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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생은 패배자" 스위스 달군 남녀 교육 역차별 논쟁

 
“남학생은 패배자다.”
“학교는 남학생들에게 적대적이다.”
 
3년 전부터 스위스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말이다. 실제로 스위스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들이 학교 가기를 싫어한다”, “아들이 학교에 적응을 못 하고 성적도 안 나온다” 등 우려가 쏟아져 나온다. 교육상담가이자 스위스 취리히교육대학교 전 교수인 알란 구겐뷜(Allan Guggenbühl)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남학생 중 75%가 학교가 자신들을 싫어한다고 답했다”며 “스위스 사회가 ‘학교의 여성화’ 여부에 대해 뜨겁게 논쟁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고전하는 스위스 남학생 

 
스위스에선 11~12세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갈 아이와 바로 취업할 아이가 서로 다른 학교에 진학한다. 약 20%의 아이들은 ‘김나지움(Gymnasium)’에 진학해 대학을 준비하고, 나머지는 일반 학교에 가서 김나지움 재도전 기회를 갖거나 직업학교로 진학해 취업을 준비한다. 김나지움도 6년제·4년제 등으로 나뉘며, 어디에 가느냐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 학과도 달라진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일찌감치 사회 진출 방식을 결정하는 셈이다.
 
스위스에선 남학생이 학교 교육에 불리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사진 Helmut H. Kroiss

스위스에선 남학생이 학교 교육에 불리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사진 Helmut H. Kroiss

 
김나지움 진학 경쟁은 몹시 치열하다. 초등학교엔 김나지움 대비반이 있고, 김나지움 입학시험을 위한 과외나 학원 같은 사교육도 빈번하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의 김나지움 진학을 위해 한국의 고3 수험생 학부모처럼 ‘집안 총력 체제’를 갖추는 일도 있다고 한다.
 
김나지움에 진학해도 대학에 지원하려면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시험을 스위스에선 ‘마투라(Matura)’라고 하는데, 2019년 기준 여학생 중에선 25%, 남학생 중에선 17.5% 정도만 이 시험을 통과했다. 여학생의 마투라 통과 비율이 남학생과 큰 격차를 보이다 보니 남학생 학부모들은 불만이 많다. 급기야 김나지움 교과 과정의 ‘성 차별’을 문제 삼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201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변호사인 마르틴 하블륏첼이 자기 아들 루이즈가 다니는 김나지움이 스위스 헌법을 어겼다며 지방법원에 고소했다. 루이즈가 남자이기 때문에 김나지움 학과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제했다는 것이다. 
 
그는 스위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학교 시스템은 일방적으로 여학생에게 유리하다. 여학생이 잘하는 외국어 비중이 너무 높다. 성실한 태도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도 여학생이 유리한 점”이라고 했다. 소위 “여성적 능력”을 더 후하게 평가하는 것은 성별의 동등 대우를 보장하는 스위스 헌법과 유럽 인권협약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남학생 역차별' 소송은 스위스에서 큰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특정 과목이나 교육 방식이 특정 성에 유리할 수 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일단 취리히의 중등학교 교육 커리큘럼 담당자가 남학생 차별을 막기 위해 수학ㆍ과학 비중을 늘리고 컴퓨터 과목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현재까지도 소송은 진행 중이다.
 
스위스 교육 전문가 알란 구겐뷜은 "스위스 교육이 남학생에게 불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스위스 교육 전문가 알란 구겐뷜은 "스위스 교육이 남학생에게 불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그런데 스위스에서도 학교에선 여학생 성적이 높지만, 사회 진출 이후엔 위치가 역전된다. 스위스 통계청에 따르면, 스위스 100대 기업 중 여성 임원 비율은 9%에 불과하다. 같은 직군을 놓고 비교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받는 돈은 평균 19% 적다. 아직 스위스 기업에서 여성 임원 할당제와 같은 제도는 도입되고 있지 않다. 스위스 일각에선 “여성들이 학교 교육에만 특화돼 있어 사회의 적응이 떨어진다”, “초등학교의 경우 여교사가 너무 많아서 여학생 점수가 높은 일이 발생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여러 주장이 난무하자 스위스 교육부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교육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있다. 교육부는 “여학생은 언어를 선호하고 남학생은 수학을 선호하는 건 맞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교사의 성별에 따라 학생들 성적이 다르게 나타나는 건 아니다”며 “여러 가지 주장 속에서 사실만을 선별해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스위스 취리히호수 동쪽 금빛 연안(강 위쪽)은 서쪽 은빛 연안(강 아래쪽)보다 볕이 잘 들어 집값이 비싸고 고소득층이 많이 거주한다. 우리로 치면 강남과 비슷하다. 금빛 연안 지역은 교육열도 뜨겁고 그만큼 사교육도 많이 받아 김나지움 진학률도 더 높다. 사진 위키피디아

