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양성희기자의헬로파워맨] CEO·가수·프로듀서 박진영



박진영(35)은 인생의 새로운 성공담을 만들어가고 있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저 좋아서 미친 듯 춤추고 일했다. 나의 벽은 오직 나, 남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출발은 그물 망사 옷에 노골적인 춤을 추는 섹슈얼리티의 상징. 1990년대 ‘몸 담론’의 복판에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문화산업의 기수로 변신했다. 월드스타 비와 최초의 국민 아이돌 그룹 지오디를 키워냈고, 미국 진출에도 성공했다. 윌 스미스 등 톱가수들에게 곡을 주며 메인 스트림에 합류한 것이다. 국내 활동도 병행했다. 그가 이끄는 JYP는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 양현석의 YG패밀리와 음악시장의 축이 됐다.

최근에는 전국을 ‘텔미’ 열풍에 빠뜨린 원더걸스의 제작자로 성가를 올리고 있다. 2001년 SBS 오디션 프로에서 그가 선발한 선예(당시 13세)가 주축이 된 소녀그룹이다. 게다가 6년 만의 7집 앨범 ‘백 투 스테이지’를 내놓았다. 35세 최고령 댄스가수다. 지난달 29일 그를 만난 곳은 서울 청담동 JYP 사무실. 회의실 벽에 JYP 정신을 설파하는 구호들이 붙어 있다. 홍보 담당자는 “‘스스로 리더가 되자’가 JYP 정신”이라고 소개했다. 인터뷰는 그의 음악처럼 파워풀했다. 달변에 자신감이 넘쳤다. 오직 자기 욕망과 꿈에 매진해 마침내 세상을 굴복시킨 ‘내멋족’ 젊은이의 당당한 성공담이 있었다.


백 투 스테이지 제작자·프로듀서로 성공한 이후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댄스가수로는 적잖은 나이. “전성기 느낌으로 춤출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힙합 댄스곡 ‘니가 사는 그집’ ‘KISS’에, 선예가 피처링한 발라드 ‘대낮에 한 이별’ 등을 선보였다.

“미국 진출을 시도한 지난 6년이 투영된, 30대의 타임캡슐 같은 앨범이다. 단 한 곡도 억지로 만든 게 아니라 그때그때 감정이 밀려와 쓰여진 곡들이라 더욱 소중하다.”

“나이먹는 데 거부감이 없다. 20대의 나보다 30대의 내가 더 좋고, 그래서 40대는 더 좋으리라 확신한다. 나이들수록 노래·작곡·정서 모든 것이 깊어진다. 단 춤은 예외다. 이번에 한 달간 10kg를 감량했는데, 20대 몸짱이 되려는 게 아니라 마르면서도 힘있는 댄서의 몸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춤추면서 절로 욕이 나왔다.”

춤과 몸“나는 무엇보다 춤꾼이다. 꼬마 때 엄마가 쌀을 씻으면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엄마는 그 모습이 귀여워 계속 쌀을 씻었고. 보통 춤이나 몸을 형이하학적인 것으로 치부하지만, 몸을 관리개발하는 게 정신을 관리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렵다.”

“나는 야한 게 좋다. 마광수 교수와 2~3년 차이로 사회적 운명이 엇갈렸다(웃음). 이성 간 긴장감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그 긴장감을 싸구려로 보지 않을 때 건강한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몸몸몸’ 해야 정신이 살찐다. 몸을 우습게 알면 정신이 썩는다.”

‘원더걸스’, 이미지의 승리"3집에서 터진 지오디나 비 정도를 예상했지, 이렇게 빨리 터질 줄은 몰랐다. ‘텔미’는 춤과 음악이 대중의 놀이가 된 경우다. 대선 로고송 요청을 거절한 것도 사람들이 너무도 신나게 즐기고 있는데 실망감을 안겨줄까봐서다. 약 3억원의 수익이라 CEO로서 포기하기 쉽지 않았다.”

