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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퍼스펙티브] 5060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정치 교체를 위하여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지난번 이 자리에 대한민국 정당들이 정부 수립 이후로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썼었다. 70년 넘도록 나눴다 다시 합치고, 이름 바꾸고 색깔 달리 칠했어도 결국 그게 그거였다. 겉만 번드레할 뿐(결코 참신하진 않았다) 내부의 찌든 때는 더욱 ‘고색창연’해졌다. 여건 야건, 보수건 진보건 마찬가지였다.
 

정권 교체는 7부 능선 넘은 듯
공정 중시 MZ세대가 시대의 주인
산업·민주화 이룬 5060 물러나야
유권자 바라는 정치 교체 이룬다

실제로 더욱 교활해지기까지 했다. 지난 21대 총선 때 등장한 ‘대놓고 위성정당’들은 과거라면 부끄러워서 차마 생각하지도 못할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버젓이 만들어져 목적을 달성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런데도 부끄러워하는 이들은 없었다. 유권자들의 분열과 갈등을 악용한 작태였다. 유권자들이 개·돼지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역시 여건 야건, 보수건 진보건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다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제껏 여의도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제법 신선한 바람이다. 그 흔한 국회의원 한번 못 해본 정치 경력 10년의 36세 정치인이 제1야당 대표로 선출된 것이다. 그 바람에 벌써부터 정권 교체니, 세대교체니, 정치 교체니 얘기들이 많지만 섣부르다. 돌풍이라지만 이준석 대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 까닭이다.
 
사실 정권 교체와 세대교체, 정치 교체 중에서 가장 쉬운 건 정권 교체다. 내가 보기에 정권 교체는 7부 능선을 넘었다. 역시 섣부르다는 거 인정하지만, 워낙 현 정권이 ‘뻘짓’을 많이 했고 계속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달라질 가능성이 없어 보이니 할 수 있는 말이다.
 
가장 쉬운 게 정권 교체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이훈범의 퍼스펙티브

세대교체나 정치 교체는 다르다. 흔히 이준석 대표의 당선이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에게 소구한 결과라고 하지만, 그것은 4분의 1만 맞는 답이다. 민심이 (40대만 빼고) 전 세대에서 정권에 등을 돌리고, 제1야당의 고루한 당심 역시 민심과 어긋나는 걸 두려워하기 시작한 결과인 것이다. 2016년 총선에 이어 내리 4연패 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거였다.
 
대한민국 국민이 어수룩하면서도 현명하다. 참고 봐주다가도 회초리를 들 때는 가차 없이 혼낸다. 21대 총선 결과는 현 정권 지지가 아니라 보수 야당 응징이었다. 그렇게 말아먹고도 알량한 기득권 싸움이나 벌이는 데 대한 징벌이었다. 야당은 충격에 빠졌고 여당은 오만에 빠졌다.
 
오만의 끝은 독선이다. 야당의 잘못들을 여당이 고스란히 답습했다. 어처구니없는 검찰개혁으로 국정을 농단했고, 친문·친노로 뭉쳐 갑질을 해댔다. 그 더럽고 냄새나는 얼굴을 씻을 생각은 안하고 화장으로 가리려 들었다. 얼룩은 덮었지만 악취는 막지 못했다.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시범적 응징이 지난 4월의 재·보궐선거였다. 이 선거에서는 익히 예견됐던 여당의 참패보다 주목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정의당이 후보조차 내지 못한 사실이었다. 비록 당 대표의 성추행 사태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앞선 총선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던 게 더 컸다.
 
자신에게 유리한 틀을 만들려고 정의당으로서는 생명과도 다름없는 ‘공정 절차’를 무시한 채 여당과 야합했던 것이다. 하지만 위성정당이라는 꼼수에 말려 성과 없이 명분만 잃었다.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은 게 더 뼈아팠다. 정의당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이 대목에 밑줄을 그었어야 한다.
 
공정은 정의당의 최대 지지층인 젊은 세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뤄지고 난 이후 자의식이 형성된 ‘MZ세대(1981~2010년 출생자)’에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취업도 어렵고 기껏해야 비정규직 일자리에 기대야 하는 ‘88만원 세대’, 그러다보니 결혼은 꿈도 못꾸고 연애조차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라 불리던 그들에게 정치권은 그 절망적 현실을 건널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했다.
 
보수·진보 너머 비전 제시했어야
 
하지만 ‘건국 이래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는 비극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들에게 정치권은 부모세대의 학력과 자산이 대물림되는 세습 격차,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기회조차 독점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기정사실화했을 뿐이다. 보수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도덕성을 내세우던 진보 정당 역시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심지어 정의당마저 반칙을 용인하는 꼼수에 편승했던 것이다.
 
