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취중토크] 손호영, 노래 부를수 있어 정말 행복해요

이번주 취중토크 주인공에 대해 사전 취재를 시작하자 주변 사람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듯 걱정하는 눈치다. “완전히 말술이다.” “폭탄주 40잔을 마셔도 거뜬하다.” 그룹 god의 손호영(26). 내심 걱정을 하며 술자리에 앉았다.

“예전처럼 퍼붓기보다는 이제 술 맛을 음미하는 단계죠.” 기자로서는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솔로로 홀로서기를 위해 막바지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는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술 한잔 못하고 일에만 몰두했어요. 취중토크 덕분에 잠시 휴식시간을 갖게 된겁니다.” 손호영은 즐겁게 술잔을 기울였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너무 솔직해서 탈”이라고 자신의 성격을 진단한 그는 옆에 앉은 매니저의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마음 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 놓았다. 속을 조금 엿보고 나니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살인미소’의 의미가 한결 진하게 다가온다.
<centER><img src='/component/htmlphoto_mmdata/200609/htm_200609061302290201000002010200-001.jpg' ></center>
<b>●초등학교때 술마셨죠</b>

지난 4일 저녁 서울 압구정동 일식주점 ‘에가오노’. 주점 상호는 ‘얼굴에 미소를 띄게 하다’는 의미로 공교롭게도 ‘미소천사’ 손호영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소문난 술실력의 진상부터 물었다.“솔직히 옛날엔 아무리 먹어도 안취했어요.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죠. 요즘엔 체력이 떨어졌는지 다음날 너무 힘들어 자제하고 있습니다. 소주를 생각하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만큼 맛있을 때가 있었어요. 고교시절과 god 활동하던때지요.”

그가 즐긴다는 청주로 술상이 차려졌다. 한끼도 못먹었다는 그가 첫잔을 원샷으로 시원하게 비우고 서둘러 초밥·마끼를 입에 넣는다.

술친구는 god의 김태우와 옥주현·정준하 등이다. 옥주현이 술에 약해 와인 한 잔이면 그만이지만 김태우·정준하는 잘 알려진 주당들이다.

손호영의 주력(酒歷)은 꽤 길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맥주를 조금씩 반주로 나눠 마셨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은 마셔도 취하지 않는 그를 언제나 술자리에 데리고 다녔다.

“술을 마셔도 취하질 않으니까 친구들이 술자리만 있으면 절 불렀어요. 그래서 성장기에 키가 안 컸나봐요. 중학교 이후 2~3㎝밖에 자라지 않은 것 같아요.”

딱 한번 필름이 끊긴 기억이 있다. 고교 1년 때. 사귀던 여자친구와 포장마차에서 소주 6병 가량을 마셨는데 거의 혼자 다 마셨다. 그리고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 여자친구의 오빠를 우연히 만나 또 다시 5병을 마셨다.

“그날은 포장마차에서 나가던 일.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운 일 등 몇몇 장면만이 스쳐서 기억이 났어요. 원래 술을 마셔도 토악질을 하지 않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윽~. 그 이후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시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술잔은 연신 비고 술 따르는 손이 바쁘다. 기자의 얼굴은 벌써 불게 달아오른다. “앨범 준비는 잘 되가느냐”는 질문에 “아. 뒷목이 뻣뻣해진다”며 그의 엄살이 이어진다.

“술 더 취하기 전에 우리 음악 모니터를 해보죠.” 손호영이 금방 완성된 노래를 틀었다. 노래가 나오자 주변의 반응에 긴장을 한 채 기자의 눈치를 살핀다.

손호영이 타이틀곡 <운다>를 들려주며 라이브 음악까지 곁들인다. 좋은 사람과의 술자리에 음악까지 더해지니 오늘 분위기 좋~다. 분위기에 취했는지 술잔 비는 속도가 빨라졌다.
<centER><img src='/component/htmlphoto_mmdata/200609/htm_200609061302290201000002010200-002.jpg' ></center>
<b>●벼랑 끝에서 만난 god </b>

술 마시며 얘기를 나누다보니 꽤 문제가 많은 청소년기를 보낸듯하다. 예의 바르고 곱게 자란 모범생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쁜 아이였어요. 싸움하고 술마시고…. 싸움은 짱은 아니었지만 어디가서 맞고 다니진 않았어요.”

그의 청소년기를 괴롭힌 건 아버지와의 갈등이었다. 부모는 그가 어린시절 이혼했다. 엄격한 규칙을 강조하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그는 집안에선 편안하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버지 앞에선 무서워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어요. 오후 5시까진 집에 들어와야 했고. 조그만 잘못에도 체벌을 하셨어요. 골프채·방망이 등으로 맞기도 했고요. 노력해서 반에서 6~7등 해도 아버진 화를 내셨어요. 늘 전교 1등을 하던 아버지의 성에 찰리가 없어던 거죠.”