“가수를 프러듀싱할 때 대중과 가까운 사람, 먼 사람으로 나눈다. 비·박진영·박지윤은 후자다.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음악이나 춤을 한다. 지오디·원더걸스는 전자다. 특히 원더걸스는, 노래는 물론 춤까지 대중이 따라할 수 있게, 친근하게 했다. 거기에 빠른 전파력은 이미지의 승리다. 빅뱅 음악이 우리만큼 터졌지만 사회적 사건이 못된 것은, 춤·패션·음악 등에서 덩어리로 느껴지는 이미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이나 춤을 만들기 전에 이미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 이미지는 춤·의상·헤어·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지독한 일관성을 추구할 때 완성된다.”

“지오디는 아무 맛 없지만 어느 순간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흰밥 이미지였다. 원더걸스는 아이들의 귀엽고 깜찍함에 1980년대 코드를 결합시켰다. 10대를 넘어 30~40대까지 먹히면서 대박난 근거다. 나만 해도 처음엔 야한 춤을 추는 이상한 놈 취급 받았지만 계속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우리 가수들은 내가 직접 곡을 만들고, 가르치고, 안무·패션까지 관여하니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다. 단 모든 걸 내가 한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스타 발굴"오디션 선발 기준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2초 안에 나를 사로잡아야 한다는 거다. 비는 강인함, 지오디는 평범함, 원더걸스 선예는 아이답지 않은 책임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런 매력과 성실한 자세가 재능보다 더 중요하다. 조기교육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없다. 선예는 원래 몸치였다. 초등생이 아닌 중학교 때 나를 만났더라면 안 됐을 거다.”

“연습생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원하는 것에는 반드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거다. 이런 삶의 기본 원리를 깨우치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비가 얼마나 지독한 연습광인지는 잘 알지 않나. 쉽게 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원래 잘하는데 안주하지 않고 계속 연습하니까. 또 연습생들은 반드시 학교를 제대로 다니게 한다.”

성공의 비결 "보통 사람들이 집중력있게 일하는 시간이 하루 5시간이라면 나는 16~17시간 일한다. 잠은 다섯 시간 이상 안 자고 식사에도 20분 이상 안쓴다. 그 나머지는 전부 꿈을 위한 시간이다. 부모님, 친구들, 여자친구에게 35살까지는 봐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술도 잘 안 마신다. 네트워킹 얘기를 하는데 그 시간에 자기 일 못하는 건 왜 생각않나. 자기 일 하다 보면 절로 쌓이는 게 네트워크다. 알고 보면 단순한 성공비결이다. 단 내 성공의 반 이상이 운이어서 나처럼 운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을 기운 빠지게 할까, 그 점은 조심스럽다.”

“91년부터 3년간 줄줄이 오디션에 떨어졌다. 이런 얼굴로는 가수가 절대 못된다고 했다. 돈 한 푼 안 받고 1년간 궂은 일을 한 기획사도 있었고, 이수만 사장님 오디션에서도 떨어졌다. 물론 이수만 형님은 요즘은 헷갈릴 때 자문하면 경쟁사 사장 맞나 싶을 정도로 컨설팅해 준다. 나를 너무 견제 안해서 놀랄 정도다.”

“내 꿈은 과연 내가 누군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아보는 거였다. 미국 진출도 시도 자체가 중요해서,성공하지 못했더라도 행복했을 거다. 아시아 작곡가 최초의 미국 진출이라는 첫 꿈은 이뤘고 내년엔 드디어 임정희·지솔·민, 세 가수를 미국 시장에 선보인다. 아시아 가수를 미국 시장에 성공시킨 최초의 프로듀서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 다음 2009년부터는 회사를 접고, 내 자리로 돌아간다. 죽을 때까지 노래하고 작곡하고 공연하면서 살 생각이다.”

“멋있을 때 떠나라고? 그건 자기만족보다 남의 시선 의식하는 사람들 얘기 아닌가? 자기 확신만 있다면 어떤 두려움도 없다. 예능프로에 많이 나가는데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가벼워진다고 생각안한다. 필요하면 ‘개콘’에도 나갈 수 있다. 요즘엔 ‘변태 고릴라 꺼져’ 같은 치명적 악플도 퍼니하게 즐긴다.”

글=양성희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캐리커처=이정권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