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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도씨탈출기>2.김정일 "平一이 私생활 조사하라"

김일성(金日成)은 살아 생전 김정일(金正日)보다 둘째 아들 김평일(金平一)을 더 귀여워했다.

평일이가 자신을 쏙 빼닮은 것은 물론 아버지로서 부성애(父性愛)를 느껴볼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일성 총애 시샘 여성추문 보고

김정일은 1942년 2월16일 소련땅 하바로프스크 근처에서 태어났다.이때는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운동으로 한창 바쁜 시절이다. 또 해방후에도 김일성은 노동당 창건이다,6.25다 해서정일이를 돌볼 틈이 없었다.때문에 김정일은 15세가 될 때까지김일성의 외사촌 동생 강보비 손에서 성장했다.또 자신의 이복동생 김경진.김평일이 승용차 타고다닐때 김정일은 비닐 양말을 신고 걸어다니곤 했다.한마디로 김정일은 부모의 정을 제대로 못받고 「半고아」로 스산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이다.

반면 53년께 태어난 김평일은 여기저기 옮겨다니긴 했지만 줄곧 김일성-김성애(金聖愛)의 무릎위에서 재롱을 피우고 지냈다.

둘째 아들을 아낀 김일성은 일찍이 평일이를 가리켜 『우리 집안에 장군감 났다』고 말한 적도 있다.

또 김평일 자신도 『나는 무력으로 조국을 통일,아버지를 통일광장에 모시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특히 짚고 넘어갈 점은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金貞淑) 죽음에계모 김성애가 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는 것이다.

김정숙은 지난 49년 아이를 낳다가 하혈이 심해 죽은 것으로돼있다. 그러나 우리 집안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김정숙은죽을 병이 아니었다.

의사만 들이대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그러나 김정숙은 방 문고리를 부여잡고 의사를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김정숙은 김일성이 타자수 김성애와 은밀히 정을 통하고 있음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따라서 김성애로서는 김일성에 대해 이같은 행동을 통해 「김정숙이냐,나를 택할 것이냐」하고 죽기살기식 시위를 벌였다는 얘기가 친척들 사이에 파다했다.

그러나 기다리던 김일성은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리=崔源起기자〉 그러자 남편 마음이 이미 돌아섰음을 감지한 김정숙은 의사진료를 거부해 죽었다고 한다.결과적으로 김일성-김성애의 무분별한 애정행각이 김정숙을 죽음으로 몬 셈이다.

생모의 비극적 죽음의 전말을 알게 된 김정일은 김일성과 김성애에게 복잡한 감정을 갖게됐다.김일성에게는 존경과 미움이 뒤섞인 애증(愛憎)을,김성애에게는 맹렬한 증오를 품었다.이는 김정일이 단 한번도 계모에게 「어머니」라 부른 적이 없다는 사실만봐도 알 수있다.

김정일-김평일의 갈등은 평일이 76년 8.18 판문점 도끼사건을 계기로 호위총국에 입대하면서 내연되기 시작했다.당시 남북관계가 긴박하게 돌아가자 김평일은 김일성大 학우들을 이끌고 제일 먼저 궐기대회를 했다.이어 그는 김창하(김병하 국가보위부장아들).전위(전문섭 호위총국장 아들)등과 함께 호위총국 기계화대대에 자진 입대했다.남조선과의 전쟁 발발에 대비,결사대를 구성한 것이다.나중에 호위총국 작전부 부부장으로 대좌(대령)까지진급했다.

김평일은 직위가 올라가면서 점차 생활이 방종으로 흘렀다.자신을 쫓아다니던 김창하등과 함께 대성구역 소재 김병하 저택에 자주 모여 술을 마셨다.인민군 합주단 여자들을 끌어들여 노는 것은 물론 김일성 명함시계를 마구 뿌리고 다녔다.또 추종자들은 「김평일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된북한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다.한편 김정일은 김평일의 이같은 동태를 10호실을 통해 파악하고 있었다.78년세워진 10호실은 유일체제와 관련 된 북한내 모든 소문과 첩보를 수집.처리하는 특별 조직이다.

기회를 노리던 김정일은 호위사령부 정치위원 이동춘을 시켜 『김평일 자료를 묶으라』고 지시했다.만일 호위총국장이던 전문섭에게 과업을 맡길 경우 아들로 인해 조사가 제대로 안될 것을 간파한 것이다.

김평일의 일거수 일투족을 자세히 기록한 자료가 완성되자 김정일은 이 문건을 김일성에게 제시했다.김일성은 문건을 읽어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특히 협주단 여자들과 부화(연애)한 것과 「김평일 만세」를 부른 대목에 노발대발했다.『당장 철직(퇴직)시켜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김평일은 그 즉시 옷을 벗고 강제로 제대당했다.또 김평일이 소속된 호위사령부 간부들도 일제히 지방으로 전출됐다.다시는 간부로 등용하지 말라는 꼬리표가 달린 채…. 더이상 얼굴을 들고다닐 수 없게된 김평일은 결국 유학이란명목으로 동독(東獨)으로 쫓겨나다시피 나온이래 지금까지 줄곧 헝가리.불가리아등 해외에서 떠도는 신세가 됐다.황태자가 하루아침에 유랑객 신세가 된 것이다.단언하건대 현재 북한 군부에는 김평일을 지지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정리=崔源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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