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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부터 살인적 업무" 특전사 취사병 결국 장애인 됐다

지난 3일 오후 공군 3여단 8978부대 조리병이 조리삽을 들고 요리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지난 3일 오후 공군 3여단 8978부대 조리병이 조리삽을 들고 요리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제공]

“취사병이 일하는 환경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네요.”
 
17일 오전 11시 서울 도봉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만난 이진희(52·여)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최근 군대 내 부실급식 논란을 계기로 조리병(취사병)들의 열악한 처우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던 이씨의 옆자리에 앉은 동생 이준호(44)씨는 기자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편집조현병 등으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동생 이씨. 그는 “취사병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렸던 그 날이 떠오른다”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20여 년 전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리병하다 정신장애 얻은 40대 남성

1998년 6월 10일 특전교육단 공수교육장에서 이준호(44·왼쪽)씨가 동기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신체검사 1급을 받고 특전교육단에 차출된 이씨는 조리병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신질환을 얻게 된다. 이가람 기자

1998년 6월 10일 특전교육단 공수교육장에서 이준호(44·왼쪽)씨가 동기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신체검사 1급을 받고 특전교육단에 차출된 이씨는 조리병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신질환을 얻게 된다. 이가람 기자

지난달 29일 육군훈련소의 한 조리병이 페이스북을 통해 “1년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 세끼 평균 훈련병 2000인분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며 휴식 시간 부족을 호소했다. ‘조리병 혹사’ 논란이 커지자 지난 17일 국방부는 ‘조리병 업무부담 경감 대책’을 내놓았다.
 
최근의 사태는 이씨와 그의 가족들에겐 결코 가볍지 않은 고통이다. 이씨는 20여 년 전 군에서 조리병으로 복무했다. 신체검사 1급을 받고 지난 1998년 3월 30일 입대한 이씨는 특수전교육단에 차출될 정도로 건장한 21살의 청년이었다. 그는 “4년제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어 ‘특전폭파’ 주특기를 부여받았다”며 “하지만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조리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게 이씨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살인적 업무의 나날”

이씨가 복무하던 특수전교육단은 특전사 교육 인원에 따라 적게는 300명에서 많게는 1500명까지 복무 인원이 매번 달라졌다. 이씨는 “10월부터 약 40일의 기간 동안 총 5명의 취사병이 1500명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며 “선임이었던 병장 3명과 상병 1명을 제외하곤 일병인 제가 모든 일을 도맡았다”고 했다. 그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1500인분의 부식을 다듬고 큰 가마솥 3개를 도맡으며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아침 배식이 끝나면 점심 준비가 이어졌고 그렇게 하루 세끼 준비가 쳇바퀴처럼 반복됐다.
 
이씨는 그 당시를 가리켜 ‘살인적인 업무의 나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일반인 누구라도 견딜 수 없는 가혹한 업무를 취사장에서 막내인 제가 매일 몸으로 맞서야 했다”며 “거의 매일 모든 식사 당번을 하며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강도 높은 업무와 수면 부족에 힘든 내색을 보이면 선임들로부터 “밥을 못 만들면 영창에 간다”는 협박과 함께 얼차려와 구타가 되돌아왔다.
특전교육단에서 조리병으로 복무한 이준호(44)씨는 과도한 업무로 인해 정신질환을 얻어 국군수도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했다. 사진은 당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작성된 병상일지. 이가람 기자

특전교육단에서 조리병으로 복무한 이준호(44)씨는 과도한 업무로 인해 정신질환을 얻어 국군수도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했다. 사진은 당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작성된 병상일지. 이가람 기자

 
일병과 상병 때 두 차례에 걸쳐 작성된 그의 병상일지에는 불안정한 정신 이상증세의 관찰 기록이 담겼다. 혼자 말하기·우울감·이상행동·불면증 등의 정신병적 증상은 군 생활 내내 이어졌다. 군 병원에서 신경증을 진단받은 그는 별다른 호전이 없어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다 2000년 5월에 병장 만기 전역했다. 결국 그는 정신장애 3급을 판정받았다.
 

사라진 20년의 세월

특전교육단에서 조리병으로 복무한 이준호(44)씨는 과도한 업무로 인해 국군수도병원에서 신경증과 폐쇄공포증, 수면장애 등을 진단 받았다. 이가람 기자

특전교육단에서 조리병으로 복무한 이준호(44)씨는 과도한 업무로 인해 국군수도병원에서 신경증과 폐쇄공포증, 수면장애 등을 진단 받았다. 이가람 기자

전역 후부터 오늘날까지 이씨는 그의 누나인 이진희(52)씨의 집에서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매일 신경안정제와 수면진정제, 항파킨스제 등 7알이 넘는 약을 먹어야 그나마 대화가 가능할 정도다.
 
누나 이씨는 “밝고 건강했던 동생이 조리병으로 복무하다가 정신병을 얻어 사회생활은 물론 결혼할 나이가 되었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호소했다. 이어 “처음 이상증세가 나타났을 때 바로 의병전역을 시키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며 “부대 지휘관의 말을 믿고 만기제대를 시킨 것이 후회된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5년 전 국가보훈처에 보훈보상대상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거절을 통보받았다. 보훈처는 “(군 공무수행 당시)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과도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사유를 밝혔다.  
 
20년 간 함께 살며 이씨 곁을 지킨 누나 이진희씨는 동생의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하다고 했다. 누나 이씨는 “동생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독립적으로 혼자 살 수 없다”며 “국가의 도움을 받아 동생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생계유지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를 돕고 있는 김경수 변호사(법률사무소 빛)는 “이씨는 신체검사 1급을 받아 특전교육단에 입대했었다”며 “보훈처가 단기간 발생한 혹사에 가까운 조리병 업무 등을 판단하지 않고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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