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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경제학은 아직 유효하다”

21일 서울대 사회대 215호실.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유일한 마르크스 전공 전임교수인 김수행 교수가 22일 정년퇴임식을 앞두고 강의하고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카를 마르크스의 대표작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김수행(65)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2일 오후 5시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정년퇴임식을 한다. 제자들과 함께 만든 책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서울대출판부) 증정식도 함께 열린다. 정년퇴임식을 하루 앞둔 21일 그로부터 자신의 학문적 일생에 대한 감회와 마르크스 경제학의 미래 등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정년퇴임하는 서울대 김수행 교수
자본주의가 겪는 실업·양극화 해법 제시



서울대에 입학한 1961년부터 그가 반세기에 가깝도록 꿈꿔온 ‘새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자신의 일생에 대해 그는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며 “다만 내 후임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올지 여부가 정해지지 않아 맥이 끊길 상황에 처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좌파 쪽 사람들 중에 흔히 사회주의라는 완성된 설계도를 미리 그려놓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그런 연역적 사고를 하는 움직임에 반대한다고 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한 급격한 사회 재편 시도 역시 반대하며,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 특히 옛 소련이나 북한을 ‘새로운 사회’의 모델로 여기는 이들에 대해선 결단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앞으로 만들어갈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면서 좀 더 나은 ‘복지사회’가 만들어지길 희망했다.



 “한국에서의 마르크스 이론은 주로 옛 소련의 교과서를 통해 수입됐어요. 소련의 마르크스주의는 독단적이고 경제결정론적이어서 문제가 참 많았습니다. 70년대 영국에 유학해 공부할 때 이미 그곳에서는 소련 마르크스주의를 엉터리라고 규정하며 보지도 않았어요. 옛 소련 사회는 자본주의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공산당과 공장장이 지배하는 사회였는데, 인간해방이나 노동해방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북한의 개인 숭배와 독재도 ‘새로운 사회’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의 제자이자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의 공동 편자인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는 스승에 대해 “한국의 마르크스 경제학자로서는 가장 큰 행운을 누린 분”이라며 부러워했다.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국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나마 비교적 여건이 괜찮은 서울대에서 학문활동을 한 것이 ‘행운’이라는 의미다.



 김 교수가 서울대에 부임한 것은 89년.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아직 뜨겁던 시절이다. 당시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전임 교수로 채용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시위를 벌인 일이 계기가 됐다. 그에 앞서 변형윤·임종철·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윤환·조용범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경제사 등을 가르치며 마르크스 이론을 간접 소개하기도 했으나, 마르크스 전공자로서 마르크스 경제학이란 제목으로 본격 강의를 시작한 전임 교수는 그가 처음이다. 당시 그와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학위를 받고 귀국한 고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영호 한신대 대학원장과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서울대 강의엔 무려 1000명의 학생이 몰릴 정도로 인기였다.



 “1990년을 지나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이제 자본주의뿐이라는 생각이 확산되며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실업·빈부격차·양극화 등이 심해지니까 다시 관심이 회복되는 추세입니다.”



 올해 개설한 ‘현대 마르크스경제학’은 선택과목임에도 100명이 몰렸다. 89년과 비교하면 많이 줄었지만, 다른 교수들의 강좌와 전체 학생 수를 감안하면 많은 수치라고 한다.



 그는 대학 1년 때 마르크스를 처음 접했다. 당시 쿠바혁명을 옹호한 C 라이트 밀스의 책 『들어라! 양키들아』를 통해서였다. 이후 대학원을 거쳐 영국 런던대학에 유학해 본격적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했다.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언급조차 하기 어려웠던 시절인 82년 마르크스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그는 전공에 대해 ‘경제학사’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일종의 ‘위장’을 해야했다.



 그에게 마르크스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왜 지금도 유효한지 물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다 보면 실업·빈부격차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문제는 정부가 사회보장 정책으로 해결 안 하면 풀릴 수가 없어요. 그런 분석을 가장 잘해놓은 이론이 마르크스 경제학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김 교수는 서민에 대한 복지와 동정심이 우리 사회에 매우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영국은 1948년 이미 학교와 병원이 무료였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에 걸맞게 서민에 대한 연대감을 키워야 합니다. 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 투쟁이 지나치게 대통령 직선제에 몰입했어요. 직선제 하고 나니까 이제 ‘우리 사회가 좋아졌다’고 안주하며 복지국가로 가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배영대 기자





“잡아가려면 잡아가라” 『자본론』 첫 완역



◆김수행 교수는
=1942년생. 61년 서울대 상과대에 입학해 접한 마르크스는 그의 평생의 화두가 됐다. 한신대 교수를 거쳐 89년 2월 서울대 교수에 부임하자마자 그는 3월에 『자본론』 번역서를 출간했다. 그 일에 대해 그는 “서울대 교수가 ‘잡아가려면 잡아가라’며 번역·출판해 버리니까 경찰과 검찰도 어찌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라고 회고했다.



 지금까지 그는, 마르크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 작동방식을 연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정년 이후엔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연구 주제로 잡아볼 계획이라고 한다.



 정년퇴임을 했다고 해서 그의 생활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다. 특별한 사회활동을 할 계획을 아예 세우지 않는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토대를 세우는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전임교수 33명 중 한 명이었던 그의 최대 고민은 자신의 후임 선정이다. 자신이 은퇴하면 ‘32:1’이었던 비율이 ‘33:0’으로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제 후임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자를 채용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현재 내 밑에 있는 박사 과정생 9명의 지도도 당장 문제지요. 현재까지는 내년 3월에 후임 문제를 결정하자는 얘기만 듣고 있습니다.”



 올해 초 일종의 교육운동 단체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사회과학대학원’(cafe.daum.net/ReturnMarx)을 서울 삼각지 부근에 설립했다. 6개월 단위로 매주 하루 3시간씩 공부하는 모임이다. 현재 80명의 인원이 등록해 있다. 문의 02-3785-1600



배영대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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