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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대화' 걷어찬 北...오바마 때 '탐색적 대화' 떠올렸나?

미국이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외친지 하루 만에 북한이 찬물을 끼얹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직접 나서 "잘못 가진 기대"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만나겠다"는 미국의 제안을 북한 입장에선 오바마 행정부 당시 '탐색적 대화'(exploratory talks)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탐색적 대화'는 한ㆍ미가 띄웠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불발됐다.

김여정 "잘못된 기대하면 더 큰 실망"
과거에도 '조건 없는 대화' 내세웠지만 불발
北 호응 없었던 '탐색적 대화' 전철 밟을지 우려

4박 5일 일정으로 방한 중인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는 모습. 뉴스1

4박 5일 일정으로 방한 중인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들어서는 모습. 뉴스1

美 "조건 없이 만나자" vs 北 "잘못된 기대"

김여정 부부장은 22일 담화를 내고 미국을 향해 "스스로 잘못 가진 기대는 자신들을 더 큰 실망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화를 언급한 데 대해 미 백악관이 "흥미로운 신호"라고 해석한 걸 겨냥했다.
 
바로 전날인 21일 성 김 대북특별대표가 취임 후 첫 방한 중 북한을 향해 "대화 제의에 대한 긍정적 답변을 기다린다"며 "전제 조건 없이 만나자"고 말한 것마저 사실상 거절한 셈이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

오바마 때 '탐색적 대화' 데자뷔?

북한의 이같은 반응을 두고 미국이 나름대로는 전격적으로 꺼내든 '조건 없는 대화' 카드가 오바마 행정부 당시 '탐색적 대화'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부부장의 대미 메시지가 '착각하지 말라'는 경고에 가까운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탐색적 대화'는 말 그대로 북ㆍ미가 서로를 알아가고 탐색하기 위해 일단 만난자는 취지로 고안된 개념이다. 미국 입장에서 북한과 본격적인 협상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화에 아예 손을 놓는 무시 전략도 아닌 중간 지점이다. 다자든 양자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만남을 위한 전제 조건도 없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내놓은 조건 없는 대화와 유사하다.
 
오바마 행정부 1기 시절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즉 진정성을 확인하지도 않고 협상에 임한다는 보수파 중심의 비판을 피하기 위해 '탐색적 대화'를 앞세웠다. 2011년 7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방미를 계기로 이뤄진 북ㆍ미 고위급 대화에 대해 미 국무부는 "탐색적 대화"이자 "예비 대화"로 규정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로이터

과거 '조건 없는 대화' 제안에...北 핵실험만 계속

'탐색적 대화'가 '조건 없는 대화'의 성격이 더 짙어진 건 오바마 행정부 2기에 들어서다. 2012년 북ㆍ미 간 2.29 합의가 두 달도 안 돼 깨진 뒤 워싱턴 조야에는 아예 '대화 무용론'이 퍼질 정도로 북한과의 협상에 회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이를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게 탐색적 대화다. 2014년 7월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ㆍ군축담당 특보는 언론 기고를 통해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맡았던 황준국 전 주영 대사는 "북ㆍ미 간 2.29 합의 파기 이후 당시 워싱턴 분위기상 미국 측은 북한과 본격적인 대화를 재개하는 것 자체에 엄격한 전제조건을 걸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아무 조건 없는 탐색적 대화'를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미국 측 수석대표가 성 김 대표였다.
 
하지만 당시 막 권좌에 오른 김정은의 유일한 목표는 핵무력 완성이었다. 미국과 대화 한 번 더 하기보다 하루 빨리 핵능력을 고도화해 미국과 대등한 핵 보유국이 되는 게 주된 관심사였다. 
이처럼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데다 북한이 2016년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하는 등 고강도 도발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탐색적 대화는 결국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2015년 10월 성 김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황준국 당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나 면담하는 모습. 김 대표는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4년 11월부터 약 2년동안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맡았다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2021년 5월부터 같은 자리를 맡게 됐다. 중앙DB

2015년 10월 성 김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황준국 당시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나 면담하는 모습. 김 대표는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4년 11월부터 약 2년동안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맡았다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2021년 5월부터 같은 자리를 맡게 됐다. 중앙DB

美 "조건 없다" 카드..."北 반길지 의문"

바이든 행정부가 탐색적 대화의 개념을 되살렸지만, 이번에도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는 핵무력 완성이 급해서였지만, 지금은 이미 북한이 이미 핵을 완성해서다. 제재 완화같은 보상을 담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같은 핵보유국끼리 차 떼고 포 떼고 일단 만나자는 제안이 북한에 유인책이 되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로 북한이 갖게 된 '트라우마'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최근 북ㆍ미 대화의 조건은 미국이 아닌 북한이 제시하는 모양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은 미국과 협상 전에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라는 조건을 걸었고, 바이든 행정부는 사실상 그런 조건은 못 지키겠단 입장"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조건 없는 대화' 제의가 북한의 눈에 전향적인 조치로 비칠 수 없는 이유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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