됐다.북에서는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합당해 북조선노동당(북로당)을,남에서는 조선공산당.조선인민당.남조선신민당등 좌익3당이 합당해 남조선노 동당(남로당)을 결성하는 작업이 추진된 것이다.북에서는 공산당이 유일집권당으로 등장해 사회주의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였고,남에서는 흩어져 있던 좌익세력들을 통합해 구심점을 형성한 후 美군정과 본격투쟁에 나서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 었다.
그러나 북로당의 결성은 蘇군정의 후원을 받아 8월 말 순조롭게 완성됐지만,美군정의 탄압과 3당간의 이해관계가 얽힌 남로당결성은 예정보다 3개월이나 늦게 이루어졌다.그만큼 좌익 3당합당을 통해 남로당이 결성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 을 겪어야 했다. 3당합당이 지연되자 蘇군정 최고지도부와 북로당은 합당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직접 남쪽 정치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이번에 발굴한『스티코프비망록』은 이러한 상황을 세세한 부분까지 보여준다.3당합당 과정에 蘇군정이 직접 개입했음이 문서로 처음 밝혀진 것이다.남쪽에서 3당합당은 박헌영(朴憲永)이 비밀리에 평양과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46년 7월12일 서울로 돌아온 직후 갑작스럽게 여운형(呂運亨)에게 좌익 3당 통합문제를 통보하면서 시작됐다.이 소식을 들은 여운 형도 7월말 북쪽의 진의파악을 위해 급거 평양을 방문했다.
8월 3일 인민당은 합당을 만장일치로 결정하고 공산당.신민당에 합당제안문을 발송했다.이에 공산당과 신민당이 즉시 합당교섭을 개시하자는 회답을 보내면서 3당합당이 구체화됐다.그러나 蘇군사령부.북로당의 지시에 따라 순조롭게 출발한 합 당작업은 잠재돼 있던 공산당내부의 갈등이 폭발함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반전(反轉)됐다.
8월5일 이정윤(李廷允).강진(姜進)등 反박헌영派 간부 6인이 합당을 하기전 당대회를 열고 지도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박헌영은 반대파를 제명.무기정권시켰다.이후 당대회 소집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면서 공산당은 완전히 두파로갈라졌다.
이렇게 되자 인민당과 신민당도 합당을 신중하게 추진하자는 의견이 대두돼 좌익3당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상태에 직면했다.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헌영은 9월4일 합당을 지지하는 세력만으로3당합당을 추진해 남로당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그 러나 인민당 당수 여운형과 신민당 당수 백남운(白南雲)등이 반발하자 3당합당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당황한 蘇군정의 움직임도 바빠졌다.『스티코프비망록』은 스티코프가 9월10일 북로당위원장 김두봉(金枓奉)을 호출해 남쪽의 3당합당문제 및 지원대책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사실을 보여준다.밀사를 파견해 남쪽의 정세를 파악한 사실도 드러 났다.
스티코프는『분파주의자들은 북조선의 압력과 관련하여 잠잠해졌다』고 기록했다.그러나 박헌영 반대파들은 9월총파업 진행중인 28일 당대회준비모임을 갖고 총파업반대와 당대회 소집을 주장했다.다른 당의 대표들도 평양의 소련군사령부를 직접 방문해 박헌영의 독선적 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비망록』은 남조선신민당 중앙위원 고찬보와 여운형의 평양방문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스티코프는 9월23일부터 30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여운형에게 각별히 신경을 썼다.여운형은 새로 만들어진 남로당의당수로 내정돼 있었다.스티코프가 여운형에게 북조선 지도자들과의회담을 허용하고 북조선이 그를 신뢰하고 있다고 말 할 것을 지시한 것은 여운형이 정치력을 발휘해 좌익정당 내부의 분열을 수습해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또 비망록은 신민당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합당에 비판적인 백남운을 물러나게 하고 합당에 적극적인 정노식(鄭魯湜)을 신민당위원장으로,무소속이며 박헌영 지지자였던 허헌(許憲)을 부위원장으로 추대하는 작업이 蘇군정과의 교감속에서 추진 되었음을 보여준다. 10월 7일 이그나치예프 대령은 합당사업이 道수준까지진척되었다고 보고했다.그러나 10월 16일 백남운.강진등 박헌영의 독주에 반대하는 세력이 남로당과는 별개로 사회노동당을 결성하면서 3당합당은 두 갈래로 추진되는 혼선을 빚게 된 다.좌익세력의 단결을 위해 추진된 3당합당이 분열의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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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