스위스 취리히호수 동쪽 금빛 연안(강 위쪽)은 서쪽 은빛 연안(강 아래쪽)보다 볕이 잘 들어 집값이 비싸고 고소득층이 많이 거주한다. 우리로 치면 강남과 비슷하다. 금빛 연안 지역은 교육열도 뜨겁고 그만큼 사교육도 많이 받아 김나지움 진학률도 더 높다. 사진 위키피디아

 
슈테판 볼터 베른대 교육경제학 교수는 스위스 언론 ‘다스 마가친’과의 인터뷰에서 “1995년부터 스위스에서 응용과학대학들이 많아졌는데, 이런 대학들 학위는 김나지움을 가지 않아도 취득이 가능하다는 점도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응용과학대학은 기술에 특화한 3년제 대학이다.
 
볼터 교수는 “남학생들은 공부하기보다 학교를 일찍 졸업해서 돈을 벌기를 원한다. 응용과학 대학 학위를 따려는 우수한 남학생들이 굳이 김나지움을 가지 않는 경향이 생겼고, 이 때문에 여학생 성적이 상대적으로 높아졌을 수 있다”고 했다.
 
남녀 학업 격차가 스위스만의 문제인지, 세계 보편적인 현상인지는 분명치 않다. 베를린 사회연구센터에 따르면 세계 41개국 240만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 연구 42건을 비교·분석한 결과 1914~2011년 사이 뚜렷한 남녀 성적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녀 학생의 성적 차이는 크지 않다. 한국교육과정평가연구원이 발표한 2021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에 따르면 국어 평균 점수는 남학생 99.2, 여학생 100.7이었다. 수학 가 평균 점수는 남학생 100.8, 여학생 98.4, 수학 나 평균 점수는 남학생 100.2, 여학생 99.8이었다. 주요 과목 모두 큰 격차를 보이지 않았다. 다만 최상위 등급과 최하위 등급에서 모두 남학생의 비율이 높은 특징을 보였다.
 

계층 이동성이 한국보다 낮은 스위스

 

현재 스위스는 남녀 학업 격차만이 아닌 교육 불평등 전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우선 소득별 격차다. 스위스 베른 지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상류층 자녀의 49%가 김나지움을 다니지만 취약계층의 6%만 김나지움에 진학했다. 스위스 취리히의 ‘강남 지역’인 ‘골트퀴스테(Goldküsteㆍ금빛 연안)’의 김나지움 진학률은 50%로 취리히 평균인 27%의 두 배에 가깝다. 이 때문인지 스위스의 사회 교육계층 이동성(50% 이하 학력인 부모의 자녀가 상위 25% 이상의 학력을 가질 가능성)은 14.9%로 한국(17%)보다 낮다.
 
 
스위스는 이민자 자녀의 학력 저하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구겐뷜 전 교수는 “스위스 일부 마을에선 아이 중 절반 이상이 스위스 말이 모국어가 아니라서 학습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며 “아프리카ㆍ인도ㆍ아랍 등에서 온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스위스 사회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김진경 자유기고가
영상=김지선ㆍ정수경 PD, 김지현ㆍ이가진 인턴
 
김진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다. 현재 스위스에 살고 있으며 중앙일보, 시사인, 피렌체의 식탁 등 다양한 매체에 문화 다양성에 대한 글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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