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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뒤 산동네 바꾼 '낙산 프로젝트'

소극장이 100개 가까이 모여 있어 '아시아의 브로드웨이'로 통하는 서울 대학로에는 젊음의 열정과 예술의 향기가 거리에 넘쳐난다. 하지만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의 뒤편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북악산.인왕산.남산과 함께 4대문 안쪽의 4개 산 중 하나인 낙산(駱山)의 서편 자락이 이곳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 수십 년째 이곳에는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주택가 안에는 지금도 봉제공장 2000여 곳이 섞여 있다. 큰 길가의 화려한 대학로와 달리 이곳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70년대 봉제공장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작은 공사가 시작되면서 이화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뚝딱 뚝딱 쓱쓱 싹싹…'. 길게는 6개월 정도의 공사가 끝나자 올봄부터 이화동을 찾는 사람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칙칙한 건물 외벽에 멋진 그림이 그려지고, 쓰레기 더미가 차지했던 공터에는 조각품이 설치됐다. 동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화동이 '공공미술 1번지'로 떠오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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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에게 다가간 미술, 미술 껴안은 주민

이화동을 공공미술 단지로 꾸민 것은 '낙산 프로젝트' 덕이다. 40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작은 동네에 지난해 9월부터 석 달간 70명의 작가가 70개 작품을 설치하는 프로젝트였다.

낙산 프로젝트는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추진한 공공미술 시범사업 중 하나였다. 민간단체인 공공미술추진위원회가 사업을 주관했다. 복권기금의 지원을 받아 전국 11개 소외 지역의 생활 환경을 공공미술로 개선하는 작업이었다. 10곳은 지역의 주민이나 관련 단체로부터 공모를 받아 결정했지만, 낙산(이화동)은 공공미술위원회가 직접 선정했다.

공공미술위원회는 이화동이 역사성을 가진 '윗동네' 낙산과 문화성이 풍부한 '아랫동네' 대학로 사이에서 낙후된 채 '섬'처럼 고립된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화동에 활력을 불어넣어 낙산~이화동~대학로로 이어지는 '문화.역사 회랑'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처음에는 일부 주민이 낙후한 동네를 재개발하는 데 방해가 될 거라며 화를 냈어요."

'낙산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이태호(57.경희대 객원교수) 총감독은 "처음에는 주민들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지만 주민들이 취지를 이해한 뒤부터는 내내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낙산 프로젝트에는 원칙이 있었다. 공공미술이 이곳 주민들의 생활이나 정서와 동떨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근 학교 학생들과 경로당 노인 같은 주민 수십 명을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주민들은 화가들과 함께 붓을 들고 동네 계단이나 건물 벽에 그림을 그렸다.

칙칙하던 외벽과 담장에 '재봉틀로 박음질을 하는 미싱공' '옷감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 같은 동네 풍경이 살아났다. 낙산 프로젝트에는 모두 3억50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지난해 12월 작업이 끝나고 열린 기념식에서 김충용 종로구청장은 "동네가 이렇게 아름다워질 줄 몰랐다"며 "설치된 작품들을 구청에서 책임지고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 시민들, 이화동을 '재발견'하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찾아온 가을. 이화동은 지금 활기차다.카메라를 들고 골목을 누비며 거리의 미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부쩍 눈에 띄었다. 미대생들에게는 이곳을 견학하는 게 필수 코스가 됐다.

"제 그림 붙었을 때 엄마.아빠가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저도 여기 지날 때마다 꼭 한 번씩은 보게 돼요." 굴다리(동숭교) 아래에서 만난 경수연(서울사대부여중 2학년)양은 굴다리 측벽 타일에 그린 자기 작품을 자랑했다. 수연양은 "그림들이 생긴 뒤로 동네에서 쓰레기가 줄고 깨끗해졌다"고 했다.

굴다리 위에서 40년 넘게 '굴다리이발소'를 운영하는 이우서(73)씨의 이발소도 명물이 됐다. 예전의 모습 그대로인 이발소가 낙산의 공공미술작품과 어울려 추억의 풍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화동의 달라진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온 시민들은 이씨의 이발소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와 내부 풍경도 찍는다. 반평생 이화동을 지킨 이씨는 "내 이발소를 사진에 담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을 왜 막겠느냐"며 "이화동이 멋진 곳으로 변하는 것을 보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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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