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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슬기로운 한·일 외교

김현기 순회특파원

김현기 순회특파원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흥미로운 통계치를 들었다. 한국의 형사사건 중 80%는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는데, 일본은 거꾸로 80%가 혐의를 자백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지인은 “한국인은 범죄를 저질러도 ‘버티면 뒤집어질 수 있다’ ‘나보다 상대방이 더 잘못했다’는 자기중심적 생각이 강한 반면, 일본인은 ‘빨리 인정하고 용서를 받아야 내 주변이 편해진다’는 집단중심적 생각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이 통계치는 양국의 국민성, 문화 차이를 보여준다. 정치와 외교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주관적 결과를 중시한다면 일본은 집단적 절차에 집착한다.
 

약식회담 불발 놓고 서로 책임전가
한국은 결과, 일본은 절차 봤기 때문
상대국에 대한 무지, 악의 넘쳐나니
당분간 가만있는 게 슬기로운 외교

지난 11~13일(현지시간) 영국 콘웰에서 열렸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도 그랬다. 양국은 약식회담 불발의 책임을 놓고 치열하게 맞섰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지 복기해 보자. 서울과 도쿄의 복수 외교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전후 사정은 이랬다.
 
양국은 영국 현지에서 약식회담을 10분가량 하는 방향으로 ‘잠정 동의’(한국은 ‘잠정 합의’로 인식)했다. 그런데 정상회의 만 하루 전인 한국시간 11일 한국 국방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한국 해군의 동해 영토 수호훈련이 15일부터 열린다”고 통보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일본은 훈련이 열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날짜는 이때 처음 전달받았다고 한다. 그러자 다급해진 일본은 “그렇다면 회담을 취소하는 건 어떠냐”고 한국 측에 요청했다. 논의 끝에 결국 회담은 없던 일로 됐다. 언론에는 무산 이유를 “일정 등의 사정으로…”로 밝히기로 합의했다. 다만 G7 정상회의 현장 분위기에 맞춰 ‘애드리브(즉석) 회담’을 할지, 안 할지는 순전히 두 정상에게 맡기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수차례 애드리브 회담을 시도했고, 스가 총리는 예상대로 이를 모두 피했다. 외교적 순발력이 떨어지는 데다 2019년 11월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당시 문 대통령-아베의 즉석 비공개 약식회담 장면을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찍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렸던 ‘아픈 기억’도 떠올렸다는 후문이다. 당시 관방장관이던 스가 총리는 사태가 불거지자 “한국의 대응 하나하나에 언급하지 않겠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현한 바 있다.
 
그래서 결론. 한국과 일본의 말, 둘 다 틀리지 않았다. 한국이 볼 때는 일본이 동해 수호훈련을 이유로 취소를 건의해 왔고, 애드리브 회담도 피했으니 “문제는 일본”이라 하는 게 맞다. 한편 일본이 볼 때는 “취소하기로, 그리고 그 이유까지 양국이 사전 합의했는데 어떻게 이게 일방적 약속 취소냐”고 발끈하는 것도 맞다. 한국은 결과, 일본은 절차만 보니 그렇다. 서로 다른 지점을 보고 있었던 게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상대방의 사고·스타일에 대한 무지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가 총리는 귀국 후 “(현지에서) 가장 경계한 것은 한국이었다”고 말했다(아사히 신문). 북한이나 중국을 경계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일본 총리의 입에서 이런 말은 처음 듣는다. 한국 또한 마찬가지. 청와대와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총출동해 “심술을 부린다” “유치찬란하다” 등 일본 조롱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이쯤 되면 상대방에 대한 악의다.
 
무지와 악의의 한·일 외교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선 문 대통령이 다음 달 도쿄 올림픽 개회식에 간들 두 정상이나 양국 국민 모두 유쾌할 리 없을 것 같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문 대통령은 개회식에 참석한 아베 총리와 1시간 동안 양자회담을 했다. 이번에는 1시간은커녕 양자회담도 힘들 것이라고 스가 총리 측근은 전했다. 게다가 조만간 나올 일본의 방위백서도 아슬아슬하다.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지만 한국이나, 일본이나 당분간 서로 가만히 있는 게 슬기로운 한·일 외교 같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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