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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보물을 찾는 사람들

*** 8년간 찾고 또 찾고 … 재기 노리는 오세천씨

많이 지쳐 보였다. 게다가 경계심도 풀지 못하는 표정이다. 마치 '더 괴롭힐 게 남았느냐'는 그런 얼굴. 한눈에도 이런저런 풍파에 휩쓸리고 시달렸을 그의 '각진 인생'을 읽을 수 있다. 제대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특전사 출신임을 내놓고 자랑스러워하는 경기도 파주 태생의 오세천(36.사진)씨.

그런 그가 연고도 없는 남도의 끝 섬 진도까지 내려와 보물찾기에 매달린 것은 1997년부터다. 막 제대한 뒤 장사를 시작했지만 조직폭력배의 견제 때문에 빈손으로 나앉을 위기에 몰렸다.

"때마침 군대 동기가 '경호 사무실을 차려 보자'고 제안해 왔어요. 그래서 곧바로 서울에 사무실을 냈지요." 그가 보물과'인연'을 맺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다. 임원으로 영입한 사람이 '진도 보물'관련 정보를 가지고 온 것.

"보물 이야기를 듣는데 뭔가 주문처럼 나를 잡아당기더라고요."

처음 만난 취재진에 '황당한 인물'이란 인상을 줬다 싶었나 보다. 그는 "나는 현실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러고는 농고를 졸업한 뒤 입대 전까지 가족 부양에 매달렸던 얘기를 풀어낸다. 양계장을 거쳐 안산 공장에서 야근을 밥 먹듯 하며 기술을 배웠다는 이야기, 특전사에 가기 위해 매일 30km씩 달렸다는 이야기 등….

한 시간여가 지나서야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 양반은 '진도 인근의 죽도라는 섬에 일본군이 수탈해서 묻어놓은 보물이 있다. 찾으면 애국하는 일이다. 큰 돈 들어가면 내가 충당해 주겠다'고 말했죠."

그가 들은 보물은 누가 들어도 귀가 솔깃할 만큼 엄청난 양이다. 지름 8인치(20㎝) 탄피 스물 다섯개에 다이아몬드.사파이어 등 보석이 가득 차 있단다.

"군에서 익힌 (스킨 스쿠버) 기술만 투자하면 되니 밑질 거 없겠다 싶었죠."

오씨는 그 길로 3천만원을 들고 진도로 내려왔다고 했다. 와 보니 그보다 먼저 발굴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제가 박아놓았다는 쇠말뚝을 뽑는 일을 하던 소윤하씨도 그중 한명이다. 하지만 '물속을 잘 알지 못하는 탓'에 다이버 일당만 날리고 있었다고 오씨는 회상했다. 소씨와 손잡은 그는 "3개월 내에 찾아내겠다"며 직접 잠수해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물에 들어가 보니 심상찮았단다. 보물이 묻혀 있다는 장소 부근에서 탄피가 부식된 것으로 추정되는 녹물, 동굴을 막는 데 쓴 듯한 회벽 조각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물막이 공사를 위해 주변에 두른 인공 축대도 보였죠."

그러나 3개월 만에 발굴하기란 무리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잠수부들을 모아 독자적인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고 했다. 하루 8시간 이상 물속에서 유압 드릴로 돌을 깨는 강행군의 연속. 그러나 작업은 좀처럼 진행되지 않고 돈은 자꾸 새나갔다. 추가 자금 3억원을 빌리느라 담보로 잡힌 고향 집과 땅도 두 달여 만에 날아갔다. 결국 98년 12월 눈물을 머금고 작업을 중단했다. 속전속결 대신 장기전으로 작전을 바꿨다.

그는 정확한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죽도 보물 이야기를 처음 꺼낸 제보자를 찾아나섰다. 천신만고 끝에 매립 작업에 참여했다는 일본인으로부터 보물지도를 얻었다는 김모(경기도 과천시 거주) 여인을 만나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확신이 생기자 그는 본격적으로 돈을 대줄 투자자를 물색하고 다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이가 현재 정.관계 불법 로비 등으로 수감돼 있는 이용호씨라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 이씨가 큰 기업 사장인 줄 알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당시 이씨가 만든 회사인 삼애인더스사를 투자자로 끌어들이면서 보물 찾는 일은 별안간 '큰 사업'이 돼 버렸다. 4백여억원의 자금이 몰린 것. 그러나 삼애인더스 측은 막상 보물찾기 사업에 약속한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고 오씨는 주장했다.

"이용호씨는 처음부터 발굴 작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약속한 자금을 대라고 했더니 '보물이 있을 리가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결국 오씨는 전국을 들썩거리게 만든 '이용호 게이트'에 휘말려 특검에 불려다녔다며 치를 떨었다. 그는 불쑥 왼쪽 팔목을 내보였다. 날카로운 것으로 자해한 흔적. "그 땐 정말 아무 생각 없었어요. 차라리 죽고 싶었지요."

