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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톨스토이, 성현들 만나다

청춘은 절망의 시기라고 합니다. 궁핍했던 젊은 날, 청계천의 쓸쓸한 뒷골목 목로주점이었을 겁니다. 아, 눈보라치는 저녁이었지요. 우리들은 표도르 샬리아핀의 비장미 넘치는 음색을 모창하여 '스텐카 라진'을 부르며 감격했었지요. 가난한 민중을 이끌고 눈내리는 볼가강을 쳐올라가는 혁명아 스텐카 라진. 그 즈음 우리는 푸슈킨,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를 넘어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인간 사고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끝없이 펼쳐진 설원의 자작나무숲을 달리는 심야의 붉은 화살호를 타고 톨스토이의 고향 야스나야 폴리냐로 가는 몽상을 하곤 했습니다. 빛바랜 톨스토이의 사진은 우리를 더욱 경건하게 만들었지요.

울창한 숲을 연상시키는 얼굴. 바람에 나부끼는 족장 같은 흰 수염은 뺨 위로까지 무성히 자라 입술을 감추고 거친 갈색 살갗을 뒤덮습니다. 곱슬곱슬 사방으로 물결치는 머리칼에서는 야성미가 물씬 풍겼지요. 우리들은 그의 머리칼에서 미켈란젤로의 '모세'와도 같은 물보라처럼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톨스토이는 1873년 '노트'에서 그가 사상가의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의 생애는 넷으로 나눠질 것이다. 시로 충만한 밝고 순수한 어린 시절. 세상의 모든 죄를 찾아 거칠게 타락해간 끔찍한 20년. 결혼해 정신의 부활에 이르는 18년. 마지막으로 속죄를 위해 살아 있는 지금. 이런 인생을 앞으로도 결코 바꿀 뜻은 없다."

톨스토이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나의 신조' '참회록' '나는 침묵할 수 없다' '무엇을 해야 하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에 이어 마침내 1904년 그 결정적 작업으로, 온 세계 '인류 지혜'를 결집시켜 1년 365일 하루에 한 사람씩 인류 최고 현자들과 만나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삶의 위대한 진리들을 사람들 가슴에 와 박히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필생의 저작 '인생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석가.공자.노자.그리스도.소크라테스.플라톤.루소.파스칼.칸트.에머슨.쇼펜하우어 등 2백여 성현들의 말을 톨스토이 자신의 사상으로 풀어 쓴 글입니다.

편집인 비류코프에 의하면 1판이 간행되었을 때 톨스토이는 아주 기뻐하며 말했답니다. "내 저술은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겠지만, 이 책은 사람들 기억에 남을 게 틀림없다"라고. 집을 나와 아스타포보 역에서 임종하는 순간 톨스토이는 갑자기 딸 타차냐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의 10월 28일 부분(톨스토이가 마지막으로 가출한 날)을 읽게 합니다. 그 일부는 이렇습니다. '고뇌는 활동에 박차를 가한다. 그리고 우리는 활동 속에서만 생명을 느낀다.'(칸트) '순한 환경에 길들여지면 안 된다. 그것은 순식간에 지나가므로 가진 자는 잃는 법을 배우고, 행복한 자는 고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실러)

톨스토이 인생의 대단원인 마지막 정거장, 조그만 시골역 아스타포보. 그가 임종 때 머리맡에 두었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제쳐두고 어찌 그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세상의 온갖 우울을 모두 잊었습니다. 이른바 '병도 슬픔도 탄식도 없이 끝없는 생명만 있는 나라'의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그곳에는 시간.공간.세상의 법칙을 초월한 법열과 열반만이 있었습니다. 필자는 국내 처음으로 러시아어 원전을 완역한 이 책을 감히 톨스토이의 말투를 흉내내 젊은이들에게 권합니다.

"바라건대, 젊은 여러분도 밤낮으로 끊이지 않는 이 삶의 샘물을 퍼올리며 우리들이 맛본 그 숭고하며 풍요로운 예지의 감정을 꼭 경험하기를!"

신상웅 (前중앙대예술대학원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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