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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칼럼] 학력 위조, 너무 자학하지 말자

학력 위조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이틀이 멀다 하고 유명 인사들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정직과 신뢰라는 사회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학력 만능주의와 도덕불감증에 넌더리를 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자학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다행히도(?) 학력 위조는 전 세계적 현상이기에. 미국의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28년간 재직해 온 마릴리 존스는 올해 4월 26일 자신의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임했다. 그는 1997년부터 지원자들의 경력과 학력을 검증하는 입학처장으로 일해왔다. 누구보다 높은 정직성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였다. 처음 교직원으로 채용될 때 제출한 이력서에 올바니의대와 랜슬러공대, 유니언대 등 세 곳에서 학위를 취득했다고 적었지만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필립 클레이 총장은 “유감스럽고 아이러니하며 슬픈 일이지만 우리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은 2004년 학력 위조 문제로 연방의회 청문회까지 열었다. 우리의 감사원에 해당하는 회계감사원이 당시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정부 직원 가운데 463명이 ‘학위공장(diploma mill)’이라 불리는 비인가 대학으로부터 가짜 학위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은 국방부 소속이었고, 고위직도 28명이나 포함돼 있었다. 일부는 가짜 학위를 받는 데 정부의 지원금까지 받았다. 같은 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은 고양이에게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수여한 한 온라인 대학 관계자 2명을 기소했다. 고양이가 평균 학점 3.5점의 좋은 성적으로 학위를 받는 데 단돈 398달러가 들었다.



유럽도 학력 위조의 무풍지대가 아니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유럽의 몇몇 가짜 대학이 한 해 1만5000명에게 가짜 학위를 주면서 5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2003년 9월 보도했다. 인터넷 환경의 발달로 가짜 학위 장사 수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사업은 번창하고 있다.



한국에서만 유별나게 가짜 학위가 판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유명인들의 거짓 학력이 집중적으로 폭로되면서 빚어진 착시(錯視) 현상이라고 위안을 삼아도 좋겠다. 이렇게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이뤄진 학력 검증은 한국의 뛰어난 인터넷 환경과 네티즌의 열성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아예 발상을 바꿔 요즘의 검증 열기를 국가 신뢰지수 상승의 원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게 어떨까.



그러려면 먼저 학력 위조에 대한 성격부터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용서해 줄 잘못인가, 아니면 사기인가. 학력 위조가 드러난 많은 유명인은 대부분 고의성이 없는 과오였다고 주장한다. 특히 문화·연예인들은 부풀려진 학력으로 인해 특별한 이익을 취한 것이 없다며 눈물을 흘린다. 과연 그럴까.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한 사람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내리는 데 유용한 지표다. 단순한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인내심·성실성까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래나 연기도 잘하지만 좋은 학교까지 나왔다면 당연히 대중의 호감도는 높아진다. 그래서 학력 위조는 초라한 학력을 속이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결과적으로 불이익과 상처를 주게 된다. 이렇게 이익은 큰데, 걸려도 별로 잃을 게 없다면 악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MIT의 클레이 총장은 존스의 학력 위조에 대해 “실수나 사고, 부주의가 아닌 사기(deception)”라고 못 박았다. 당사자는 사과 성명서를 발표하고 깨끗하게 물러났다.



우리는 어떤가. 당사자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하고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숨어버린다. 동국대와 단국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모든 교직원에 대해 학·경력을 검증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대학들은 감감 무소식이다. 지금처럼 우리 사회가 네티즌에게 검증을 전담(?)시킨다면 유명인들만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된다. 차라리 미국처럼 감사원과 국회가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학력 위조의 달콤한 유혹을 없애는 치유책은 학벌사회를 해체하는 것이다. 학력이 아닌 다른 요소로 개인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현재의 상태에서 가장 유효한 수단인 학력조차 위조로 얼룩진 현실에 메스를 가하지 않으면서 더 좋은 대안을 만들어 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학벌사회를 해체하고 능력사회(meritocracy)로 가는 길은 이래저래 고통스러운 여정이다.



이하경 문화·스포츠 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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