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자유 언론 끝났다"…빈과일보 마지막 밤, 빗속에 모인 홍콩 시민들[영상]

“빗속에서 가슴 아픈 작별. 우리는 빈과(사과)를 지지한다.”

 
홍콩의 대표적 반중(反中)매체 빈과일보(蘋果日報)가 24일 발행한 마지막 신문의 1면 기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창간 26년 만의 폐간을 알린 신문은 1면 사진에 스마트폰 조명으로 사옥을 비추는 지지자의 모습을 담았다.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표현한 로고도 그대로였다. “선악과를 따지 않았더라면 악(惡)도 없고 뉴스도 없을 것”이라며 사주인 지미 라이(黎智英)가 정한 로고다.  

대표적 반중 성향 언론…24일자로 폐간
홍콩 시민들 가판대에 줄서 마지막 신문 구매
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 자산 동결 당해
"이제 홍콩에서 목소리 낼 언론사는 없을 것"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홍콩보안법의 벽을 넘지 못하고 24일 폐간했다. 빈과일보의 24일자 1면. 연합뉴스

홍콩의 대표적 반중매체 빈과일보가 홍콩보안법의 벽을 넘지 못하고 24일 폐간했다. 빈과일보의 24일자 1면. 연합뉴스

이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등 홍콩 언론에 따르면 수백 명의 시민들은 마지막 신문이 발행되기 전날 밤 홍콩 동부 정관오(將軍澳)에 위치한 빈과일보 본사로 몰려들었다. 빈과일보의 마지막 밤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오후 11시 45분 람만청(林文宗) 집행총편집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문 강판(편집 완료 후 인쇄 시작)을 지시한 뒤 직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에 직원들은 모두 일어나 “힘내자(Keep it up) 홍콩”을 외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건물 밖에서 기다리던 시민들도 “고맙습니다. 지미 라이. 고맙습니다. 빈과일보 직원들”을 외쳤다. 이들 중 몇몇은 지난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 시위 당시 사용했던 노란색 우산을 펼쳐 들었다.
 
오전 0시 20분께 빈과일보 직원들은 건물 밖으로 나와 단체 사진을 찍고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곧이어 정문에서 마지막 신문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23일 오후 11시 45분 람만청(林文宗) 빈과일보 집행총편집인(검은 마스크)은 마지막 신문의 강판을 지시했다. [AFP=연합뉴스]

23일 오후 11시 45분 람만청(林文宗) 빈과일보 집행총편집인(검은 마스크)은 마지막 신문의 강판을 지시했다. [AFP=연합뉴스]

같은 시각 홍콩 거리의 신문 가판대에는 긴 줄이 늘어섰다. 빈과일보의 마지막 신문을 사려는 시민들이 몰려들면서다. 한 시민은 “빈과일보가 폐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오후 10시부터 가판대에 나와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음 날 오전 0시 55분쯤 첫 인쇄분이 도착할 때까지 3시간가량을 기다렸다. 이날 빈과일보는 평소보다 12배 많은 약 100만 부를 발행했다.
 
앞서 빈과일보의 모회사 넥스트디지털은 23일 폐간을 결정했다. 홍콩 당국이 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사주, 편집장, 주필 등을 체포하고 회사 자산을 동결한 뒤다. 빈과일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구독자에게 알리는 글’이라는 안내 문구만 올라와 있는 상태다. 넥스트디지털이 소유한 자매지 이저우칸(壹周刊)도 23일 운영을 중단했다.
 
지난 17일 홍콩 당국은 경찰 병력 500여명을 동원해 빈과일보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어 1800만 홍콩달러(약 26억원)의 회사 자산도 동결했다. ‘국가 안보에 관련된 정보를 외국에 제공하는 행위’ 등 외국 세력과의 결탁을 금지하는 보안법 29조를 위반했다는 혐의다. 이미 지난해 8월 라이 사주와 그 아들 등 9명도 보안법 29조 위반으로 체포됐다. 입법 당시부터 자의적 적용 가능성에 가장 논란이 컸던 조항이다.
 
시민들이 24일 새벽 사옥 앞에 몰려와 마지막으로 발간된 신문 1면을 펼쳐 보이며 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민들이 24일 새벽 사옥 앞에 몰려와 마지막으로 발간된 신문 1면을 펼쳐 보이며 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빈과일보는 지난해 6월 30일 홍콩 보안법 발효 이후 폐간한 첫 언론사가 됐다. 신문은 1995년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로 성공을 거둔 사업가 라이가 창간했다. 초기에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보도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95년부터 2006년 사이 음란물 법령 위반으로 56차례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003년 홍콩 보안법 반대 시위, 2014년 ‘우산 혁명’을 계기로 홍콩 정부와 중국 당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대표적인 반중 매체로 자리 잡았다.
 
SCMP는 "이번 폐간 사태에 시민들은 더이상 목소리를 낼 언론사는 없을 것이고, 언론의 자유도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24일 빈과일보의 폐간을 다룬 홍콩 한 매체의 만평. 빈과일보를 상징하는 사과가 땅에 떨어졌지만 그 씨앗이 사과나무로 자라 수많은 사과가 열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스탠드뉴스 갈무리]

24일 빈과일보의 폐간을 다룬 홍콩 한 매체의 만평. 빈과일보를 상징하는 사과가 땅에 떨어졌지만 그 씨앗이 사과나무로 자라 수많은 사과가 열리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스탠드뉴스 갈무리]

빈과일보의 갑작스러운 폐간은 국제적으로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보안법을 통해 뉴스와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고 언론 자유를 심각히 파괴하는 행위"라고 중국과 홍콩 당국을 비판했다. 
 
이에 EU 주재 중국 사절단 대변인은 "유럽이 언론 자유를 명분으로 홍콩 문제와 중국 내정을 노골적으로 간섭하고 있다"면서 "이는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 원칙을 심각히 위반한 것으로 강한 불만과 강력한 반대를 표명한다"며 반발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드는 국제뉴스
알고 싶은 국제뉴스가 있으신가요?
 
알리고 싶은 지구촌 소식이 있으시다고요?
중앙일보 국제팀에 보내주시면 저희가 전하겠습니다.
- 참여 : jglobal@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