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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61

◎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백범 종종 조만식 밀서 받아/남로당선 홍명희 통해 접근 시도하기도
환국 후 김구가 머무르는 경교장과 이승만이 있는 돈암장은 당시에는 서울에서 제일 가는 호화주택이었다. 집주인들은 둘 다 친일부호였다.
경교장은 집안에 당구장도 설치되어 있었다. 1944년 겨울 심산과 우리 독립동지회가 중경의 백범에게 파견한 김찬기의 유골을 환국길에 백범이 가지고 왔었다.
김찬기는 중국에 갔다가 일본군에 체포돼 고문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숨지고 말았다.
심산의 큰아들 환기는 상해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둘째아들 찬기도 또 일본군에게 죽음을 당했다. 지금 남은 것은 셋째아들 형기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찬기의 우인대표로 심산집에서 추도회를 가졌다. 친지 몇 사람만이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정당인으로서는 공산당에서 해방일보 편집위원인 강병도가 참석했다. 심산우인으로서는 벽초 홍명희가 왔다. 나는 추도사를 읽었다. 심산방에 들어가니 그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천장만 쳐다보며 담배만 버끔버끔 피우고 있었다.
벽초도 위안할 말을 잃은 채 묵묵히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늦게 백범이 찾아왔다. 김찬기의 추도식에 벽초와 백범이 만사를 제쳐놓고 찾아온 것을 보니 이 두 분이 심산과 제일 친한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심산은 백범에게 나와 김찬기와의 관계를 자세히 이야기하며 나를 그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 후로부터 나는 경교장 2층의 백범방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경교장 2층의 백범방은 황금색 비단으로 도배한 방이었다.
내가 경교장에 들르면 임정 선정부장 엄항섭은 으레 내가 2층 백범방에 갈 줄 알고 2층으로 안내하곤 했다.
백범은 언제든지 만나면 『나는 청년을 좋아하네』하며 윤봉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말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백범은 정말로 입담없는 분이었다. 홍명희는 학식이 많아 화제가 풍부하고 이야기도 잘했었다.
백범은 화제가 별로 없고 어찌하면 대한임정의 법통을 이 나라에 확립할까 하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양복을 잘 안 입고 늘 한복을 입고 있었다. 김규식도 한복을 많이 입고 있었다.
한번은 내가 백범방에 들어가니 외출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범이 일어서니 견장이 안 달린 미군복 같은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백범에게 두루마기를 입히고 모자를 씌운 후 1층으로 안내해 구두와 지팡이를 챙겨주었다. 그때 백범의 시중을 들고 있던 젊은이가 지금 생각하니 장준하씨였던 것 같다.
원래 정치가가 되려는 사람은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한 게 통례지만 우남이나 백범도 전 한국사람이 모두 자기를 지지하고 있다고 맹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백범은 평양의 조만식으로부터 밀서를 종종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북동포가 전부 자기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백범이 측근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평양에 간 것도 이같은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중요한 배경은 평양의 김일성이 5·10선거를 파탄시켜 이승만 정권을 수립 못 하게 하기 위해 백범이 평양의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해주면 남조선에서 비록 단독정부를 수립해도 이북에서는 이에 대항하는 정부를 수립하지 않겠다는 밀서를 보내온 것이었다.
또 남로당에서도 홍남표가 홍명희를 시켜 백범에게 공작도 했었다. 백범은 황해도 출신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굉장했었다.
이에 비해 경북 성주 출신인 김창숙은 이북의 김일성에 대해서는 「부지소종래」(어디서 온지도 모른다)라 하여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조선은 하나이며 서울이 수도이니 서울에 수립되는 정부가 유일한 중앙정부라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
김일성이 정말로 독립운동을 했다면 왜 서울에 와서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고 평양의 소련군 밑에 숨어 평양에서 딴전을 피우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대체로 김창숙은 김일성에 대해서는 백범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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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