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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참사, 26년전 망령 살아났다" 삼풍 생존자 식은땀 흘렸다

9일 광주시 동구 재개발 구역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무너져 시내버스가 매몰됐다.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 영상을 본 이선민(45)씨는 식은땀이 나면서 심장이 뛰었다. 26년 전의 끔찍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의 생존자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 구조현장. [중앙포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당시 구조현장. [중앙포토]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뒤에도 참사는 반복됐다. 1999년 씨랜드 화재,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각종 화재 사건, 최근 광주 건물 붕괴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오는 29일 삼풍 26주기를 맞아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라는 책을 이씨(필명 산만언니)가 출간하게 된 이유다.
 
반복되는 참사에 대한 그의 생각, 참사 이후의 삶에 대해 이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그는 2018년엔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는 글을 써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 인물이다.
 
이씨는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대신 ‘나 하나쯤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조직에 부역하고, 부조리를 지나치는 개인들이 사라지지 않는한 참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선민씨(필명 산만언니). 이씨 제공

이선민씨(필명 산만언니). 이씨 제공

그날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기억일 것 같다.
언론에 보도되는 누군가의 죽음, 최근 이선호씨 사망이나 광주 건물 사고 이런 소식을 접하면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광주 사고 영상을 보는데 삼풍 붕괴 당시의 엄청난 폭발음이 떠올랐다. 참사가 망령처럼 살아난 느낌이랄까. 이런 사고가 공간과 규모만 바꿔 계속된다. 
 
26년 전 그날은 어땠나?  
스무살 때 삼풍에서 일당 3만원 아르바이트를 했다. 종일 덥고 습해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몇몇 직원들이 식당에 금이 가고 벽이 뚫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한테 말하지 말라고 수군댔다. 오후 6시 59분쯤으로 기억하는데 제가 건물을 나선 뒤 굉음을 들었다. 건물이 한층씩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려 얼굴은 피했지만, 온몸에 파편이 붙었다. 돌에 머리를 맞아 목디스크가 생겼다. 3주 정도 병원에 입원했고 퇴원해 계속 치료를 받았다. 이후 불안증세와 트라우마가 생겼다. 지금도 소리에 굉장히 예민하다. 
사고 이전 스무살 이씨의 모습. 이씨 제공

사고 이전 스무살 이씨의 모습. 이씨 제공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는 건가.
트라우마는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이야기를 많이 해서 울지 않는 것일 뿐. 저는 사고 직후 악몽을 많이 꿨다. 제가 가전 매장 쪽 사람들과 친했는데 그분들 모두 돌아가셨다. 꿈에서 제가 여기 무너진다고 소리 지르고, 얼굴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랬다. 지하철이 들어올 때 부는 바람에도 굉장히 놀랐었다. 그런 것들이 다 트라우마였더라.
 
사고 이후의 삶은 어땠나.
최근까지 대기업 사무직으로 20년 정도 일했다. 삼풍 사고 이후 '과연 내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냥 하루하루 기계적으로 일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가 배려해줘서 휴직도 쓰고 좋은 분들 덕에 여기까지 왔다. 최근에는 연구 기술 자료를 일반 언어로 쉽게 정리하는 일을 외주 받아 하고 있다.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추모비 하나 없이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다. [중앙포토]

삼풍백화점 자리에는 추모비 하나 없이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다. [중앙포토]

삼풍 이후에도 수많은 참사를 막지 못했는데.
저도 직장 생활을 해봤지만, 위에서 지시하면 대부분 따른다. 부당한 지시에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 어렵다. 누군가 직을 걸고 ‘아닌 것 같다’고 말을 했다면 예방할 수 있는 사고들이 많을 거다. ‘나 하나쯤은 괜찮아’ 생각에 부조리를 넘어가고 조직에 부역하는 개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참사는 반복된다. ‘난 저 백화점 안 가’‘저 배 안 타’가 아니라 언제든 내 일이 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
 
삼풍 자리에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섰다.
경악했다. 추모비 하나 없이 고층 건물을 세웠다. 지금 엄청 비싸다. ’뭐 좋은 일이라고 여기 비석을 세워. 얼마짜린데 땅을 놀리냐’는 말이 나왔다. 사회가 고통을 그냥 덮으려고 하면 사건은 반복된다. 유족 중 시신도 못 챙긴 이들이 많다. 그 자리에 가끔 찾아가 꽃 한 송이 놓고 싶은 마음은 어떨까. 추모 공간이 생긴다고 부동산값 떨어지는 걱정을 하고,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건 이상한 사회다. 9·11 테러 자리에 추모공간 ‘그라운드 제로’가 생겼고 유럽에는 도심에 묘지공원이 있지 않나. 추모 공간을 혐오 시설로 여기는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당시 서울시청에서 위령탑 건립 등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모습. [중앙포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당시 서울시청에서 위령탑 건립 등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모습. [중앙포토]

뒤늦게 출판을 하게 된 계기는.
살아있는 자의 소명으로 증언하고 싶었다. 돈 때문이라면 직장을 계속 다녔을 거다. 2014년 세월호 가족들을 보고도 위로와 증언하고 싶은 걸 참았었다. 내 일상을 지키고 싶어서. 몇 년이 지나도 함부로 말하는 이들이 있어서 2018년 글을 썼다.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말하는 이들은 그게 어떤 고통인지 모른다.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면 희생자와 유족에게 함부로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사회가 재난을 겪은 이들과 유족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유족들에게 ‘유난스럽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았으면 한다. 합의금, 보험금부터 궁금해하는 태도도 일종의 2차 가해다. 슬픈 사람들이 슬픔에 충분히 잠기고 통곡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자세, 고통받는 이웃이 시끄럽다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말없이 바라봐주는 덕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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