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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무덤 된 남해…바닷속 쓰레기 지도, 땅에 펼쳤더니

경남 통영시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바닥에 펼쳤다. 왕준열PD

경남 통영시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바닥에 펼쳤다. 왕준열PD

경남 통영시에서 다이빙샵을 운영하는 김연희(52)씨는 3년 전부터 한려해상국립공원 안팎의 바닷속 쓰레기를 지도에 기록하고 있다. 그가 만든 쓰레기 지도에는 폐어구와 낚시용품 등의 쓰레기들이 종류별로 표시돼 있었다. 
 

[플라스틱 어스] ①추적-그 많은 플라스틱은 다 어디로 갈까

“다이빙을 시작할 당시에는 바다가 좋고, 들어가면 물고기가 많고 예뻤어요. 근데 막상 놀러 다닐 때와 다르게 내가 여기에 생활 터전을 잡고 들어갔을 때 바닷속 환경은 너무나 다른 거예요.” - 김연희 통영스쿠바캠프 대표 

  
김연희 씨가 그린 섬 주변 쓰레기 지도. 김연희 씨 제공

김연희 씨가 그린 섬 주변 쓰레기 지도. 김연희 씨 제공

 

해마 서식지 옆엔 '플라스틱 무덤' 

통영 한려해상국립공원 바닷 속에 해마 한 쌍이 있다. 천권필 기자

통영 한려해상국립공원 바닷 속에 해마 한 쌍이 있다. 천권필 기자

지난달 28일, 다이빙 자격증이 있는 기자가 김 씨를 따라 통영 영운항 인근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안 가 바다 숲에서 '바다의 용'으로 불리는 해마 한 쌍이 나타났다. 청정해역에 주로 서식하는 해마가 있다는 건 이곳의 해양 생태계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해마 서식지 주변에 버려진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들. 천권필 기자

해마 서식지 주변에 버려진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들. 천권필 기자

하지만 해마 서식지 주변엔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물티슈와 비닐봉지, 페트병까지 물 밖에서 보이지 않던 '플라스틱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시간 동안 김 씨와 기자가 함께 바닷속에 쓰레기를 수거하고 돌아왔다. 가져온 쓰레기를 땅에서 살펴보니 라면 봉지·우산 등 일상에서 쓰는 생활 플라스틱뿐 아니라 낚싯줄, 폐어구처럼 어업 활동에서 썼던 폐플라스틱도 많았다. 수거한 비닐 쓰레기에선 악취가 심한 정체 모를 검은 액체가 나왔다.
김연희씨가 바닷속에서 물티슈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왕준열PD

김연희씨가 바닷속에서 물티슈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왕준열PD

 

쓰레기가 돼 물고기 가두는 '유령 어구'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소삼부도 인근 바다에 버려진 유령 어구에 문어 등이 갇혀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소삼부도 인근 바다에 버려진 유령 어구에 문어 등이 갇혀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김 씨는 특히 플라스틱 어구들이 쓰레기가 돼 해양 생물들을 죽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물고기들은 버려진 통발을 숨을 곳이라 생각하고 들어가는데 그러면 목숨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 실제로 끌어올려 보면 물고기들이 죽어서 썩은 냄새들이 진동한다”고 했다. 김 씨는 “낚시에 쓰는 납봉돌 하나가 떨어진 곳의 반경 몇m 내에는 백화현상처럼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라고도 전했다.
   
폐그물에 걸려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바다거북이 질식사한 채로 발견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19일에도 거제도 바닷가에서 폐그물에 발이 걸려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바다거북 한 마리가 구조되기도 했다. 
19일 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바람의 언덕 근처 바닷가에서 폐그물에 걸린채 발견된 바다거북. 근처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던 박성제 씨가 이 거북이를 발견해 그물을 끊고 구조 후 바다로 돌려보냈다. 연합뉴스

19일 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바람의 언덕 근처 바닷가에서 폐그물에 걸린채 발견된 바다거북. 근처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던 박성제 씨가 이 거북이를 발견해 그물을 끊고 구조 후 바다로 돌려보냈다. 연합뉴스

 
튼튼하고 오래가는 합성섬유로 만든 그물·통발 같은 어구가 바닷속에서 오랜 기간 썩지 않고 ‘유령 어구’가 돼 물고기를 가두고 산호를 다치게 하는 등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해수부에 따르면, 이런 유령 어구가 지난해에만 6만7000t가량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된다.
 

해양생물 많은 곳이 플라스틱 핫스팟

통영 앞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 부표들. 왕준열PD

통영 앞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 부표들. 왕준열PD

특히 어업과 양식 활동이 밀집한 남해안 일대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핫스팟'으로 꼽힌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남해 다도해·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 운영되는 어장·양식장은 1835곳으로 면적은 2만5938㏊에 이른다. 보호 가치가 높은 해상국립공원에서만 축구장 3만7054개에 이르는 면적에서 어업 활동이 이뤄진다는 뜻이다. 실제로 취재팀이 찾은 통영 한려해상국립공원에서도 굴 양식에 쓰는 흰색 스티로폼 부표가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홍도 인근 수중에서 다이버가 폐그물을 수거하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한려해상국립공원 홍도 인근 수중에서 다이버가 폐그물을 수거하고 있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제대로 수거되지 못한 플라스틱 어구와 부표는 바닥에 가라앉거나 잘게 쪼개져 해안으로 밀려온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다이버들이 지난해 해상국립공원의 수중 쓰레기 실태를 모니터링한 결과,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거문도와 홍도 인근 수중에서도 폐통발과 그물, 낚싯줄 등이 발견됐다. 해당 지역은 국립공원 중에서도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해양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이다. 하지만, 최근 이곳을 찾는 낚시꾼들이 급증하면서 쓰레기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가장 충격적인 건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사는 곳일수록 플라스틱 쓰레기도 그만큼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라며 “어장이 풍부할수록 사람들의 어업이나 낚시 활동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업 과정서 ‘플라스틱 발자국’ 줄여야”

부산 앞바다에서 새 한마리가 플라스틱 부표 위에 앉아있다. 왕준열PD

부산 앞바다에서 새 한마리가 플라스틱 부표 위에 앉아있다. 왕준열PD

이렇게 어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플라스틱 오염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할 뿐 아니라 먹이사슬을 거쳐 인간에게도 피해를 준다.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에 따르면 경남 거제와 마산 일대의 양식장과 근해에서 잡은 굴, 담치, 게, 갯지렁이 가운데 97%인 135개 개체의 몸속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다. 바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바닥에서부터 광범위하게 미세플라스틱의 오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스티로폼 부표를 친환경 소재로 빠르게 전환하고, 해양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등 바닷속 해양 생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플라스틱 발자국'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운동연합 김솔 활동가는 “폐어구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의 54%가량을 차지한다”며 “어구를 추적할 수 있도록 실명제를 도입해 생산에서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국장은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는 결국은 소비자들의 먹기 위한 행위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면서 “굴을 생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이 사용되고 바다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지를 인식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70년. 플라스틱이 지구를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지구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중앙일보는 탄생-사용-투기-재활용 등 플라스틱의 일생을 추적하고,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플라스틱 어스(PLASTIC EARTH=US)’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천권필·정종훈·김정연 기자, 왕준열PD, 곽민재 인턴, 장민순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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