이들 세대의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라는데 있다. 공동체보다 내가 먼저다. 자기 삶에 직결되는 이해관계에 따라 진보편에 섰다가 보수 쪽으로 옮겨갔다 하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바라는 건 한가지다. 공정한 게임의 법칙이다. 특혜는 안 줘도 되니까 방해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90년대생 시선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본 책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27)은 자신들에게 공정이란 “불안을 키우지 않는 것,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심리적 위축과 불안이 일상인 이들에게 최소한의 마지노선은 국가 시스템, 시험제도다. 개혁이든, 특혜든 쓸데없이 개입해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지 말라, 시스템을 교란하지 말라는 요구 딱 거기까지다.”
 
이준석 돌풍은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과 함께 한다. 이들이 보수화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 이들을 깨운 것은 SNS를 더 잘 다루는 좌파들이었다. 특히 조국 같은 이들의 페북 정치에 열광하다 실체를 알고 실망한 2030이 기득권의 위선에 돌(댓글)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실력과 공정을 외치던 이준석과 발을 맞추게 된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당선은 반대로 이들의 참여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다. 대구 출신이면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전남(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서 출마하는 도전을 했던 천하람 변호사는 “이준석이 여의도 정치와 MZ세대를 이을 수 있는 엄청나게 큰 포털을 열었다”고 단언한다. “정치권, 특히 국민의힘과 MZ세대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4차원의 벽이 있었는데, 이준석이 그 벽을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인정하듯, 이준석호의 출범만으로 보수 야당의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를 오직 ‘파워 게임’으로만 이해하는 ‘꼰대 세력’이 여전히 당의 주축인 까닭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들을 “국민의힘을 지켜주시는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말하지만, 이들은 결코 버팀목으로 그치길 바라지 않는다.
 
선출직 공무원 공천 자격시험 케이스가 리트머스 시험지다. 전례 없는 일인데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해 서울과학고, 하버드대를 졸업한 이준석 대표의 ‘능력주의’ 주장과 맞물려 당내 반발이 만만찮지만, 그는 주저함이 없다.
 
“국민 세금을 받고 일하려면 기본적인 능력은 필요하다. 공천심사관리위에서 도덕성과 능력을 본다는데, 며칠 동안 3000명의 후보를 어떻게 다 검증하나. 안 되는 걸 지금까지 했다고 거짓말한 거다.”
 
실제 2030세대들은 이 문제에 거부감이 덜하다. 앞서 임명묵의 말을 기억하는가.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바로 시험”인 것이다. 물론 ‘교육세습’ 탓에 지능과 노력의 결실을 의미하는 ‘능력주의’와 출신과 배경으로 보상받는 ‘귀족주의’가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아이러니는 경계해야 한다.
 
능력주의가 차선의 대안
 
하지만 무작정 능력주의를 버리고 나면 대안이 뭐가 있겠나. 능력주의가 귀족주의나 족벌주의보다는 부작용이 훨씬 적다. 한번 시험으로 평생을 좌우하는 게 아니라, 능력 평가 방식을 보다 유연성 있게 접근하면 되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하는 얘기도 다른 게 아니다.
 
부자라서 좋은 과외선생 만나 공부를 잘하는 친구보다 시험 성적이 떨어져 탈락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아빠·엄마 찬스로 하지도 않은 인턴 경력을 쌓거나 없는 표창장을 위조해 남의 기회를 빼앗아가는 것은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런 능력주의를 통해 선출직 공무원들의 그치지 않는 자질 논란을 극복하겠다는 뜻이고, 다소 미흡하다 해도 해볼 만한 시도다. 여론조사 결과도 찬성(57%)이 반대(32%)보다 월등히 높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젊은 세대의 정치권 진입이 좀 더 수월해질 터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인생 스토리를 가진 젊은이가 아니라, 눈앞의 잘못에 눈감지 않으려는 평범하지만 큰 뜻을 품은 젊은이 말이다.
 
사적 영역에서 (인사청문회에서 흔히 등장하는) 온갖 편법·불법들을 마음껏 누리며 살다 국회의원 자리가 자신의 성공에 답하는 트로피라도 되는양 차지하고 특권만 누리려는 인물들이 채우는 작금의 정치 엘리트 충원 방식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요, 정치 교체다. 모든 세대의 유권자들이 바라는 것도 그것이다. 그것이 성공을 거두려면 지금 주축이 되고있는 50~60대 정치인들이 이준석 대표에 협조해야 한다. 이것 역시 섣부를 수 있지만, 어지러운 정치판에서 큰 허물 없이 10년을 버텨온 30대 정치인이 남아있었던 걸 복인줄 알아야 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5060 정치인들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제 박수를 받으며 떠나거나 최소한 뒤로 물러나 그야말로 버팀목으로 남아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이 나라의 주인이 자신들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들이 그동안 필요하면 불렀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 이벤트 대상으로 소비해온 MZ세대가 주인으로 성장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만약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면 MZ세대들은 미련없이 떠날 것이다. 그들의 부모 세대들도 따라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정치는 또다시 안개속을 헤매게 될 테고, 유권자들이 또한번 무거운 마음으로 정치권을 심판해야 할 것이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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