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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이제야 이해되는 영웅들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6·25가 다가온다. 모두가 알고 있듯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이맘때면 늘 듣던 아버지의 영웅담을 절집에 들어온 이후로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도 어릴 적 이야기 속에 등장한 분들이 간혹 눈에 선하게 비친다.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는 일
자신의 삶 위해서도 꼭 필요
잊혀진 호국 영웅들에게 감사를

내 어릴 적 우리 동네엔 이상하게 생긴 무서운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팔다리가 하나씩 없고 늘 담배와 술에 절어 사는 사람이었다. 아저씨는 헝클어진 머리에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흉측한 모습으로 목발을 끼고 뚜벅뚜벅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나는 아저씨가 놀러 오는 것이 참 싫었다.
 
이쯤에서 눈치채셨겠지만, 그분은 상이용사다. 베트남 전쟁에 나갔다가 폭탄이 터져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온 분이다. 멀쩡하던 남편이 불구가 되어 돌아오자, 아내는 야밤에 몰래 보따리를 쌌단다. 그 뒤로 아저씨는 매일 소주병을 끼고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다.
 
그런 아저씨가 집에 놀러 와 나만 보면 우리 아가 예쁘다며 ‘한 번만 안아보자’고 했다. 그런 아저씨가 얼마나 무섭고 싫던지…. 영화 ‘아저씨’ 속의 원빈처럼 잘생긴 아저씨도 아니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딘가에 숨기 일쑤였다.
 
“저 어린 것도 내가 싫다는데, 내 마누라인들 내가 좋겠습니까.” 아저씨의 넋두리와 원망의 눈빛은 나를 늘 불편하게 했다. 아저씨가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불같은 아버지는 잠깐이지만 무섭게 나를 째려보곤 했다. 화가 난 아버지가 무서워 매일 눈치를 봐야 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타협안을 냈다. 100미터쯤 되는 아저씨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날 이후로 아저씨는 거의 매일, 하루에도 두세 번씩 오갔다. 아저씨의 기쁨은 오직 귀여운 꼬마가 집까지 바래다주는 것인 듯 보였다.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할 내가 아니었다. 하루에 딱 한 번, 내 맘 내킬 때만 함께 가주기로 했다.
 
그때마다 아저씨는 왜 그리도 천천히 걷는지, 평소엔 두 다리 멀쩡한 사람보다 목발이 먼저 나가는 듯 보였는데, 나랑 걷기만 하면 몇 걸음 가다가 쉬고 담배 한 모금 피고, 내게 말 걸고, 대답 안 해주면 또 허공 바라보며 한숨짓고… 빨리 다녀오고 싶은데, 내 화를 어찌나 돋우시던지, 꼬마인 나도 ‘으윽’ 하며 참아야 했다. 그러던 아저씨는 몇 년 후,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몹시 슬퍼하셨다. 불쌍하다고, 안 됐다고, 몇 번이나 주저리주저리 중얼거리며 소주잔을 기울이셨다.
 
세월이 흘러 생각해보니, 어린 내게조차 무시당하던 그 아저씨는 다름 아닌 ‘영웅’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버림받은 인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연민을 느끼게 하던 쓸쓸한 존재였다. 또 전쟁터에서 몇 생명은 해치기도 했겠지. 하지만 상이용사가 된 이후의 삶이 얼마나 박복하고 비루했는지, 어린 내 눈에도 훤히 보였다.
 
나는 아저씨가 우는 모습을 아버지 곁에서 많이 봤다. 함께 간 부대원들은 죽고 혼자만 살아왔다며 울던 아저씨, 차라리 그때 죽었어야 했다던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그 뒤로도 한참 성장한 후였다.  요즘도 광화문을 지나다 보면, 간혹 ‘전우회’나 ‘해병대’ 등을 내세워 스피커를 켜고 다니는 차를 보게 된다.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진다. 절 앞에서 외치는 타종교의 전도 스피커만큼이나 듣기 싫다. 하지만 동시에 저들의 삶을 우리가 너무 몰라주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한때는 우리가 모르는 전쟁을 처절하게 겪었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용사의 삶을 우리가 더 이해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요즘 어떤 일을 할 때, ‘이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사람은 살아야 할 의미가 분명하다면, 어떤 고난도 견뎌낸다”던 철학자 니체의 말에 영향을 받아, 자꾸만 삶의 의미를 찾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는 일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내 기억 속 상이용사 아저씨는 희망을 잃고 불행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분은 전쟁에 참여하고 팔다리를 잃고, 이후 아내를 놓치고 미래를 빼앗겼다. 술을 마실 때마다 과연 지난 삶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는지 수도 없이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아저씨가 살아 계신다면, 그때 무례하게 굴어서 죄송했노라 사과하고 싶다. 믿기지 않겠지만, 누군가에겐 생명의 은인이요, 영웅이었노라 힘주어 얘기해주고 싶다. 살아 계시다면, 친절하게 말동무하며 다시 한번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싶다.
 
원영 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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