그렇게 발굴 실패에 따른 상실감 등 후유증으로 1년여를 거의 폐인처럼 지냈다고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지난해 2월. 보물이 묻힌 곳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 쉬미에 횟집을 차렸다. 보물이 묻힌 바다에서 직접 자연산 전복을 따 팔기 시작했다.

"이제 재물 욕심은 거의 비웠지요. 다만 내가 벌여놓은 일이니 내가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빚도 있고요."

그런 그의 관심은 이제 죽도의 보물만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 꿈은 더욱 커진 것 같다. 아직도 사람의 손이 미치지 못한 침몰선을 인양하고 외국처럼 보물을 찾는 작업 자체를 상품화하는 탐사 회사를 세우고 싶단다. 그런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작업한 자료들도 모아놨다.

"아들이랑 목욕탕에 가면 잠수훈련부터 시켜요. 누가 알아요. 대를 이어 그 녀석이 나의 꿈을 이뤄줄지. 아이들 환경 조사서에도 아버지 직업란에 '탐험가'라고 적으라고 하지요."

그의 말마따나 욕심은 조금 덜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8년간 쏟은 열정과 아쉬움은 여전히 진행형인 듯했다. "한 2억원만 있으면 다시 (발굴) 작업에 나설 수 있을 텐데…."

진도=표재용.김필규 기자


*** 국내 유일의 기업형 탐사가 백준흠씨


침몰선.보물 탐사 전문회사인 장보고살베지의 백준흠(47) 사장. 그는 국내에 한명뿐인 기업형 보물탐사 사업가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숨긴 보물을 찾아 현재 군산 앞바다와 제주도 등 11곳에서 탐사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보물 사냥꾼에 대한 그의 평가는 누구보다 부정적이다."보물 사냥꾼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진저리를 칠 정도다. "이 바닥에 발을 들여놓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자칭 보물 사냥꾼들에게 속아 수십억원을 날렸습니다. 일종의'인생 수업료'를 낸 셈이죠."

백사장은 원래 보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행글라이딩.패러글라이딩.열기구 등을 국내에 선보인 항공 레포츠 1세대다. 그가 고2 때이던 1975년, 과학 잡지에서 외국의 행글라이더 사진을 보고는 알루미늄 새시와 비닐로 직접 행글라이더를 만들어 서울 영동의 야트막한 산에서 뛰어내린 게 우리나라 행글라이더 비행 1호로 알려졌다.

그 뒤로 20년 넘게 항공 레포츠 전도사가 됐다. 행글라이딩.패러글라이딩 강좌를 열었고 기업.개인들의 후원을 받아 각종 국제 항공 레포츠 대회도 개최했다. 직접 한국에서 일본까지 열기구 비행을 했고, 1995년에는 열기구를 타고 고도 1만2천2백m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이처럼 하늘에서 살던 그가 어떤 연유로 바다와 땅속 보물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열기구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려는 꿈 때문이었죠. 70억원쯤 필요한데 그만한 돈을 만들 방법이 없더군요."

그러던 차에 2000년 말 막역한 친구에게서 "태평양전쟁 때 침몰한 일본 군함이 서해에 있다. 아는 사람이 찾았는데 보물이 들어 있다더라. 돈이 없어 발굴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잘 하면 세계일주 비용을 마련할 기회란 생각이 들었다고 백사장은 술회했다.

발견자 조모(46)씨를 직접 만났다. 이리저리 캐물어 보니 믿을 만하다는 판단이 섰다고 한다. 그래서 항공 레포츠 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스폰서들을 모아 수억원을 투자하고, 발굴회사 장보고살베지도 세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조모씨란 사람, 발굴은 하지 않고 고급차를 사는 등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녔습니다. 바다에서 금을 캐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육지 투자자에게서 돈을 긁는 사람이더군요. 지금은 사기 등으로 수감돼 있습니다."

사건에 연루돼 백사장도 수사기관 문턱을 여러 차례 넘어다녔다. 오죽하면 지금도"혹시 엉뚱하게 휘말려 중2로 올라가는 딸에게 못볼 꼴을 보여줄까 두렵다"고 할까. 사건 이후 '보물찾기에 투자하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져 여럿이 달려들었다.

