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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4전5기다] ‘챔피언 홍수환’ <75>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꼈던 후배이자 훗날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이 된 김성준을 처음 만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내가 군에도 가기 전. 즉 197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나는 남영동 동신체육관에서 동양챔피언으로서 김준호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하고 있었다.

어느 날 동신체육관에 웬 귀공자가 나타났다. 곱상하게 생긴 게 꼭 부잣집 막내아들처럼 부티 나는 얼굴이었다. 그 녀석은 옷도 잘 입은 데다 손목에 오메가 시계를 차고 있었다. 당시 오메가 시계를 찰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눈에 확 들어왔다. 부잣집 아들 차림으로 권투를 배우겠다며 찾아온 녀석이 바로 성준이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자세히 보니 그 녀석이 손목에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다. 점입가경이었다. 우리 체육관에는 김준호 선생님의 둘째아들 택경이가 상주해 있었다. 나는 택경이를 구석으로 끌고 가서 은밀히 물었다. 정체가 정말 궁금했다.

“저 자식. 뭐 하는 놈이냐? 롤렉스 시계 차고 다니는 놈이 무슨 권투냐?”

택경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잘 살아요.”

그런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택경이는 킥킥 웃어댔다. 나는 그 말과 웃음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흘려 보냈다.

귀공자 성준이의 얼굴은 카퍼레이드하던 날 내 눈에 콱 박혀 버렸다. 내가 1974년 아놀드 테일러를 이기고 WBA 밴텀급 챔피언이 되어 공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던 바로 그 날이었다.
나와 어머니가 탄 리무진은 서울역을 거쳐 시청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대문에서 코너를 돌 때 그 많은 인파의 환호성을 뚫고 나를 부르는 외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

그 목소리 쪽으로 돌리자마자 성준이의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그 많은 인파 가운데서 어떻게 한 사람의 눈과 그렇게 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 두 사람의 인연은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차 위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성준아. 잘 있었냐?”

“형. 축하해”라는 성준이의 화답을 등 뒤로 하고 차는 커브를 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준이는 부잣집 아들이 아니라 남대문을 거점으로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소매치기였다. 시계털이 분야에서 그를 쫓아갈 사람이 없을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카퍼레이드 날 성준이가 최고로 많이 시계를 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성준이는 소매치기와 권투 선수 생활을 겸했다. 그러나 나는 선배에게 깍듯하고 예의바르며 인간미가 넘치는 후배 성준이를 사랑했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그 녀석은 당시 대한민국 소매치기들을 벌벌 떨게 만든 김진세 검사에게 잡혔다. 감방행이 불 보듯 확실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나와 동료 오영호는 김 검사를 찾아가 “성준이를 한 번만 봐 달라”며 빌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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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