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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8)<제89화>내가 치른 북한숙청|남로당 파 제거(15)|전 내무성 부상 강상호

방학세가 내무상에 앉자마자 남로당 파 인사들에 대한 대숙청이 시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일찍부터 김일성 수상의「특별지시」에 따라 박헌영 부수상을 비롯, 남로당파 인사들에 대한 동향을 수집·관리하는 정보총책임자였다.
따라서 공화국 내에선 방학세 만큼 남로당파 인사들에 대한 정보는 말할 것 없고 성향과 체질까지 잘 알고 있는 간부가 없었다.
때문에 김일성 수상의 최대 정치도박인 남로당파 인사들에 대한 숙청사업에는 방학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그는 김일성 수상으로부터 직접 지침을 받거나 박창옥 당 선전선동부장·박영빈 조직지도부장 등과 협의해가며 줄곧 숙청의 고삐를 당겨갔다. 방학세는 남로당파 대숙청의 궁극적인 목적이 수상의「숙명적인 정적」이자 동파의 지도자 박헌영 부수상을 제거하는데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방학세는 53년초 이승엽 등 남로당파 핵심간부 12명을 검거하기 전 김일성 수상의 최종 재가를 얻기 위해 면담을 했다.
그 자리엔 박정애·박창옥 등 수상직계라인 간부들이 배석했다(이 일화는 56년 박창옥이 평양에서 동무들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방 동무,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소.』
『예, 수상동지. 그런데 사업진행 순서에 차질이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잘 돼간다고 했지 않아.』
『우선 이승엽 등 핵심 참모들을 잡아 놓고….』
『쓸데없는 소리 말고 종파주의 두목「이론가」부터 때려잡으시오.』
『………』
그러나 수상의 지시대로 곧바로 박헌영 부수상을 검거하지 못한 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에 대한 범죄(숙청)의 구성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만약 그런 상태에서 섣불리 그에게 손을 댔다가는 인민들은 말할 것 없고 소련 등 국제적 여론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수상의 불같은 성미를 잘 알고 있는 터여서 한참동안 말문을 열지 않던 방학세가『두목의 손과 발을 모두 잘라낸후 착수해도 늦지 않습니다.』며 조심스럽게 수상을 설득했다.
박창옥 등도 방학세의 말을 거들었다.
이같은 배경 속에서 시작된 남로당파 인사들에 대한 검거선풍은 마침내 월북시인·작가 등 예술인들에 대한 대규모 검거와 탄압으로 번져갔다.
월북 예술인들에 대한 검거와 탄압은 1차로 검거된 조소문화협회부위원장 임화의 순진한 「자백」으로 쉽게 풀렸다.
남로당 간부들의 동향과 종파적 경향·회합·불평불만 등을 비밀리에 내사해오던 특명반은 정신적으로 약하고 불평불만이 심했던 임화를 독방에 감금하고 그의 입을 통해 월북 예술인들의 죄상(활동)을 하나 하나 들춰냈다.
필자가 내무성부상에 부임, 그의 간부카드를 뽑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었다.
「강원도 출신.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1926년 조선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카프)에 가입. 1932년 카프 서기장. 카프 해산 후 전향. 45년 8월 조선문화건설 중앙협의회 조직. 동년12월 조선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과 합동, 조선문학가동맹 조직. 46년 12월 문예총 중앙위원. 47년 가을 월북. 조소문화협회 부위원장. 월북후『인민투쟁가』등 남로당과 유격대투쟁을 찬양하는 작품을 많이 씀.」
또 이승엽등과 함께「미제의 고용스파이」혐의로 숙청재판에 넘겨진 그의 기소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조국해방이후 이태준·이원조·김남천 등과 같은 분파주의자들과 일체가 되어 미제 점령하에 수립된 조선문화건설협의회를 조직하여 미군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그는 특히 많은 논문에서 민족문학은 계급적이어서는 안되고 근대적 의미의 문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카프문학과 진보적 작가·예술가들을 반대하며 미군정에 아첨을 일삼았다. 또 이태준·이원조·김남천 등과 한패가 되어 소위 연합군을 환영한다는 미명하에 미군의 부당한 점령을 환영하는 데모를 조직하고 미군정의 경찰학교에서 강연회를 하기도 하였다.
임화가 검거되자 노동신문과 민주조선 등에는 연일 그의 작품을 비판하는 평론가들의 글이 실렸다.
주로 비판의 화살이 꽂힌 그의 작품(시)은「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바람아 전해다오」「흰 구름을 붉게 물들인 나의 피 위에」등이었다. 53년8월 평양에서 열린 이른바 남로당파 숙청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임화는 그해 12월3일 남로당파 지도자 박헌영부수상의 재판 때 증인으로 이용당한 후 평양부근 산골로 끌려가 총살돼 그 자리에 매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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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