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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5)<제85화>나의 친구 김영주(20)|이용상|진짜 김일성 시비

일본은 전 아시아를 지배하겠다는 흉악한 계획으로「식민지 조선」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약탈과 탄압을 강행했고 그들은 우리에게서 언어도, 성도, 문화도, 생명까지도 중요한 것은 모조리 빼앗는 그야말로 태양도 별도 없는 공포와 암흑이었다. 이토록 답답하고 숨막힐 때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자주 있었다.「조선·만주국경인 혜산진 대안에 출몰하는 공산비적은 1백50명에서 1백60명으로 그중 3분의1은 만인이고, 3분의2는 조선인인데 조선여자 7명도 끼여 있으며, 공비의 수령은 김일성이라고 한다. 이들은 15∼20명씩으로 된 약탈 반을 조선인부락에 파견하여 식료품을 약탈하고 있다』이는 친일 매일신보의 1936년 9월11일자 기사다.

식량과 물품을 강탈했건, 약탈했건 간에 일본경찰을 습격하고 일본 정규군과 총격전을 벌였다는 소문만 듣고서도 국민들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약탈자니, 공비니 하는 일본측 발표를 우리는 믿지 않았다.

"우리 형님이" …어린 시절의 자랑 믿어 와|보천보 습격 주인공 증언 엇갈려

우리는 그들이 독립군일 것이라고 내심 박수를 보냈던 것이다.

그러던 중「보천보를 습격한 장본인 김일성 비 적 사살」이라는 공식발표가 나돌았다. 김일성이 1937년 11월13일 죽었다는 것이다.

이는 관동 군과 괴뢰 만주군의 관계 관들이 시체를 검진한 후에 발표됐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1991년 현재까지도 그것은 일제의 조작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즉『김일성 주석이 보천보 습격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그들의 줄기찬 주장인 것이다.

이에 대해 김일성 연구의 대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균관대 이명영 교수는 그의 역작『김일성 열전』에서 보천보 습격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즉 보천보를 습격한 주인공은 현 김 주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미나는 얘기가 있다. 전 북한 인민군작전 국장 유성철 중장은 1943년부터 김일성과 함께 항일운동을 했던 동지다.

해방 후에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 인민군을 창설했고 6·25때는 전쟁 전반을 입안·지휘했던 사람이다. 소련에서 살고 있는 그가 작년10월 서울에 왔을 때 그는 빨치산출신들로부터 들었던 보천보 전투 당시 김일성의 모습을 증언한 바 있다. 유성철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김일성은 항일빨치산을 할 때 최 현(6·25당시 소장·인민군 보병 2사단장, 후에 대장·민족 보위 상)을 비롯한 2백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국경을 넘어 보천보를 습격, 경찰 수명을 살해하고 지주들에게 식량과 자금을 거둔 뒤 퇴각했다.

이 단발 적 전투를 북한에서는 수십 배 과장하여 김일성의 가장 화려한 항일투쟁 경력으로 선전하고 있다.

북한 역사 서적은 당시 김일성이 주민들을 모아 놓고 애국적 연설을 했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6·25전쟁 중 우연히 나와 만나 보천보 얘기를 했던 최 현은「야, 도망가기도 바빴는데 무슨 대중 연설을 해」라고 내 뱉었다』

이것은 유성철이 조금은 비꼬는 글이겠지만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보천보 전투에 김일성이 참가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반해 이명영 교수는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 증거를 들면서 보천보 사건과 지금 북에 있는 김일성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보천보의 주역은 그로부터 5개월 후 괴뢰 만주 군에 의해 사살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교수의『김일성 열전』에는「안도현 치안대장 이도선(만주경찰관·경좌)이라는 한인이 있었다. 그는 이른바 공비토벌에 큰 활약을 했던 사람인데 1937년초 그는 공비토벌에 나갔다가 김영주란 한 소년을 체포했다. 그 소년은 부모와 사별한데다 가운데 형 김철주도 일찍 죽어(김영주가 필자에게 말한 바로는 김철주는 일본군 습격 때 전사했다고 했다) 사고무친 한 만주 땅에서 의지할 데는 없고 해서 김일성 부대에 있는 큰형 김성주를 따라 소년대원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김일성 부대에 있는 큰형 김성주」라고 했는데 김성주 든, 김성주 든 나는 보천보 전투의 주인공은 현재 북에 있는 김일성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다.

필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연구결과가 아니다. 나는 이 방면에 문외한이다. 다만 아무 정치성도 이해관계도 따질 필요가 없었던 47년 전 어린 시절 김영주가 나에게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그대로 믿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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