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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박헌영-김일성 4차 회동(3)

46년7월, 남과 북에는 제2의 「좌익세력개편」이 전격 시작됐다.
김일성을 실세로 부상시킨 분국의 등장이 첫 개편이라면 북조선공산당의 조선신민당(신민당)과의 합당, 조선공산당과 인민당·남조선신민당 3당의 합당움직임은 제2의 개편이었다.
합당은 분산되어있던 공산계열의 힘을 하나로 모은다는 의미에서 남북을 막론하고 권력사에서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개편」이 완료되는 시점은 남북이 달랐지만 북에서는 공산당이 유일집권당으로 등장해 소비예트화에 박차를 가하는 방향으로 구체화됐고 남에서는 흩어져 있던 좌익들이 구심점을 형성해 궁극적으로 미군정과의 본격투쟁에 나서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이 같은 새로운 판짜기가 극비리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박헌영·김일성이 평양으로 귀환한 직후 시작됐다는 사실이 40여년 동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왔었다.
박헌영·김일성·허가이 3인은 46년7월 산적한 현안들을 뒤로하고 비밀리에 모스크바로 밀행한 뒤 평양으로 되돌아봤다.
그들의 모스크바방문은 소군정과 당의 핵심 몇몇만 아는 극비였기 때문에 방문의 구체적 내용 역시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전 북한고위관리 서용규씨는 아직도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있는 박헌영·김일성의 모스크바방문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박헌영·김일성은 46년7월 10여일간 모스크바를 방문했습니다. 소련파 허가이가 동행했지요.
이들의 모스크바방문은 워낙 극비리에 진행되어 최창익 같은 신민당 수뇌부도 알지 못하다 나중에 가서야 알음알음으로 알게됐죠.
그랬기 때문에 방문했다는 정도는 알았다해도 방문의 구체적 내용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의 방문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다소 의문을 일으킨다.
이들의 방문시점을 전후한 남쪽의 정세는 조선공산당 당중앙인 박헌영이 당을 비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미군정의 좌익탄압공세가 날로 거세져갔고 좌우합작이라는 시급한 현안도 있었다.
따라서 이런 현안을 뒤로하고 박·김이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해야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북한주둔 소군정의 고위장성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전 소25군 정치사령관 레베데프 소장은 최근 박헌영·김일성의 모스크바 방문과 관련해 주목할만한 증언을 했다.
그는 『46년7월말 군지도부가 「김일성과 박헌영을 직접 면접한 후 북한의 지도자를 결정할 예정이니 김과 박을 극비리에 모스크바로 보내라」는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서울에 있던 박헌영을 불러 평양의 군공항에서 소련군 특별수송기편으로 김일성과 함께 모스크바로 보냈었다』면서 『크렘린에서 스탈린이 김과 박을 만나 당시의 남북한 정세를 보고 받은 뒤 김일성을 북한정권의 최고지도자로 지명, 북한의 소비예트화 조기정착을 지시했었다』고 증언했었다(본지 91년11월30일자 1면).
그런데 서용규씨는 조금 다르게 증언하고 있다.
『이들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은 국제공산당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지식을 얻고 이에 따른 지침을 전달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사회주의진영에는 큰 변화가 있지 않았습니까. 동구 사회주의국가들이 무더기로 탄생한 것이 그것이죠.
2차 대전 전만해도 사회주의국가는 소련 하나뿐이었고 전세계 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시아래 활동하는 단순구조였지요.
그러다 코민테른이 해체되고 종전과 함께 동구에 사회주의국가들이 새롬케 탄생하면서 사정이 복잡해졌습니다.
46년 초 소련을 중심으로 이 같은 논의가 제기됐고 이런 정황을 논의하기 위해 그해 7월 국제공산주의자들의 비밀모임이 열린 것입니다.
박헌영이 모스크바에서 스탈린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북한에도 크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들이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남과 북에서는 공산당과 좌익계정당의 합당작업이 전격적으로 추진됐다.
북에서는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남에서는 조선공산당과 남조선신민당·인민당의 합작이 모색됐다.
합당문제는 이들이 모스크바로 떠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주체였다.
서씨의 증언.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자마자 김일성은 비밀회의를 소집했습니다. 북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지도원급 이상이 참가했는데 주제는 합당문제였습니다. 합당문제는 이전에 전혀 거론된 적이 없어서 당중앙에서 일하던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 회의는 실무자들이 참석하는 내부회의로 간주돼 박헌영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허가이의 보고를 시작으로 회의가 시작됐습니다.
허는 합당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를 했습니다. 보고를 마친 뒤에는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두었습니다. 합당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 북의 경우 공산당이 권력은 잡고 있었지만 대중의 인기는 조선신민당이 훨씬 좋았기 때문이었다.
공산당지도부는 대중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 같은 좌익계정당인 조선신민당과 합당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남쪽에 있었다. 서씨는 이렇게 말했다.
『「북조선공산당이 조선신민당과 합당하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남쪽은 사정이 좀 어렵지 않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된 겁니다.
박헌영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여운형이나 남조선신민당위원장인 백남운이 느닷없는 합당에 선뜻 응하겠는가가 의문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합당에 대한 여론이나 반응을 먼저 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잠정적으로 조정됐습니다. 박헌영에게는 「일단 서울로 돌아가 여운형이나 백남운을 만나 의견을 들어보고 평양을 다시 방문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로 했습니다님
북에서는 비교적 일사천리로 합당이 진행됐다.
지도부에서 합당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중앙당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도당차원에서도 합당을 위한 회의가 계속 열렸다.
북조선공산당 지도부로부터 회의결과를 보고 받고 재방문요청도 받은 박헌영은 서울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평양에 모습을 나타냈다.
<특별취재반>북한부
김국후 차장
안희창 기자
유영구 기자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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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