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대통령' 꿈꾸는 13人의 정치두뇌>대리인·대변인 2役 맡았던 박형준 의원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사상적 간극이 컸다. 박 의원은 학생운동 출신이다. 그는 오른쪽 눈으로 글을 읽지 못한다. 1980년 5월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다 최루탄을 맞았다. 직격탄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건물 벽을 때린 최루탄이 바로 옆에 있던 그의 눈으로 튀었고 넘어진 그의 다리 밑에서도 최루탄이 터져 하체에 화상을 입었다. 시민들이 지하도로 그를 굴려 대피시킨 덕택에 현장을 탈출했지만 부상이 컸다. 내과 개업의사였던 부친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시력은 회복되지 못했다. 문학 활동을 함께하던 친구들이 그때 붙여준 별명이 ‘탄파안(彈破眼·최루탄에 다친 눈)’이다.
박 의원은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4대 악법’에 대한 강경투쟁으로 일관한 박 전 대표와는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꽤 인정받는 사회학자로 17대 국회에서 촉망받는 신인이었던 그에게 이명박 후보가 처음 관심을 보인 것은 2004년 말께. 국보법 투쟁 현장을 격려방문했던 이 후보는 “박 의원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며 인사했다.
|
지난해 10월께 이 후보는 정식으로 박 의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박 의원은 “이 후보는 1대1로 만나면 친화력과 흡인력이 상당하다”며 “이 후보라면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신뢰를 받았다”고 말했다. 학생운동의 대 선배인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가까운 사이였지만 이 후보를 돕기로 마음을 굳혔다. “일을 진짜로 해낼 사람은 이 후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맡았다. ‘말 잘하는 대통령보다 일 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최고권력자가 아니라 최고경영자가 되겠다’ 같은 개념이 그의 작품이다.
그는 경선 룰 협상 당시 국민선거인단 투표율 올리기에 치중하느라 60대 선거인단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을 놓친 사실을 ‘가장 아찔한 실수’로 꼽았다. 반면 선거인단 수를 두고 기싸움을 벌여 전국 동시선거를 이끌어 낸 것은 뿌듯하게 생각했다. 그는 “만약 전국을 순회하는 체육관 선거였다면 결과가 어찌됐을지 모른다”고 안도했다.
“李 후보 사주 몰래 봤더니…”
박형준 의원은 사주에 일가견이 있다. 10여 년 전부터 동양철학에 관심을 갖고 명리학·주역 공부를 한 결과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생년월일을 써서 내민다. 그는 사주의 의미에 대해 “나름의 묘한 철학이 있다”며 “인생이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또 “가지 않아야 할 길을 생각해 본다든지 내 성격이 기본적으로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효용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후보의 사주도 봐줬냐’고 묻자 “몰래 봤다”고 털어놨다. 내용을 물으니 “그건 말할 수 없다”면서도 “나름의 그릇이 있더라”고 귀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