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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같은 성(姓) 써야"…日 합헌 결정에 "시대착오적" 반발 커져

"굉장히 기대하면서 혼인신고서를 써 왔는데…앞으로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할까요." 

 
23일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부부동성(同姓) 제도'에 대해 합헌(合憲) 결정을 내리자 원고단의 40대 커플은 깊은 실망감을 토로했다. 전날 두 사람이 함께 작성했다는 혼인신고서를 손에 들고서다. 부부동성제는 결혼 후 남편과 아내가 같은 성(姓)을 쓰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日 최고재판소, '부부동성' 합헌 판결
2015년에도 같은 판결, "합리성 있어"
"법원이 너무 시대착오적" 비판 확산

 
일본의 대법원인 최고재판소. [연합뉴스]

일본의 대법원인 최고재판소. [연합뉴스]

이번 소송을 제기한 것은 도쿄에 거주하는 사실혼 커플 3쌍. 혼인신고를 하면 둘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성을 포기하고 상대의 성으로 바꿔야 하는 게 싫어 사실혼 관계를 선택했다. 이들은 지난 2018년 부부 중 한쪽의 성을 고르도록 한 혼인신고서 항목에 양쪽 성 모두를 적어 구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지자체가 받아주지 않자 가정법원에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과 혼인의 자유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법원은 부부동성 규정은 합헌이라며 신청을 각하했고, 고등법원에 이어 이번에 최고재판소에서도 판사 15명 중 4명을 제외한 11명이 합헌으로 판단했다. 최고재판소는 이미 2015년에도 '부부는 결혼하면 남편 또는 아내 성을 따른다'는 민법 규정 등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에도 재판부는 6년 전처럼 "부부동성 제도가 사회에 이미 정착됐고, 합리성이 있다"는 근거를 들어 합헌 판결을 내렸고 "바람직한 제도는 국회에서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며 공을 입법부에 떠넘겼다. 
 

최고재판소 재판관 15명 중 여성은 2명

일본에서 부부동성이 제도화된 것은 귀족 등에만 허용됐던 성이 국민 모두에게 확대된 메이지(明治)유신 이후다. 1898년 아내가 남편 쪽 성을 따르도록 한 민법 규정이 생겼고 1947년 부부 중 한쪽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바뀌었지만, 현재도 남편의 성을 따르는 비율이 95%를 넘는다.
 
일본 최고재판소 대법정. [연합뉴스]

일본 최고재판소 대법정. [연합뉴스]

 
1990년대 이후 양성평등 의식이 확산하면서 결혼 후에도 부부가 각자의 성을 그대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국민의 70%가 선택적 부부별성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2000년대 들어 여러 차례 일본 정부에 부부동성 제도 개정을 권고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최고 사법기관이 두 번이나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판결을 내린 데 대해 반발이 나오고 있다. 원고들은 "법원은 왜 개인의 권리를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가"라며 분노했다. TV아사히는 23일 "재판관 15명 중 여성은 2명뿐"이라며 "이런 법원의 성별 불평등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논평했다. 
 

'아베 때문에' 진도 못 나간 정치권

일본 정치권에서도 선택적 부부별성제 논의는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1996년 법무성이 주도해 부부별성제가 포함된 민법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자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자민당 보수파들은 "부부가 다른 성을 쓰면 가족의 정이 깨진다"는 이유를 들며 논의 때마다 번번이 발목을 잡아 왔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부부별성제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아베 집권 8년간 논의는 지지부진해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선택적 부부별성제가 "일본의 전통을 파괴한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선택적 부부별성제가 "일본의 전통을 파괴한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교도=연합뉴스]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찬성하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집권하면서 자민당 내 찬성파가 목소리를 내는 등 분위기는 변하고 있다. 현재 연립여당인 공명당과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공산당 등 야당은 모두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에 찬성 입장이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아즈미 준(安住淳) 국회대책위원장은 23일 최고재판소 결정에 대해 "구식이다. 시대에 맞는 대응을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호소하고 싶다"고 말해 올가을 열리는 총선에서 이 문제를 쟁점화하겠단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으론 '부부동성제' 위헌 판결 소송은 계속 이어진다. IT기업 '사이보즈'의 아오노 요시히사(青野慶久) 대표가 원고로 참여한 소송도 현재 2심까지 패소해 최고재판소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아오노 사장은 혼인신고를 위해 아내의 성으로 바꿨지만, 사회생활에선 원래 성인 '아오노'를 사용한다. 그는 24일 자 아사히 신문에 "재판이 있을 때마다 여론이 움직인다"면서 계속해서 사법적인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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