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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 2. 소설가 박경리 인터뷰

지난해 말 강원도 원주시 오봉산 자락에 있는 토지문화관으로 원로 소설가 박경리(朴景利.78)선생을 찾았다. 겨울이라 찾는 이가 없어 썰렁했다. 박경리 선생은 조금 미안한 기색으로 "연료를 아끼려고 문화관 이용자가 없을 때는 난방을 하지 않는다"며 전기 난로를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관장실은 금방 달아올랐다. 인터뷰는 본지 유재식 부국장이 진행했다.

-지난해 상반기 현대문학에 장편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하다 중단하셨는데요.

"작품에 골몰해 극도로 긴장하다 보니 원래 높던 혈압이 더 높아져 작품을 쓸 수가 없었어요. 병원에 갔는데 혈압계가 고장이 났다고 해요. 수동식으로 재 보니까 2백이 넘어요. 그래서 일을 중단했지요. 4백50쪽쯤 썼나요. 건강이 회복돼도 다시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작품 중 제일 애착이 가는 게 있지 않을까요.

"아픈 것도 없고, 전부 불만이에요. '토지'는 그래도 됐다는 생각이 드는데, 부분적으로는 고쳐야 할 부분이 많아요."

-문단의 대원로이신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예전에 비해 문제의식이 치열하지 못하고 감각적인 것만 좇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대 탓이겠지요. 작가에게 '자유'는 가시밭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물질과 욕망을 채우는 것을 자유라고 보는 것 같아요. 시대가 그러니 젊은 작가들도 그렇게 쓸 수밖에 없죠. 그래도 이런 안타까움은 지구적인 차원에서 인류가 당면한 문제와 비교하면 하찮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근원적인 문제를 논한다는 게 절망스럽기도 하고, 그렇다고 근원을 나 몰라라 하면 인간은 존재조차 할 수 없게 될 것 같고…."

박씨에게 '근원적인 것'은 역시 환경 문제다. 박씨는 문학.환경 계간지 '숨소리'를 지난해 겨울호까지 4호째 만들고 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환경으로 넘어갔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쏟은 지 꽤 되셨지요. 최근엔 부안사태도 있었고.

"환경에 대한 나의 관심은 사실 생리적인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 인공적인 것에는 적응이 잘 안됐어요. 부안 사건은 지역 이기주의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지구적인 문제입니다. 어느 쪽의 주장대로 해결이 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원자력 폐기물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땅에 묻든 묻지 않든 폐기물은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해결책은 원자력발전을 중단하는 것밖에 없어요. 근원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지금 중단해서 마무리될 일이 있고 이미 늦어서 되지 않을 일이 있는데, 지구의 단계가 어디쯤 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온난화 현상을 보면 시기를 놓치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들고요. 한국은 아직까지 성장과 경쟁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데, 난센스예요. 멸망을 재촉하는, 기가 막힌 일입니다. 앞으로라도 모든 생산품을 고급화하고 사람들이 아껴 쓰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싸구려 상품을 많이 생산해 쓰고 버리니까 쓰레기가 많이 쌓였습니다. 돈이 들더라도 고급품을 생산해 1년 쓰던 것이면 한 10년 쓰게 해야 쓰레기가 줄어듭니다. 그럼 실업자가 걱정이라고요? 남는 인력을 환경 인력으로 돌리면 됩니다. 이런 얘기는 뭐, 내 사견이에요. 이 정부에서 꿈이나 꾸겠어요. 그야말로 탁상공론이지."

-탁상공론만은 아닐 듯합니다. 실제로 독일 같은 나라에선 원자력발전소를 점차 줄이는 대신 풍력발전에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니에요. 이탈리아의 한 자동차회사는 차를 만들 때부터 폐차를 염두에 두고 재생 가능한 부품을 이용한다고 해요. 전부 자연적인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그걸 보면 우리나라는 환경에 관한 한 아직 후진국이에요."

-환경 의식만 그렇겠습니까. 정치권도 우리나라가 후진국 소리를 듣는 데 한몫하고 있는 셈이죠. 정치자금만 보아도 그렇고….

