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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러시아, 중국 때문에 찌그러져” 중·러 갈라치기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과거의 적’을 포섭해 ‘새로운 적’을 견제하는 ‘바이든식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선보였다. 과거의 적은 냉전 시절의 대결 상대였던 러시아, 새로운 적은 현재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러 갈라치기’를 시도했다.
 

옛날 적 포섭, 새로운 적 견제 전략
“핵무기만 가진 빈국 원치 않을 것”
핵감축협정 이을 협상 시작 합의
‘뒷배 끊기’ 북한에도 적용 가능성

바이든은 이날 정상회담을 마치고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며 “러시아는 중국으로 인해 찌그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기자회견에선 “중국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대국이 되고자 한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러시아는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은 “러시아는 ‘핵무기를 가진 어퍼볼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미국과의 냉전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핵무기를 가진 어퍼볼타’는 냉전 시절에 나왔던 ‘로켓을 가진 어퍼볼타’에서 나온 것으로 ‘군사력이 강해도 경제는 뒤처진 소련’을 빗댄 말이다. 어퍼볼타는 1960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아프리카 서부 오트볼타의 영어 표현으로, 84년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를 뜻하는 부르키나파소로 국명을 바꿨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92달러인 최빈국이다.
 
미·러 정상회담 주요 내용

미·러 정상회담 주요 내용

바이든의 발언을 두고 중국의 부상을 마냥 환영할 수 없는 러시아의 심리를 자극해 관계 회복을 시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측은 이날 회담의 의미를 축소하면서도 경계심을 드러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러 교착 상태가 잠시 누그러질 순 있어도 구조적 갈등을 바꿀 순 없다”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를 ‘지역 강대국’으로 지칭했지만, 바이든은 이날 러시아를 미국과 함께 ‘양대 강대국’으로 표현했다며 “중·러를 분열시키려는 책략”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중국 뒷배 끊기’ 전략을 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한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면 북·중·러 연합 구도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핵을 제거한 북한’의 청사진으로 경제적 번영이란 보상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북한이 비핵화 뒤 중국 영향력에 들어가는 것도 미국이 경계하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이날 양국은 인권·해킹 등에선 평행선을 달렸지만, 공감대를 이룬 부분도 있다. 양국은 2026년 만료되는 미·러 핵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 협정(뉴스타트)’ 대체를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3월 제재 문제로 서로 본국으로 불러들인 양국 대사의 복귀에도 합의했다.
 
향후 바이든 행정부가 실제로 중국 견제에 무게를 두고 대러 정책을 운용할 것인지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린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 시절엔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의 주도로 중국과 연대해 소련을 고립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는 이를 반대로 응용한 ‘역 닉슨 전략’ 또는 ‘역 키신저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구상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 등으로 좌초했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비슷한 전략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러 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장세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바이든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러시아가 권위주의적 체제라는 점 등에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으며, 중·러를 동시에 제압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양국 관계의 지나친 악화는 막겠다는 의지가 보였으며, 이번 정상회담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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