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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제 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

서북5도 공산당의 지도자 현준혁을 백주에 압살해버린 소련군정치부와 김성주는 1국1당원칙을 파괴하고 38이북지역에 소련군 정치부가 직접통제 지도하는 분파당을 만들기 위해 45년10월10일부터 10월13일에 걸쳐 서북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조작해 낸다.
현준혁은 죽였어도 이북 5도 당 간부 가운데는 민족적 자주성을 지키려고 서울 중앙당의 통일적 지도를 받아야된다는 일국일당 주의자가 다수였다.
김성주·김용범·박정애 등은 소련군 정치부의 지도아래 국내파를 하나하나 협박, 회유하였다. 함남도당 책임자 오기섭도 평양에 끌려가 할 수 없이 참가하게 되었다.
대회 나흘째인 13일에 분국 설립의 결정서를 채택하고 책임 비서를 선출했는데「자칭 김일성」, 즉 김성주가 선출되지 않고 김용범이 선출되었다. 소련군 정치부는 10월11일 평양시민대회를 열어 김성주를「김일성 장군」이라 날조, 발표하고 서둘러 개최한 서북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에서도 김성주는 끝내 북조선 분국의 책임비서나 제2비서에도 선출되지 못했다.
이 무렵 연안독립 동맹의 김두봉·무정·최창익은 독립투쟁의 명성을 앞세우면서 북조선으로 「개선」해 들어왔다.
그러나 평양의 자칭 김일성은 소련 공작원의 김성주로서 소련 군용 선박을 타고 원산에 상륙한 후 50여일 동안「김일성 장군」으로 화신하기 위해 별별 연극을 꾸몄으나 끝내「개선」하지는 못했다.
10월14일 평양 운동장의 시민대회에 33세의 새파란 청년이 자칭 김일성 장군이라고 나타났을 때 평양 사람들은 너무나 철면피한 수작에 놀라며 가짜라고 공공연히 분노의 소리를 터뜨렸다. 이는 동유럽과 북조선을 자기들의 손아귀에 잡아 쥐려는 팽창주의자 스탈린과 첩보 공작 책임자인 부수상경 내무상 베리야의 음모였다.
김성주는 베리야의 담당 지휘하에 있던 소련 내무성 극동 국경 경비대 대일 공작부대에 소속하고 있던 공작원이었다.
평양사람들이 김성주를 김일성이라 믿으려하지 않고 별별 소문이 나자 소련군 정치부는 한재덕과 한설야를 이용하였다.
한재덕은 김성주를 평양시내로 데리고 다니면서 네거리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약장사가 엉터리 약을 속여 선전하듯이「여러분! 여기 서 계시는 이분이 바로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한 저 유명한 김일성 장군 입니다…」하고 선전했다.
한재덕은 이 공로로 뒤에 조선 중앙 통신사의 사장에까지 올랐으나 51년1월 쫓겨났고 두번이나 대남 공작원으로 남파돼 결국은 알콜 중독자가 되어 김일성에 대한 원망과 자책으로 수치스런 생애를 마치고 만다. 한설야는『개선』이란 소설과 『만경대』라는 책으로 김성주를 김일성 장군이라 조작해 내며 개인숭배 사상을 퍼뜨렸다.『만경대』는 북한 초급학교의 교과서로 채택되기까지 했다.
한설야는 가짜 김일성을 마치 옛날 중국의 봉건 군벌 항우와 같은 영웅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만경대』는 초급학교 교원 교육 연수회에서 초인적 힘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 김일성 장군을 인민의 영웅, 지도자로 가르치기에는 적합치 않다는 비판과 저항을 받았다.
한설야는 그후「김일성」에게 아부하여 문예총 위원장이 되어 남에서 월북한 작가 이태준·임화·김남천 등 우수한 문인들을 제거하는 음모의 중심이 되었다. 내가 평양에 있을 때 문화예술 총 동맹 회관에서 임화의 강연회가 있어 들으러갔다가 마침 한설야의 바로 앞자리에 앉았었는데 뒤에서 한설야가 나를 향해「저 새끼 얼마 안가서 죽을 새끼가 뭣을 씨부리고 있어」라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비수로 심장을 찔리는 듯 하였다.
그 2년 후 남노당에 대한학살이 시작되자 제일먼저 체포된 사람이 임화였다.
김일성 일파의 남노당에 대한 학살음모는 벌써 그 몇 년 전부터 음모, 계획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설야는 남로당 학살의 음모 뿐 아니라 연안파·소련파 숙청 음모에도 참가하여 그 공으로 교육상(문교장관)에까지 출세하고, 친구의 딸을 비서라는 명목으로 첩을 삼으며 온갖 타락된 생활을 하다가 드디어 김일성에게 맞아죽고 말았다. 현재 북한에서는 한설야의 작품은 몰수당하고 그의 존재까지 말살 당하고 말았다. 김일성에게 아부한 사람치고 한 사람도 말로가 좋은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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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