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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친일파 홍사익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1946년 9월 26일 필리핀 교도소 교수대. 일본제국 남방군 총사령부 병참총감 홍사익(洪思翊.당시 57세)중장은 입회목사한테 성경의 시편 51편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으로 판결받았다.

홍사익이 자신의 죽음 앞에서 시편을 듣고자 한 것은 전쟁범죄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내면을 괴롭혔던 친일행위를 속죄하기 위해서였다. 홍사익에게 친일은 출생 때부터 지고 나온 원죄 같았다.

홍사익은 열여섯살 때 고종황제가 자주국방의 동량을 육성하기 위해 세웠던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 국권침탈 1년 전인 1909년, 일제에 의해 육군무관학교가 폐쇄됐다. 그는 고종의 명에 따라 일본 육군중앙유년학교(육사 예비학교)로 적을 옮긴다.

홍사익은 한국인 유학생의 리더였다. 나라가 무너지자 유학생들 중엔 당장 학교를 때려치우고 독립운동에 나서자는 사람들이 있었다. 홍사익은 "지금은 배울 것이 많으니 실무와 실전을 경험한 뒤 기회를 보아 일을 도모하자"는 실력양성론으로 의견을 한데 모았다. 육사 동기생 가운데 이청천도 있었다. 나중에 청산리대첩으로 유명해진 그는 3.1운동 뒤 만주로 탈출해 광복군 사령관이 됐다.

둘은 독립군과 일본군의 지휘부에 오른 뒤에도 비밀리에 교류했다. 홍사익은 월급을 쪼개 육사 출신 항일운동가들의 가족을 보살폈다. 하지만 독립군에 합류하라는 이청천의 제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사익은 지휘관으로 부임할 때마다 "나는 조선인 홍사익이다. 지금부터 천황폐하의 명령에 의해 지휘권을 행사한다"고 했다. 일본제국의 장성이었지만 창씨개명은 끝내 거부했다.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법에 따르면 홍사익은 그 지위 때문에 친일 반민족행위의 진상조사 대상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홍사익의 행위엔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노력도 있었다. 사람에게 죄인 딱지를 붙이는 일은 역사적으로 불가피한 경우가 있더라도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진상조사가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진행됐으면 좋겠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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