그럴수록 그는 집안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밖으로만 돌았고 가출을 반복했다.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인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아버지가 무서워서 용돈을 달라는 말도 못했어요.”

손호영은 고등학교 2학년때 가출해 3년간 가족과 연락을 끊었다. 가출 후 생활이 어려웠던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

“분식점 서빙. 유흥업소 호객행위까지 닥치는대로 했지만 오전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먹고 사는 것 조차 힘들었어요. 삶에 희망이 보이질 않았고 차라리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곡기를 끊고 쓰린 속에 소주만 부어댔어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god 멤버를 찾고 있던 데니안을 우연히 만나면서 인생항로가 바뀌게됐다. “데니 형을 봤는데 정말 잘생기고 멋져서 ‘나도 저런 사람 처럼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죠. 그룹 멤버가 된다는 생각에 더 고민할 것도 없이 god에 합류해 일산 숙소로 향했죠.”

합숙을 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3년 만에 god의 1집을 들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깜짝 놀랐어요. 늙으신 아버지를 보구요. 그때부터 아버지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었고. 속에 있던 말을 하게 됐어요. 아버지는 왜 그런 말을 지금까지 해주지 않았냐고 하시더군요. 전 그냥 무서워서 그랬다고 했구요. 아무일도 아닌 갈등을 키운 것이죠.”

<B>●god는 내 피붙이 </b>

길지 않지만 그의 인생에서 god는 인생 최대의 축복이자 기회였다. 2001년 <길>로 골든디스크 대상. 방송 3사 가요대상을 휨쓸었다.

god가 인기를 얻기까지 고생스러운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꿈같이 아름답기만하다. god 멤버가 짜여진 후 곧바로 IMF가 터졌고 소속사는 god를 1년 가량 방치했다.

“간혹 준형이 형이 시트콤에 출연해 우리가 아르바이트한 돈과 멤버들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했어요. 소속사에선 1년 동안 방치하면 당연히 집에 갈 줄 알았대요. 그러나 헝그리 정신으로 뭉친 god가 흩어질 리가 없죠.”

그야말로 동고동락를 같이한 god이기때문에 멤버들에 대한 애틋함이 각별할 수 밖에 없다. 국민그룹 god에도 고비가 있었다. 5집을 끝으로 멤버 윤계상이 탈퇴했다.

“솔직히 (윤)계상이 형에게 서운했어요. 사람이니 그런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형이 나름대로 그리는 삶이 있었어요. 서운할 수는 있지만 우린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죠. god이니까요. 계상이 형 탈퇴 후에도 무조건 god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앨범을 준비했습니다.”

지난해 마지막으로 god 앨범 활동을 하며 그에게는 개인적인 시련이 닥쳤다. 전 계모와 부친의 이혼소송이 불거지면서 폭로전이 벌어졌다.

“마지막 공연 중에 이혼소송에 대한 일이 알려지면서 시끄러워졌어요. 멤버들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그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줄줄 흘렸어요. 앨범 수익금은 모두 그 일에 들어갔죠. 돈 한푼 벌지 못했어요. 지금 다시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에요. 바빠질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줄 모르실거예요. ”

기자가 힘내라며 손호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또 술잔이 비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 기자가 “요즘엔 시간 없어 연애도 못하겠다”며 슬쩍 속을 떠봤다. “에휴~. 연애를 정식으로 해본지가 몇 년이나 됐는지 이제 기억도 안나는데….”

중학교 3학년때 만나서 데뷔하기 바로 전까지 사귄 여자친구가 그의 기억에 남은 첫 사랑이다. 데뷔 후 유명 여자가수와 2년 여를 사귀었다.

“한 번 사귀면 깊이 진심으로 만나는 스타일이죠.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 평범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 큰 꿈이긴 해요. 그런데 요즘은 고민이 많아서 연애 할 자신도 없어요.”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솔로 앨범이다. “가수로서 누릴 수 있는 인기는 god로 다 받은 것 같아요. 더 이상 무슨 상을 받고 인기를 얼마나 얻고는 정말 중요치 않아요. 그저 god로서 망신을 시키지 말아야한다는 책임감이 크고. 음악에 진심어린 박수를 받고 싶어요.”

청주 몇 병이 비고 기자도 손호영도 볼이 달아올랐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며 손호영은 god 멤버들의 ‘결의’를 들려줬다.

“개인 활동 전 god 멤버들과 한 약속이 있어요. 절대 망가지지 말자는 것이죠. 모두 멋지게 늙어서 god의 나이든 팬들을 위한 끝내주는 공연을 하자고 했죠.”

그룹 god의 30. 40주년 기념 공연을 볼 날을 기대하며 오늘의 술자리를 마무리했다. 술취한 후 산책이 잘 어울릴 만큼 바람이 선선해졌다.

이경란 기자 [ran@jesnews.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esnews.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