"진짜 후진국이에요, 야만에 가까울 정도로. 과거의 높은 문화수준에서 말도 못하게 후퇴했어요. 화도 나지 않을 정도예요. 정치하는 사람들, 처음에는 국민에게 머리 조아리고 잘 하겠다고 해서 국회에 보냈는데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국민이 그 사람들 뒷바라지하느라 뼈 빠집니다. 까놓고 얘기해볼까요. 정치가들이 조폭(조직폭력배)하고 다를 게 뭐가 있나요. 일종의 조폭이에요. 이래가지고는 진짜, 참, 안되지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이 정부 들어 정말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옛날 왕들이 독재를 했던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혹독하게 제왕학 훈련을 받았어요. 관리가 되려 해도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뛰어나야 했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을 호강하는 자리로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대통령은 5년 동안 죽어라고 고생하는 가시밭길의 자리입니다. 그걸 모르고 대통령 됩니까.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왜 나와요. 제왕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힘에 부치더라도 행동으로 해야지 말로 하는 거 아닙니다. 전국민의 모범이 돼야 할 사람인데 시정잡배들처럼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자제하고 절도를 지켜야 지도자이지요. 자꾸 말로만 하면 국민들이 불안해서 못삽니다."

-지난해 말엔 '시민혁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말이 화제였지요. 반드시 그런 말들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한국 사회가 구심력보다는 원심력, 화합보다는 갈등 측면이 너무 두드러지고 있어 걱정이라는 얘기가 많습니다.

"젊은층과 장년층 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노무현 정부에서 더 심해졌어요. 어찌 보면 그런 갈등은 인간 내지 생명의 원죄 같은 것입니다. 편을 가르지 않으면 못 사는 인간의 본성 탓인데, 그런 본성을 잘 다스리는 게 문화이고 발전 아닙니까. 그런데 대립이 점점 심해지니 이게 무슨 발전인가요, 후퇴지. 대통령이 어느 그룹의 대통령입니까. 반대한 사람이든 찬성한 사람이든 전 국민의 대통령이지, 내 그룹의 대통령 아니잖아요. 무슨 짓들을 하는지, 어떤 때는 정말 무서워요. 모여서 저렇게들 하는 게. 예전에 히틀러가 그랬잖아요. 큰일 납니다. 그렇게 부추기면 큰일 나요, 진짜."

-노무현 정부가 어떤 점들을 우선적으로 고쳐나가야 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책이 있다는 생각도 못하겠어요. 정부나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책이 없어요. 사람들 머릿속에는 다음 표밭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것도 자기 능력이 아니라 국민의 것을 착취해서…. 이건 정말 용서 못할 일이에요. 한 가지 희망은, 해방 후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라도 발전한 건 국민이 우수하기 때문이라는 점이에요. 지금도 국민이 지도자들을 앞서가고 있어요. 하지만 국민이 계속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걸 명심해야 해요."

-지난해 중앙일보의 '황석영.이문열 대담'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왔지만, 이제 서로 상처는 그만 내고 용서하고 껴안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념이라는 게 뭐예요. 인간들이 잘살게 하기 위한 방법 아닙니까. 그런데 이념이 따로 놀아요. 세상에 생존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이 생태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이념이라는 허공에서 싸울 이유가 없어요. 이념보다는 한 숟가락의 밥이 필요해요."

-거기엔 작가를 포함한 지식인들도 책임과 역할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만.

"정치가들에 대해 옳다, 그르다 그런 지적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지금 지식인들은 지성인이 아니고 기술자로 가는 것 같아요. 지식과 기술은 다릅니다. 기술이 문명이라면 지식은 문화에 속하는 것이지요. 지금은 문명만 있고 문화는 없어요. 문명은 문화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기술자인데 문화가 없고 문명이 독재하고 있습니다. 핵무기가 판치고, 온실가스가 온 지구에 충만하고, 강이 물들고 바다가 죽어가고. 노아의 홍수 같은 재앙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인데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있어요."

-환경 외에 올해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겠습니까.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가계대출이다 카드 빚이다 이런 문제는 결국 정치가들이 무책임하게 국민들을 속인 결과 같아요. 토마토가 커질 때는 거기 뭐가 있는 겁니다. 우선 당장 먹고 보면 나중에 더 큰 빚을 갚아야 합니다. 지금이 그 지경이에요. 이젠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주의 질서에서 배워야 합니다. 우주의 길 안내를 받아가며 끝없이 겸손해야지요."

박씨는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꼭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이 편안한 날엔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 인터뷰할 때는 "답답하다"며 연신 담배에 손이 갔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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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