"몇명에게 또 당했어요. 그 밖에도 별의별 인간군상을 다 봤죠. 그럴싸한 지도 한장을 얻으면, 보물을 독차지하기 위해 함께 일하던 사람끼리 서로 해코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지금은 보물 사냥꾼에게 투자하지 않고 백사장 스스로 탐사를 지휘한다. 우선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때 수상한 행적을 보인 지역은 없는지 역사 기록이나 현지 주민의 증언을 조사한다. 가능성이 보이면 지질학자와 탐사 장비를 동원해 지하에 인조 동굴이 있는지 찾기 시작한다.

현재 주력 탐사지인 제주도는 2001년 세상을 뜬 한 일본인이 지하 어딘가 숨겨진 보물을 10년 넘게 찾던 곳. 백사장은 그의 동서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조사를 하고 있다.

"보물찾기는 긴 승부입니다. 저 자신 3년 넘게 탐사를 했어도 아직 보물이 숨어 있을 것 같은 저장 동굴을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또 굴을 찾았다 해도 보물이 아니라 그저 병참 물자만 숨겨놓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금방이라도 보물이 나올 것처럼 떠들어대며 투자자를 모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으니…."

언젠가 보물이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우선은 열기구 세계 일주의 꿈을 이룰 참이다. 그러고도 한참 남을 만큼의 보물이 나온다면?

"글쎄…. 우선 제가 얼마나 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인지 가늠해 봐야겠지요. 주체 못할 정도로 돈에 욕심을 내다가 화를 당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많이 봐와서…."

제주=권혁주 기자


*** 보물 탐사는 과학 … 돈스코이호 찾는 유해수 박사

"우리는 보물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첨단 해양 과학을 하는 사람이죠."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된 러시아 전함 '돈스코이호' 탐사를 맡고 있는 한국해양연구원의 유해수(49.사진) 박사. 그는 "보물을 찾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있다"는 기자의 말을 그 자리에서 받아쳤다.

지난해 6월. 동아건설과 유해수 박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박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당시 러시아의 발틱함대가 전멸했으나 돈스코이호는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전투하다 5백여명을 울릉도에 하선시키고 수문을 열어 스스로 침몰했다. 침몰된 발틱함대 중에는 금괴를 실은 순양함 '나히모프'가 있었다. '나히모프'가 침몰하는 동안 러시아군은 최고 1백50조원에 달하는 금괴를 돈스코이호에 옮겨실었다는 것이다.

처음 보물선 찾기에 뛰어든 건 도진실업. 81년 해양연구소에 탐사 용역을 맡겼지만 기술 부족으로 실패했다. 유박사는 IMF가 시작되던 98년 돈스코이호 탐사 계획안을 냈다. 마침 연구원으로 첨단 해양 장비들이 들어온 시기였다. 유박사의 전공은 천연가스나 석유를 탐사하는 해양지질학이다. 보물선 탐사 기술도 이와 비슷하다고. 그러나 IMF 때라 국가에서 예산을 받지 못했다. 이때 동아건설이 7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2004년까지 돈스코이를 확인하고 인양 가능성에 대한 기술을 검토한다는 조건이다. 이후 '보물선'을 찾는다는 소문이 퍼져 파산 기업인 동아건설의 주가가 널뛰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6월 기자회견 전까지만 해도 "주가 조작을 하는 거냐, 보물을 빼돌린 건 아니냐"는 등 동아건설 소액 주주들에게 시달렸다고 한다. 탐사를 일찍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는 "왜 이렇게 일찍 퇴근하느냐"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있었죠. 그래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돈스코이호는 해양 학자들에게는 전설적인 존재거든요."

탐사 과정에는 과학기술이 총동원됐다. 침몰 지역에서 배가 얼마나 이동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해류계를 설치했다. '3차원 지형 탐사기' 등으로 지형을 파악하고 해저면에 음파를 쏘아 선체로 의심되는 물체를 찾아냈다. 금속성 여부를 확인하는 자력계, 무인 카메라, 무인 잠수정 등도 동원됐다. 마지막 확인은 유인 잠수정.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박이 발견된 위치는 수심 4백m. 조명을 비춰도 눈 앞 2m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암흑 천지다. 이렇게 촬영한 선체 일부분이 증거자료로 공개됐다. 동아건설에서 연구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해 추가 탐사는 일단 중단된 상태다. 돈스코이호가 소문대로 금괴를 싣고 있느냐는 질문에 유박사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스미르노프(smirnoff) 보드카가 상당량 있다는 건 전사 기록에 나오지만요." 만약 코르크 마개가 부식되지만 않았다면 1백년 묵은 보드카는 금괴 못지않은 가치가 있으리라는 거다.

"타이타닉에 금괴가 실려있었던 건 아니지만 영화를 찍어 엄청난 수익을 냈잖아요. 박물관을 만든다거나 제2의 타이타닉을 찍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에게는 돈스코이호를 탐사하는 일 자체가 '보물'이었다.

안산=이경희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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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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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