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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4전5기다] ‘챔피언 홍수환’ <54>

김준호 선생님은 기자들을 향해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람쥐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만들 하십시오.”

신문들은 이 한마디로 도배되다시피했다. 기사의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았다.

‘김준호 트레이너. 다람쥐가 나무에서 떨어진 기분이라 비유.’

파장은 내 개인적인 망신으로 그치지 않았다. 부대에 복귀하니 영창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도경비사령부는 군인 정신이 결여됐다며 나를 수경사 제5헌병 대대 자대 유치장에 일주일 동안 감금해 버렸다. 그 곳은 탈영병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유치장에서 철창을 마주한 채 등을 뻣뻣이 세우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 헌병이 내게 명령했다.

“소속과 군번을 대라.”

나는 일주일 영창 생활을 마치고 파이트머니 결산을 했다. 파이트머니는 총 4000만원. 코치인 서강일 선배가 400만원. 김준호 선생님이 400만원을 가져갔고 이것 저것 다 제하고 나니 내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절반가량이었다.

진작에 관두려던 권투였다. 링 안팎에서 싸우는 데도 진절머리가 났다. 군에서는 졌다고 영창에 가두는 판이었다. 남은 파이트머니로 새 인생을 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홍수환 후원회장인 정운수 박사를 찾아갔다. 진심으로 나를 돕던 분이었다. 그 자리에서 “권투를 끝내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 분의 말씀이 비수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너희들은 때리면 때리지 말라고 심판이나 있지. 인생은 그게 아니야. 인생은 일어나려 하면 미리 밟아버려. 너에게 권투가 제일 어울려. 한 번 더 해.”

나는 “인생이 링보다 무섭더라”라는 말을 20대 중반에 들었다. 그 말은 지금도 내 좌우명이다. 한시도 그 말을 잊어본 적이 없다. 살면 살수록 진리임을 깨닫고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재기의 칼을 갈았다. ‘내가 꿀을 안 먹었으면 너를 충분히 이길 수 있었어’라고 생각하면서. 사모라를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LA의 링 바닥은 다른 곳과 달리 푹신푹신했다. 그것은 미국인들이 붕붕 뛰는 권투를 싫어한다는 뜻이다.

치고 받는 권투를 즐기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꿀 먹은 권투 선수에게 LA의 링 바닥은 늪처럼 더 잠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순간 사모라는 태국 국왕의 양자 수코타이를 LA로 불러들여 1차 방어전을 가졌다. 역시 시차를 극복하지 못한 수코타이가 경기 초반 KO로 무릎을 꿇었다. 사모라의 실력은 챔피언 벨트를 따낸 후 점차 늘고 있었다. 수코타이를 물리치면서 전적도 22전 22KO승이 됐다.

그 와중에서 사모라가 제시한 옵션이 행방불명됐다. 사모라는 나와 싸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매치 메이커인 오모씨를 통해 수코타이전 직후 어필을 했지만 오모씨 자체가 흐지부지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계약 불이행에 대한 사항을 따질 만한 역량이 없었다. 게다가 사모라전을 성사시킨 오모씨가 계체량부터 어딘가 석연찮은 행동을 계속 해왔다.

억울하지만 실력으로 다시 서는 길밖에 없었다. 나는 재기전에서 멕시코의 자니 메사를 2회 KO로 눕혀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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