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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

이정윤 아지트에 있을 때도 북조선 정보는 어느 정도 들어 약간 알고있었지만 해방일보에 들어가서부터는 보다 명확히 알수 있었다. 북조선 공산주의자들이 서울의 공산당 중앙 위원회에 오기도 하고 또 서울에서 평양에 갔다온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에는 서울의 박헌영「중앙」을 절대 지지하는 현준혁이 있었다. 현준혁은 평남 개천사람으로 경성제대 학생시절 독일 공산당원이었던 삼우녹지 조교수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에 눈을 떠 이강국·정태식과 같은 계통의 인물이 됐다. 그는 졸업 후 대구 사범학교의 교원을 하면서 독서회를 조직하여 6년의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해방이 되자 8월17일에 조선 공산당 평남 지구위원회를 조직, 곧 서울의 이강국을 통하여 박헌영과 연계를 갖게 되었다.
그때 평양에는 김용범·박정애가 소련 측으로 전향하여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박정애는 함남 장진출신으로 해방전 평양에서 고무공장의 파업을 주도했던 일이 있었다.
그녀는 소련에 오랫동안 체류해 러시아어에 능통했고 처음에는 소련군 사령부의 통역을 하여 김용범과 함께 완전히 소련의 앞잡이가 되었었다.
신의주의 백용귀, 해주의 송봉욱, 원산의 이주하, 함흥의 오기섭·주영하, 청진의 장순명 등이 박헌영 지지의 유력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서울의 조공중앙에서는 이북 각도에 오르그를 파견하고 있었다.
이것은 코민테른과 소련공산당이 주장해온 일국일당 원칙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1945년5월에 최후적으로 독일 베를린을 점령한 후 동구에서 토착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고 모스크바에서 양성한 앞잡이 공산주의자들을 파견, 각국 공산당을 지배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북조선에서도 그와 같은 형식을 취하였다. 그런데 동유럽제국과는 달리 조선에는 두 가지 난점이 있었다.
하나는 그들이 점령한 평양이 조선의 수도가 아니고 지방도시라는 점과 조선의 수도 서울에 이미 1925년의 조선 공산당을 계승하는 공산당 중앙이 재건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앞잡이로 내세울 적당한 지도자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소련에 망명한 김단치·양명 등 기타 유능한 공산주의자가 상당수 있었으나 스탈린은 그들을 민족주의 편향자라 하여 숙청도 하고 연금도 하여 해방된 조선에 내보내지 않았다.
그대신 소련군 정치부는 허가이·박창옥·남일(이상 소련 국적) 김성주·김책·최현·안
길·김일(이상 소련 공작원) 등 조선 공산당과는 관계가 없는 자기들 앞잡이들을 데리고 왔다.
이들 소련 앞잡이 파가 소련군의 배에 실려 8월23일 원산에 상륙할 때는 김일성이란 이름은 없었다. 김성주는 평양에 도착하여 이름을 김동환이라 칭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소련 첩보부의 공작원으로서 제5호실이라는 음모·첩보부를 조직케 된다.
김성주가 거처하는 주택을 제5호 주택 또는 제5호실이라 했는데 뒤에 이것이 북노당의 연락부로 확대 강화됐고 이 연락부는 오늘날까지 남한 타도공작의 참모부가 되며 북한의 정적 암살 본부가 된다.
김성주가 김동환의 이름으로 원산에 가서 이미 이주하가 조직한 원산 시당을 분열시킬 공작을 할 때 이주하는 김동환을 당의 분열 파괴분자로서 체포하였다. 그러자 곧 소련군 사령부에서 석방하라는 명령이 전달되었다.
김용범·박정애 부부는 소련군 정치부와 김성주의 앞잡이가 되어 이주연과 장종식을 포섭하였다. 그들은 과거 조선 공산당 재건운동에 참가한일도 없는 자들이었다.
평양의 현준혁, 함흥의 오기섭, 원산의 이주하 등 국내파들은 일 국일 당 원칙을 내세워 서울 중앙과 별도의 당을 만드는데 절대 반대하였다.
김성주 일파의 5호실 공작대는 9월26일 소련군 정치부에 갔다 나오는 현준혁을 평양시청앞 길에서 대낮에 암살해 버렸다.
함흥의 오기섭을 그의 지반인 함흥에서 떼어 평양으로 소환하여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하였으나 오기섭은 굴복하지 않았다.
오기섭은 이때까지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일국일당 원칙을 거꾸로 들고 나와 평양에 소련공산당의 괴뢰인 북조선 공산당 중앙을 만드는 것을 일시적으로나마 막아냈다.
그러나 결국은 양측 타협의 산물로 38선 이북에 조선 공산당 분국을 만들게 되었다.
이북 분국은 원칙적으로는 박헌영의 조선 공산당 하부기구였으나 현실적으로는 북조선 5도당을 장악하게 되었다.
1945년 10월13일 이북5도 당 열성자 대회를 개최, 결정서에 『서울의 당 중앙에 충실히 복종할 것을 맹세한다』고 명기하고 조선 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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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